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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아팠다고 해" 협박에 폭언까지…일하다 다쳐도 참는다 [스프]

[갑갑한 오피스] 4월 28일, 산업재해근로자의 날을 맞이하여

노동자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얼마 전 사무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50대 후반 정도의 여성 노동자였는데, 여러 요양기관을 옮겨 다니며 요양보호사로 15년 넘게 일하셨다고 했다. 얼마 전부터 허리가 계속 아프고, 특히 며칠 전 어르신을 침대에 눕히다가 삐끗해서 지금은 제대로 펴기조차 힘들다고 하셨다. 산재 신청 절차, 혜택 등 여러 설명을 해드리고, 지금 신청을 해도 승인까지 최소 6개월 이상은 걸리니 우선 제대로 진료받고 산재 접수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5개월만 기다렸다가 할 테니 다시 연락을 주신다고 하셨다.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어보니 지금 다니는 센터가 집에서도 가깝고 보수도 좋은데, 산재 접수를 하면 재계약이 안 될까 봐 걱정된다고 하셨다. 실제로 동료 중 한 분이 과거에 산재 관련 문의만 했을 뿐인데, 괴롭힘을 당하고 재계약도 되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런 행위는 이러하게 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중에라도 꼭 산재 처리하시라고 당부드리고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위와 같은 사업주의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은폐하거나 이를 교사 또는 공모한 경우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산업안전보건법 제57조 제1항) 그리고 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한 것을 이유로 해고 등의 불이익을 가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11조의2))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를 포함해 일터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로 숨지는 이가 하루 7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산업재해근로자의 날을 맞이해 근로복지공단 등으로부터 2019~2023년의 5년간 노동재해 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 재해를 인정받은 노동자, 공무원, 교직원 등이 1년 평균 18만 8,725명(하루 517명 꼴)이었다. 이중 재해 사망자는 2,570명(하루 7명)이나 됐다.

하지만 앞선 사례처럼 일하다 다쳤지만 산재를 신청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위 통계에서 빠져있다. 이들까지 포함하면 집계조차 불가능하겠지만, 산재 공화국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만큼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을 것이라 예상된다.

필자의 사례 외에도 주변에서 산재 신청을 방해하거나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하는 경우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일하다 다친 것도 억울한데, 산재 신청에 대한 괴롭힘으로 정신과 진료까지 받게 경우도 있었다.
 
"일하다 산업재해를 당했는데 회사에서는 산재 대신 건강보험으로 치료하라고 강요하고, 원래 저에게 병이 있었던 것처럼 말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를 거부하고 산재 신청을 준비하자 괴롭힘이 시작됐고, 폭언까지 했습니다. 모욕감과 수치심에 공황장애가 와 병원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정말 죽고 싶습니다." (직장갑질119)

과거 모 대기업 공장에서는 노동자가 작업 중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가는 사고가 있었는데, 동료 직원이 119에 전화하려고 신고했으나 담당 부장이 전화기를 빼앗아 통화를 중지시키는 사건이 있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많은 회사가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산재가 아닌 공상처리를 강요한다. 특히 건설, 중공업 등 하도급 계약관계가 주인 현장에서 하청 노동자들이 산재 처리를 못하도록 원청 업체에서 갑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산재를 은폐하려 하거나 산재 처리에 소극적인 이유는 추후 공사 입찰 자격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료 상승도 이유 중 하나이다.

지난 4월 28일, 산업재해근로자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되고 그 첫해를 맞이했다. 정부는 산업재해근로자의 날로부터 1주간 추모 주간으로 설정하고 '산업재해근로자 가족화합프로그램', '산재보험패널 학술행사', '산재 바로알기 영상 공모전'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다고 밝혔지만, 노동계는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어찌 됐든 그래도 올해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정부와 국회는 기념일 하나 더 만든 것에서 그치지 말고, 진정성 있게 산재 당사자들과 관련 단체들의 목소리에 귀를 더욱 기울여야 한다. 선보상 제도 도입 등 재해자들이 신속하게 치료받고 생계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 특히 중소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사업주의 산재 은폐 행위들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불이익이 두려워 산재를 신고할 생각조차 못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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