나이와 학번으로 묶어진 '386'이란 단어에
사실 별다른 연대감을 갖고 있지 않았던
내게, 요즘 '386 음모론'이니 하는 말들은
참 낯설게 들립니다.
군부독재 치하에서 치열한 학생운동을
경험한, 정치적 성향이 다분한 세대로서
노무현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자 청와대
핵심 브레인이란 정의 역시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386들에겐 부담스러운 표현일
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4050의 보수적 성향과 1020의 경박
한 신보수 사이에서 약간의 이념적 갈등을
느끼는 걸 보면, 역사의 광풍 속에서 겪었던
체험이 은연중 배어있음을 어쩔 수 없이 확인
하게 됩니다. "그래, 그래서 너는 386이야"하고
괄호 속에 묶임을 당하더라도 사실 별 할 말이
없는 건 바로 그런 공유감 때문이겠지요.
요즘처럼 386이 전방위 공격을 당하고
있는 걸 보면, 나라를 망친 장본인이 바로
386이라고 매도당하는 걸 보면, 더구나 간간이
386의 부패와 안일함, 아마추어리즘이 매스컴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걸 보면, 정치적 성향이
별로 없는 저같은 386도 웬지모를 위기감을
느낍니다. 386 정치인들이 변화하는 민심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이들수록 어쩔 수
없는 보수성향에 물들어가고 있는 게 하닌가 하는
위기감 말입니다.
어떤 여론조사에 따르면 총선 출마 정치인의
경력 가운데 마음에 들지 않는 경력이
386 운동권 출신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
다. 그만큼 참여정부 들어 빠른 시간안에 386
에 대한 이미지는 퇴색의 일로를 걷고 있는 셈
입니다. 더구나, 386 내부에서도 약간의 균열
이 감지되고 있다고 하니, 386의 정치적 파워는
이제 한계를 향해 치닫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386의 정체성이란 건 그다지 뚜렷한 게
못됩니다. 세상에 회자되는, 386이란 건 그저
보수정치인과 배치되는, 정치적 개념으로 포장
된 것이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확실한 점 하나는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의 의미를 가장 순결하게 이해하는
세대가 바로 '386'이란 점입니다.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잠시 그 발걸음이 주춤했지만, 그 어느
세대도 나서지못할 '개혁'의 대열에 '386'이
앞장설 수 있을 것이라는 미련만은 버릴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