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T 유심대란, 항의하는 가입자
국내 1위 통신사 SK텔레콤에서 일어난 가입자 유심(USIM) 정보 탈취 사건이 큰 사회적 불안 요소로 작용하는 양상입니다.
SK텔레콤 망 사용 알뜰폰까지 가입자 2천500만 명, 즉 전 국민 절반이 쓰는 통신사에서 주요 서버에 해킹이 일어난 것이 최초 감지되고 열흘 가까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도 정확한 피해자 규모부터 유출 경로 등 대부분이 오리무중인 탓에 불안이 가중되는 양상입니다.
여기에 이 회사가 희망자 전원 유심 교체라는 특단의 조치를 꺼낸 뒤 이행 과정 초기 현장 혼란을 막지 못하면서 가입자 불만은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가 한두 달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최대한 신속하고 정확한 결과를 내는 것이 사회 혼돈 확산을 최소화하는 방 안으로 꼽힙니다.
28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전국 2천600여 곳의 T월드 매장에서 유심 무료 교체를 시작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유심 교체를 위해 긴 대기 줄이 늘어서면서 교체 서비스가 시작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유심 재고가 모두 소진된 매장들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대기자들은 분통을 터트리며 발길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SK텔레콤이 이달 준비 물량으로 밝힌 유심이 100만 개, 다음 달은 500만 개에 그쳐 당분간 유심 '품귀' 현상은 지속될 전망입니다.
SK텔레콤 직영점이 아닌 일부 유통점에서는 신규 개통용 유심을 확보할 목적으로 유심 교체 신청을 받지 않는 등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소비자들의 지탄을 샀습니다.
주말에 서울 동작구 한 매장에서 유심 교체를 하려던 정 모 씨는 "개통할 경우는 새 유심을 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예약해야 유심을 줄 수 있다고 한다"며 "신규 개통보다 기존 고객 불만 응대가 시급한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습니다.
SK텔레콤이 현장에 직접 가서 신청하는 불편을 해소할 수 있다며 이날 오전 8시 30분부터 개통한 온라인 유심 교체 예약 서비스도 이용자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오후 시간대까지 접속 지연이 이어졌습니다.
한 이용자는 "유심 예약을 하려면 T월드에서 인증번호를 받아야 하는데 문자가 안 온다"며 답답해했습니다.
매장에 방문하기 어렵거나 온라인을 통한 교체 예약이 힘든 고령층 등을 대상으로 '유심 교체 안내 메시지' 등의 제목으로 SK텔레콤 공지를 빙자한 피싱 문자도 횡행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사태 파장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SK텔레콤은 이날 오전 유영상 대표 등이 참가한 가운데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사이버 침해 사고 관련 설명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무상 유심 교체 서비스와 함께 소프트웨어 초기화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방침도 발표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심을 교체하지 않아도 개인정보 유출을 막는 효과가 동일하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SK텔레콤 측은 이날 설명회에 대해 "구성원 대상으로 아직 외부에 공개하기 어려운 기술 검토 사항이나 향후 계획 등을 설명한 자리였다"고 했습니다.
물리적 유심 교체가 당분간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소프트웨어적인 보안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다만 SK텔레콤이 해킹 사고를 법정 시한을 넘겨 신고한 점, 유출 정보의 성격과 경로 등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이 회사가 마련한 소프트웨어적인 보안 대책이 소비자 불안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지 통신업계는 회의적 시각을 나타냈습니다.
삼성전자 등 대기업의 임원 유심 교체 방침에 이어 정보기술(IT) 업계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카카오는 이날 SK텔레콤을 쓰는 직원을 대상으로 유심 교체 권고를 공지했고 네이버도 유심 교체에 관한 사내 공지를 냈습니다.
엔씨소프트도 이날 오전 "2차 피해 예방을 위해 SK텔레콤 사용 임직원은 빠르게 유심을 교체할 것"을 공지했고 넷마블도 교체 권고를 공지했습니다.
물리적인 칩을 다량 제조해야 하고 변경 절차에도 시간이 걸리는 유심 외에 이심(ESIM)이 유심 교체의 대안으로도 꼽히지만, 최신 기종이 아니면 이심 사용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또, SK텔레콤이 금융사고 예방에 특화했다며 강조하는 유심 보호 서비스 역시 서비스 신청을 위한 접속이 원활하지 않자 일부 가입자들 사이에서 "SK텔레콤이 우선 유심 보호 서비스를 일괄 적용하고 로밍 등 해외 사용이 필요한 소수에게 별도 조처를 하는 방안이 합리적이 아닌가?"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SK텔레콤은 "유심 보호 서비스를 강제할 수 없는 것은 보호 서비스를 적용해버리면 고객 스스로 원해서 하는 유심 변경이 안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서비스 가입 시점부터 가입자 의지가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해킹 사건 전모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불안감만 증폭하며 가짜뉴스, 피싱 공격 등 부작용도 커지는 양상"이라며 "정부의 조속한 사고조사 발표가 필요해 보인다"고 언급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