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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軍을 감동시킨 日자위대의 결단





自衛隊(자위대) 創設(창설) 50年



日·美와 9條(조)에 흔들림 繼續(계속)



每日新聞(마이니치신문) 2004年6月28日 01:23



防衛廳(방위청)·自衛隊(자위대)는 7月1日, 創設(창설) 50年을 맞이한다. 그에 앞서, 航空自衛隊(항공자위대) 創立(창립) 50周年(주년) 記念式典(기념식전)이 6月27日, 埼玉縣(사이타마현) 狹山市(사야마시)의 入間(이루마) 基地(기지)에서 행해졌다.



自衛隊의 半世紀(반세기)를 지나온 歷史(역사)는, 日·美 同盟(동맹)의 强勢(강세)와 憲法(헌법) 9條(조)와의 整合性(정합성) 사이에서 흔들리는 歷史였다. 1991年의 걸프戰爭(GULF전쟁)을 契機(계기)로 始作(시작)된 自衛隊의 海外派遣(해외파견)은, 主權移讓(주권이양)에 따라 이라크에서 編成(편성)되는 多國籍軍(다국적군)에 參加(참가)하는 事態(사태)를 맞이해, 새로운 局面(국면)에 발을 디디고 있다.



年末(연말)까지는, 向後(향후)의 防衛力(방위력) 本然(본연)의 姿勢(자세)를 정하는 「防衛計劃(방위계획)의 大綱(대강)」[防衛大綱(방위대강)]의 改定(개정)이 이루어져, 自衛隊는 커다란 轉換期(전환기)를 맞이한다.



▶ 同盟强化(동맹강화) 어디까지, 「美 一邊倒(일변도)」에 念慮(염려)도



航空自衛隊의 記念式典에서 눈길을 끈 것은, 來賓(내빈)인 와스코(Thomas C. Waskow)[美 空軍中將(공군중장)] 駐日美軍司令官(주일미군사령관)의 인사말이었다.



「日本이 防牌(방패), 美國이 槍(창)이라는 關係(관계)는 지금도 繼續(계속)되고 있다. 共通(공통)의 새로운 敵(적)인 國際(국제) 테러에, 日·美 同盟은 堂堂(당당)히 對處(대처)하고 있다」



司令官은 日·美 同盟의 意義(의의)를 새삼스럽게 强調(강조)했다.



石破茂(이시바 시게루) 防衛廳長官(방위청장관)도 「陸·海·空의 統合(통합) [運用(운용)]과 日·美 安保體制(안보체제)의 强化로, 어떠한 抑止力(억지력)를 達成(달성)할 수 있는지 檢證(검증)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訓示(훈시), 同盟强化에 대해 言及(언급)했다.



1954年7月1日, 防衛廳·自衛隊는 正式(정식)으로 發足(발족)했다. 50年의 歷史를 새긴 發足日(발족일)은, 式典(식전)도 없이 조용하게 지나려 하고 있다. 陸上自衛隊는 4年前, 海上自衛隊는 2年前, 各各(각각)의 前身(전신)인 警察豫備隊(경찰예비대), 海上警備隊(해상경비대)의 發足 50周年 式典을 마쳤다. 防衛廳 本體(본체)는 2개월 뒤인 9月에 記念式典을 豫定(예정)하고 있다. 表面上(표면상)은 조용한 「7.1」이지만, 前日(전일)인 6月30日에는 自衛隊의 多國籍軍 參加라고 하는 課題(과제)를 안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主權移讓 前부터 테러가 잇따라, 治安(치안)의 惡化(악화)가 念慮된다. 이라크特措法(IRAQ특조법) 9條에 根據(근거)해, 自衛隊員(자위대원)의 安全確保(안전확보)가 안되는 경우에는 首相(수상)이나 防衛廳長官이 活動(활동)의 中斷(중단)이나 撤退(철퇴)를 檢討(검토)하게 된다.



하지만, 自民黨(자민당) 閣僚經驗者(각료경험자)는 「이라크에의 自衛隊 派遣(파견)은 日·美 同盟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日本의 安全保障(안전보장)을 擔保(담보)하기 위해서도, 撤退라고 하는 選擇肢(선택지)는 相當(상당)한 일이 아니면 취할 수 없다」라고 指摘(지적)한다.



政府(정부)는 「安全保障과 防衛力에 관한 懇談會(간담회)」가 이번 가을 整理(정리)하는 報告書(보고서)를 基礎(기초)로, 年內(연내)에 「防衛計劃의 大綱」을 改定한다. 테러나 大量破壞武器(대량파괴무기) 등 새로운 威脅(위협)에 對應(대응)하기 위해, 미사일 防衛(방위)[MD, Missile Defense] 導入(도입) 등으로 日·美 同盟은 한층 더 緊密化(긴밀화)되는 方向(방향)이다.



다만, 日·美 同盟强化의 道程(도정)은, 集團的自衛權(집단적자위권)의 行使(행사)를 둘러싼 憲法 9條의 解釋(해석)이 混迷(혼미)한 過程(과정)이기도 했다. 陸幕長經驗者(육막장경험자)[陸幕長=陸上幕僚長(육상막료장)]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美軍에 너무 기우는 게 아닌가. 이 나라 本然의 姿勢를 자유롭게, 폭넓은 構想(구상)으로 생각하는 時期(시기)인데. 지나친 美國 一邊倒의 政府 姿勢는 두렵다」



▶ 9.11 直後(직후) 批判覺悟(비판각오)한 美 航空母艦(항공모함) 護衛(호위)



陸海空 3개 自衛隊가 狀態(상태)를 바꾼 것은 冷戰後(냉전후)였다. 특히 世界(세계)를 뒤흔든 2001年의 「9.11」 美 同時多發(동시다발) 테러로 톱니바퀴는 크게 움직였다.



「키티가 이제 막 나오고 있습니다」 海上幕僚監部(해상막료감부)[海幕(해막)] 中樞(중추)에 緊急連絡(긴급연락)이 들어온 것은, 「9.11」 直後의 일이었다. 駐日(주일) 美 海軍司令部(해군사령부)[神奈川縣(가나가와현) 橫須賀市(요코스카시)]에 派遣되어 있던 幹部(간부) 自衛官(자위관)이 歸廳途中(귀청도중), JR 橫須賀線(요코스카선)의 列車(열차) 화장실에서 携帶電話(휴대전화)로 航空母艦 키티호크(USS Kitty Hawk)[CV 63] 乘務員(승무원)의 焦燥感(초조감)을 전해 왔던 것이다.



世界最强(세계최강)의 攻擊力(공격력)을 가진 航空母艦이지만, 停舶(정박)·低速航行時(저속항행시)에는 테러에 極端的(극단적)으로 약하다. 이 때문에, 곧바로 出港(출항)해 東京灣(도쿄만)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對應(대응)을 잘못하면 日·美 同盟이 危機(위기)에 빠진다」 海幕(해막) 幹部는 강하게 그렇게 느껴, 처음으로 海上自衛隊 艦艇(함정)에 의한 美 海軍 航空母艦 護衛를 決定(결정)했다. 集團的自衛權의 行使라고 批判(비판)되는 것은 覺悟(각오)한 바였다. 根據는 防衛廳設置法(방위청설치법) 5條18項(항) 「조사(調査)·연구(硏究)」로 했다.



9月21日 아침, 出港하는 美 航空母艦의 前後(전후)를 海上自衛隊의 護衛艦(호위함)이나 海上保安廳(해상보안청)의 巡視艇(순시정)이 지켰다. 美 海軍으로부터 海上自衛隊에는 感謝(감사)의 말이 到着(도착)했지만, 福田康夫(후쿠다 야스오) 官房長官(관방장관)[當時(당시)]은 「[海上自衛隊가 航空母艦 護衛하는 것은] 내 귀에는 들어와 있지 않았다」라고 批判했다.



「9.11」 直後의 이 時期, 海幕은 「너무 까불며 떠들기 」[外務省(외무성) 幹部] 라고 말해지면서도, 테러 對策(대책)을 위한 對美支援態勢(대미지원태세) 만들기를 위해 돌아다니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은 全部(전부) 리스트업 해라. 法解釋(법해석)에서 그레이존(gray zone)이 있어도, 나머지는 政治家(정치가)가 判斷(판단)해 준다」라고 幹部가 保護幕(보호막)을 치면서 5개 項目(항목)의 對應案(대응안)을 整理해 議員會館(의원회관)을 돌며 國會議員(국회의원)에게 直接說明(직접설명)했다. 半世紀에 걸치는 海上自衛隊의 歷史 가운데에서도 異例(이례)였다.



海幕의 「說明」이 얼마나 效果(효과)가 있었는가는 不明(불명)하다. 하지만, 小泉純一郞(고이즈미 준이치로) 首相(수상)은 9月19日, 海幕案(해막안)과도 겹치는 部分(부분)이 있는 7개 項目의 對應策(대응책)을 早速(조속)히 發表(발표). 테러對策特措法(TERROR대책특조법)도 10月末에는 成立(성립)되었다.



되돌아 보면, 걸프戰爭 後의 海上自衛隊 掃海部隊(소해부대) 派遣[1991年)]으로 「海外(해외)」의 封印(봉인)을 풀었고, 印度洋(인도양)에서의 給油活動(급유활동)[2001年부터]으로 「戰時(전시)」의 길을 열었으며, 이라크에의 陸上自衛隊 部隊(부대) 派遣[2004년]으로 「戰地(전지)」에의 派遣을 可能(가능)하게 했다. 그것은 1990年代 以後(이후), 自衛隊가 「普通軍隊(보통군대)」가 되는 過程(과정)이었다.



▶ 石破茂 防衛廳長官에게 듣는다. 「自主防衛論(자주방위론)」 있을 수 없다.



防衛廳·自衛隊가 發足해 50年을 맞이하는 것에 맞춰, 石破茂 防衛廳長官에게 役割(역할)의 變化(변화)나 向後의 課題 등을 들었다.





[Q] 自衛隊의 役割은 어떻게 바뀌어 왔는가.



[A] 나라의 獨立(독립)과 平和(평화)를 지킨다고 하는 役割은 바뀔 것은 없다. 걸프戰爭 以後의 變化에 대해 말하면, 國際社會(국제사회)의 責任(책임)있는 一員(일원)으로서 海外에서 武力(무력)의 行使以外(행사이외)에 무엇이 可能한가 라고 하는 役割이 더해졌다.





[Q] 自衛隊의 海外派遣에 恒久法(항구법)은 必要(필요)한가.



[A] 그때 그때에 [이라크復興特別措置法(IRAQ부흥특별조치법)과 같은] 特置法을 만들어 몇개월이나 論議(논의)하는 것이, 迅速(신속)하고 的確(적확)한 對應이 不足(부족)하다고 하는 점에 限定(한정)해서 말해도, 一般法(일반법)[恒久法]이 있어야 한다. 總論(총론)은 贊成(찬성)이지만, 테러로부터 多國籍軍까지를 한 개의 法律(법률)로 하는 경우, 法技術的(법기술적)으로 어려운 점도 있다. 제대로 論議해야 할 것이다.





[Q] 自衛隊의 將來像(장래상)으로서 「存在(존재)하는 自衛隊로부터, 機能(기능)하는 自衛隊로」라고 訓示하고 있는데.



[A] 彈道(탄도) 미사일, NBC[核(핵)·生物(생물)·化學(화학)] 武器(무기), 테러 등의 威脅(위협)에 대해, 지금까지 [그것에 對應)하는] 機能을 생각해 오지 않았다. 새로운 時代(시대)의 抑止力으로서 特殊作戰群(특수작전군)이나 MD[미사일 防衛] 등을 整備(정비)하거나 通信(통신) 네트워크를 構築(구축)해 陸海空[3개 自衛隊]의 統合運用(통합운용)을 圖謀(도모)해 迅速·的確하게 對應해야 한다.





[Q] 2003年5月의 日·美 首腦會談(수뇌회담)에서 「世界속의 日·美 同盟」이 謳歌(구가)되었다. 美國과 언제까지나 行動(행동)을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A] 美國과 日本은, 아시아의 安定(안정)이 自國(자국)의 國民福祉(국민복지)로 連結(연결)된다고 하는 意味(의미)에 대해 共通(공통)의 利益(이익)이 있다. 그것에 限定해도, 日·美 同盟은 維持(유지)되고 强化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 美國 追從(추종)이라고 말해지지만, 美國에 대해서 무엇을 제대로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 때문에, 어떤 能力을 日本이 가질지에 관해서 國民的(국민적)인 論議가 必要하다. [美國이] 지금까지 잘못했던 적이 없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日本으로서 主張(주장)하고 싶은 것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最終的(최종적)으로 美國을 信賴(신뢰)하는 것은 民意(민의)의 나라라고 하는 것이다.





[Q] 向後, 日·美 情報一體化(정보일체화)가 進行되어, 「美國의 從屬下(종속하)에 들어간다」라는 指摘에 대한 反論(반론)은.



[A] 그 思考方式(사고방식)을 糾明(규명)하면, 自主防衛論으로 가는가 라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核(핵)을 가지는 것인가, 自主防衛論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런 일이 可能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情報의 네트워크를 使用(사용)해, [日本만으로는] 豫知不可能(예지불가능)한 테러의 前兆(전조)를 어떻게 빨리 把握(파악)하는가, 美國과의 네트워크의 公有化(공유화)를 圖謀하는 것이 重要(중요)하지 않는가.





[Q] 自衛隊의 歷史는, 憲法 9條와의 整合性을 피할 수 없게 된 歷史다. 조금씩 處理(처리)해 나가기 라고 하는 解釋改憲(해석개헌)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가.



[A] 지금의 解釋에 대해 조금씩 處理해 나가기 라고 네가티브(negative)하게 말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軸(축)이 흔들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國際紛爭(국제분쟁)을 解決(해결)하는 手段(수단)으로서」라고 들어가 있지 않으면, 조금씩 處理해 나가기 라고 말해질지도 모르지만, [9條로 정한] 여기로부터 境界(경계)를 넘지 않았다. 지금의 解釋의 範圍內(범위내)에서 어디까지 可能한가 라고 하는 것이다.



http://www.mainichi-msn.co.jp/seiji/feature/news/20040628k0000m010105000c.html







[意見(의견)] 冷戰終結(냉전종결)로 日本 周邊(주변)의 海域(해역)에는 日本을 괴롭히는 威脅(위협)은 없어졌다. 이지스艦(Aegis Ship), P3C 對潛哨戒機(대잠초계기), 潛水艦(잠수함), 掃海部隊(소해부대), 이러한 部隊는 日本 周邊으로부터 敵(적)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美 海軍(해군)은 9.11 同時多發(동시다발) 테러 以後(이후), 아프가니스탄戰爭(전쟁)이나 이라크戰爭을 위해 印度洋(인도양)이나 아라비아海로 가 버렸다. 이것은 海上自衛隊(해상자위대)에 있어 存在感(존재감)을 모두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디까지나 海上自衛隊가 存在感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美 海軍과 共同作戰(공동작전)을 實施(실시)하는 경우뿐이다. 冷戰時代(냉전시대), 海上自衛隊는 美 海軍에 의해 그렇게 자라났다.



海上自衛隊는 살아남기 위해, 美 海軍을 뒤쫓아 印度洋이나 아라비아海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海上自衛隊는 外務省(외무성)으로부터 「너무 까불며 떠들기」라고 批判(비판)되어도, 福田康夫(후쿠다 야스오) 官房長官(관방장관)[當時(당시)]으로부터 獨斷專行(독단전행)이라고 不平(불평)을 들어도, 必死的(필사적)으로 生存策(생존책)을 摸索(모색)했던 것이다.



그러나, 日本 憲法(헌법) 9條(조)가 禁止(금지)한 集團的自衛權(집단적자위권)이 「調査(조사)·硏究(연구)」라고 하는 解釋(해석)으로 堂堂(당당)히 破壞(파괴)되고 있다고 周邊國家(주변국가)들로부터 批判(비판)되는 2004年의 現實(현실)은, 集團的自衛權을 認定(인정)할 2005年 以後(이후)의 憲法改正(헌법개정)으로 인해 歷史(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내달 1일 창설 50주년 맞는 日 항공 자위대



동아일보 2004년6월28일



"일본이 방패, 미국이 창이라는 관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미일 동맹은 새로운 공동의 적인 국제 테러에 맞서고 있다."



토머스 와스코 주일미군사령관은 27일 도쿄(東京) 인근 이루마(入間)기지에서 열린 항공자위대 창설 50주년 기념식에서 자위대와 미군이 '공동운명체'임을 강조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방위청 장관도 "일미 안보체제 강화로 전쟁 억지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이었던 일본과 미국은 반세기 만에 가장 믿는 동맹군으로 변했다.



# '군대 아닌 군대'가 세계 5대 강군으로



자위대는 1954년7월1일 육상 해상 항공 등 현재의 체제로 출범했다. 육상자위대의 전신은 1950년8월 발족한 경찰예비대. 6·25전쟁으로 점령군인 주일미군이 한반도에 투입되자 치안 유지를 위해 준군사조직으로 출범했다. 1952년엔 해상자위대의 전신인 해상경비대가 신설됐다.



이에 따라 육상자위대는 4년 전, 해상자위대는 2년 전에 각각 창설 5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2차대전 패전 후 제정된 일본 헌법은 '육해공군과 다른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규정해 '자위대(自衛隊)'의 성격을 말 그대로 '스스로를 지키는 부대'로 제한했다. 하지만 막강한 경제력에 힘입어 자위대는 세계 5대 강군의 반열에 올랐다.



# 자위대의 '세계 경찰' 야심



일본 집권 세력은 자위대의 위상을 강화하고 활동 영역을 넓히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집권 자민당과 제1야당인 민주당은 △전쟁포기 조항은 존속시키되 △자위대의 성격을 군대로 명시하고 △자위대의 국제활동도 허용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1992년 캄보디아 평화유지군(PKO) 참여로 해외파병의 길을 튼 자위대는 올해 이라크 파병을 계기로 '세계 경찰'로 나설 태세다.



전 세계 미군의 재배치 계획을 추진 중인 미국은 자위대에 동아시아 안보의 핵심 역할을 맡길 뜻을 내비치고 있다.



미 육군 제1군단의 일본 이전과 오키나와 주둔 해병대의 도쿄 인근 전진배치 등은 미군과 자위대를 한묶음으로 운용하려는 계획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고 군사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도쿄=박원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