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관람객들이 청와대를 둘러보고 있다.
"혹시나 청와대가 닫힐까 보러왔어요."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를 찾은 문 모(60) 씨는 2022년 청와대가 개방된 후 첫 방문이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온 그는 "(탄핵) 시위할 때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오지 못하다가 선고가 나자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오게 됐다"며 웃었습니다.
이날 청와대는 오색빛깔 한복을 입은 외국인부터 반려견 목줄, 유모차를 끌고 온 내국인 방문객까지 인파로 활기가 가득했습니다.
오늘(10일) 청와대재단에 따르면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고 이후 청와대를 찾는 관람객 수는 급증했습니다.
탄핵 후 첫 일요일인 지난 6일에만 1만 714명이 찾아, 3월 일평균 관람객 수(4천364명)의 약 2.5배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5일과 7일에도 각각 5천324명, 5천510명이 청와대를 찾아, 전월 평균 대비 각각 1천 명가량 늘었습니다.
문 씨처럼 차기 대통령 선거 이후 청와대 관람이 중단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자 방문에 나선 이들이 많은 것으로 분석됩니다.
실제로 오는 6월 3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향후 대통령 집무실을 어디에 둘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 용산 집무실은 무엇보다 '비상계엄을 모의한 장소'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한 청와대에서 이전할 때부터 무속인 개입 의혹과 함께 수백억 원의 혈세가 투입되는 중대한 결정임에도 충분한 숙의를 거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각종 보안 문제도 제기됩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이 모(61) 씨는 "집무실 이미지가 주술로 더럽혀진 만큼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며 집무실 이전에 찬성했습니다.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새 집무실 후보지로는 청와대, 세종 등이 있습니다.
청와대로 집무실이 복귀되기를 바라는 시민들은 그 이유로 역사적 상징성, 위치적 이점 등을 꼽았습니다.
청와대에서 만난 문 씨는 "전통을 이어간다는 측면에서 이곳에서 계속 집무실 역사를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습니다.
그의 남편 명 모(65) 씨도 "개인적으로 청와대로 집무실을 되돌렸으면 좋겠다"며 "새로운 곳에 집무실을 마련하는 비용이 아깝다"고 말했습니다.
광주에서 10살 아들과 함께 올라온 정 모(38) 씨는 "청와대가 폐쇄된다면 아쉬울 것 같아 보러 왔다"며 "다시는 새로운 집무실이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대한민국의 상징적 공간이고, 역사가 오래된 만큼 이곳을 오래오래 집무실로 보존해주었으면 한다"고 희망했습니다.
직장인 이 모(34) 씨는 "대통령 집무실과 국회처럼 중요한 시설이 물리적으로 멀어지면 비상계엄과 같은 긴급한 상황에 시민들이 어떻게 모일 수 있나"라며 "시민들과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집무실로 세종시가 적합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청와대에서 만난 이 모(42) 씨는 "직접 와보니 청와대가 너무 화려하다.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대통령이 이렇게 화려한 곳에 사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며 "경기 침체로 힘든 국민의 삶과 괴리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씨는 "세종시도 충분히 개발된 만큼 새 집무실이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며 "한번 개방한 청와대를 다시 닫는다는 것에 대한 비판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직장인 정 모(31) 씨는 "경제·문화적 자본이 서울에 지나치게 집중된 만큼 행정적 기능만이라도 완전하게 지방에 이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지방 분권화는 부동산, 저출산 등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도 지목되지 않나"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다만 집무실의 위치보다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김포에 거주하는 최 모(37) 씨는 "위치보다 대통령의 소통 방식이 중요하다고 본다. 위치는 핑계일 뿐"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또, 20대 김 모 씨는 "이번 기회에 대통령의 소통 역량은 '집무실 위치'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 모두가 알았다"며 "마음만 있으면 집무실이 어디든 국민과 소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네이버 이용자 'oy***'는 "대통령 바뀔 때마다 집무실도 옮길 건가. 국민 세금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종국 인천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역사적 전통성, 비용 최소화 측면에서 청와대를 차기 집무실 대안으로 적극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국토 균형 발전, 정부와의 유기적 연계 효율성 등 측면에서 세종도 장점이 많지만 '개헌'이라는 큰 과제가 있는 만큼 아주 장기적으로 검토할 수 있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앞서 2004년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며 서울이 관습헌법상 수도라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당시 헌재는 국회·청와대·행정부처·대법원·헌재 등 국가 핵심 기관이 수도에 있어야 하며, 그중에서도 국회와 대통령의 소재지가 수도를 결정하는 데에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고 봤습니다.
서 교수는 "무엇보다 임기 중 졸속으로 서둘러 옮기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며 "장기적으로 신중하게 검토하고, 국민의 여론을 잘 수렴·반영해 과학적·합리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