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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없는 세상(I)

30년 전 모든 원자력발전소를 완전히 폐쇄했다.


오늘은 과거의 원전에서 발생된 사용후 연료를 드디어 처분장에 처분하기 시작하는 날이다. 소위 원자력 전문가들이 없어도 문제될 게 없다.


까짓거 땅 속 깊이만 묻으면 되겠지. 해동 원전 주변 사람들 참 말도 많았다. 하지만 우리 회원들 붉은 띠 동여매고 밀어붙였다. 환경을 위한다는데,


제깟 무지랭이들이 뭘 안다고 나서는지 원. 원자력발전소 뒷산 초입이


처분장의 입구이다. 저 거무튀튀한 입구를 통해 이 세상의 핵이 모두 사라질


것이다. 뿌듯하다. 요즘 들어 맞붙을 대상이 없으니 조금 심심하긴 하지만.


과거 원자력발전소의 취수구였던 자리에서 시작해 저 멀리 해수욕장을 돌아


동광군의 끝 마을인 산직리 포구까지 무려 100 킬로미터에 걸쳐 웅장한


풍차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조금은 걱정이다. 저렇게 많은 풍차들로도


원자력발전소 하나에서 나오는 전기를 만들지 못한다. 그나마도 30% 가까이가 해풍에 부식되어 제 기능을 내지 못한다. 매년 10% 이상 교체하고 있는데도


사정은 좋아질 기미가 없다. 작년에 모든 가정과 업소, 산업체의 에어콘


사용금지법안과 여름철 빙과류 제조 금지법안이 통과된 후 전기 공급문제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올 여름의 무더위다. 예보에 따르면 50도에 달할 것이라고 하던데, 내 나이도 늙어 그 더위를 견딜 수 있을까?


원자력을 계속 하였더라면 어떠했을까? 괜한 궁상 속에 빠져드는데 사이렌


소리가 귀청을 뚫는다. 앵- 앵- 앵- 앵- 또 오존 경보다. 몇 해 전부터 이제는 이런 시골에까지 오존 경보가 끊이질 않는다. 오존층 파괴로 자외선의 강도가 증가하면서 부쩍 그렇다. 손자 녀석 자외선 차단제는 바르고 나갔겠지?


집보다는 밖에서 뛰놀기를 좋아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다른 집 녀석들은 집에 틀어박혀 컴퓨터만 가지고 얌전히 잘도 노는데. 등산을 좋아했던 자식 내외가 10년 전 산에서 폭우를 만나 사망한 후 손자, 손녀 둘을 내 손으로 키웠었지. 그러다 피부암으로 둘째 손녀마저 떠나보내곤 하나 남은 손자 녀석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회사에서건 길거리에서건 항상 손자 녀석의 영상이 뇌리를


감싸고돈다. 자외선, 오존이 너무나 무섭다. 고개를 들자 뒷산 한 자락을


완전히 뒤덮고 있는 태양열 집열판이 번쩍거린다. 과거에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하던 송전망을 이용해보겠다고 풍력발전단지와 태양력 발전단지를


만들었던 것이 25년 전이다. 참 그때 원자력발전소 몰아내려고 열심히


뛰었었지. 그 덕택에 지금은 이곳의 소장이다. 아침회의에서 고장난 10번,


17번 셀을 오늘 교체한다고 했지. 전기 요금이 오르면서 태양전지 셀값이


너무 올랐다. 하기야 순 동으로 만들어야 하니 그렇겠지. 태양열 발전단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뭔가 허전해진다. 그래 저 산 중턱에 200년은 넘을 성 싶었던 소나무가 있었었지. 눈앞이 부해지면서 눈물 한 방울이 뺨을 가른다. 맑았던


하늘 저 편이 갑자기 어두워진다. 요즘은 도저히 일기를 예상할 수 없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일기가 뒤바뀐다. 기상청도 예보를 포기한지 오래다.


비 피할 곳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산중턱 직원들이 헐레벌떡 뛰어내려오는


모습이 안쓰럽다. 산성도가 높아 비를 맞으면 위험하다.


아이고. 나도 어서 뛰어야겠다.


헐떡거리면서도 원자력을 했던 것보다는 나을 거야라고 자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