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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일본의 과거사 사과" 전수 분석해보니… '사과'와 '망언'의 쳇바퀴

[사실은] "일본의 과거사 사과" 전수 분석해보니… '사과'와 '망언'의 쳇바퀴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관계 개선과 관련해 대국민 설득에 나섰습니다. 지난 21일에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왜 한일 관계를 풀어야 하는지 23분간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역대 최장 국무회의 '모두 발언' 기록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모두 발언은 TV로 생중계됐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우리에게 과거사 문제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표한 바 있습니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본이 한국 식민 지배를 따로 특정해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 표명을 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과 2010년 '간 나오토 담화'입니다.
- 윤석열 대통령, 지난 21일 국무회의

앞서 대통령실도 한일 정상회담 직후 일본 도쿄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역대 일본 정부가 일왕과 총리를 포함해 50여 차례 사과를 한 바 있다"면서 "사과를 한 번 더 받는 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런 걸까요. 일왕과 총리 자격의 공식 유감 혹은 사과로 볼 수 있는 표현들을 전수 분석했습니다. SBS 팩트체크 사실은팀이 검증했습니다.

사실은 윤석열 일본 사과 전수 분석 이경원

사실은팀은 이를 위해 논문과 보고서, 관련 서적, 옛날 신문 등 여러 자료들을 종합해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해방 이후, 일왕과 총리가 공식 석상에서 발언한 표현들을 모두 수집했습니다.

사실은 윤석열 일본 사과 전수 분석 이경원
1984년 9월, 한국 대통령과 일왕의 첫 만남이 있었다. 히로히토 전 일왕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 씨를 만나 "양국 간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일왕 자격으로는 처음으로 유감을 표했다.

사실은팀 분석 결과, 총리 자격으로는 지난 1983년 1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일왕 자격으로는 1984년 9월 히로히토 전 일왕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최소 53차례로 집계됐습니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주요 유감 표명과 사과를 정리했습니다. 일왕과 총리 자격은 아니지만, 참고하시라고, 한일 관계의 분기점이 됐던 고사로 젠타로 전 외무상의 유감 표현과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 담화도 포함했습니다.

사실은 윤석열 일본 사과 전수 분석 이경원

일왕과 총리 입에서 나온 표현 가운데, 처음으로 '잘못'을 말했을 때는 1984년, 자신들의 행위를 '침략'이라고 첫 표현하고 '식민 지배'를 인정한 시기는 1993년입니다.

1993년은 한일 과거사에 대한 전향적인 사과가 많이 나왔습니다. 당시 일본 총리는 자민당이 아닌 연립 내각의 호소카와 모리히로였습니다. 그해 11월 호소카와 전 총리는 나아가 "창씨개명과 위안부, 징용 등의 여러 형태로 괴로움과 슬픔을 당한 것에 대해 가해자로서 마음으로 반성하고 사죄한다"고 발언했습니다. 이는 선언적 의미의 사과가 아니라, 창씨개명과 위안부, 강제 징용 문제 등 세부적인 사안에 대한 사과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같은 해 호소카와 총리는 일본 국회 연설에서도 "태평양 전쟁은 침략 행위"라고 발언했는데, 갑작스러운 사과 정국에 극우 단체의 반발도 커져 갔습니다. 침략 행위 발언에 불만을 품었던 한 우익 단체 회원은 도쿄 신주쿠의 한 호텔에서 총리를 향해 총을 겨눴다가 경찰에 의해 발각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암살 미수 사건은 한일 사회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정점은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이었습니다. 당시 선언은 양국 정상이 직접 서명했던, 일본 정부의 사죄를 처음으로 문서화 한 사례로 기록됐습니다.

사실은 윤석열 일본 사과 전수 분석 이경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1998년 10월 8일,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함께 이른바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서명하고,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1990년대 일본은 호소카와 전 총리의 사과와 함께,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 식민지배와 침략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사죄하는 '무라야마 담화'까지, 과거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긍정적인 신호들이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태평양 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적극적으로 강행하면서 주변국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독도와 역사 교과서 문제도 불거졌습니다.

이런 기조는 아베 신조 전 총리 재임 기간 강해졌습니다. 그래도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1년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 순국한 독립운동가를 향해 참배하고,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걸 공식화했지만, 아베 전 총리는 그간 일본의 사과를 부정하는 역사 왜곡 발언을 자주 이어갔습니다. 한국 언론은 이를 '망언'이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아베 전 총리가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팀이 집계한 아베 전 총리의 공식적인 사과 표현은 19차례였습니다. 재임 기간이 길었던 만큼 사과나 유감 발언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총리 자격의 공식적인 사과 발언과, 공식적인 역사 왜곡 발언이 동시 나오면서 늘 사과의 진정성이 의심 받았습니다. 가령,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불과 6달 뒤 계승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실은팀이 아베 전 총리의 주요 사과 발언과 역사 왜곡 발언을 시기 별로 정리해 봤습니다.

사실은 윤석열 일본 사과 전수 분석 이경원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널뛰기를 했습니다.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부정하다가 한 달 만에 사과하고, 또 부정하며 민간 영역의 인신매매 피해자라고 말했다가 또 사과하고, 특히, 위안부 합의 이전 협의가 진행될 시기 사석에서 "내가 말했지? 기다리면 한국이 찾아올 거라고. 위안부 문제는 3억 엔이면 해결 돼"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도 큰 논란이 됐습니다. 불과 몇 달 새, 혹은 몇 년 새, 스스로의 사과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 쳇바퀴처럼 반복됐습니다.

2015년 한국언론재단이 미디어연구센터가 2005년 7월부터 2015년 6월까지 10년치 기사를 분석, 역사 왜곡 발언 당사자와 그 내용을 분석해 '연결망'을 만들어 본 결과, 그 중심 인물은 아베 전 총리, 핵심 내용은 위안부 문제가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사실은 윤석열 일본 사과 전수 분석 이경원
독도 문제를 빼면 나머지 주제는 …… 고노 담화(1993년), 무라야마 담화(1995년) 등 일본 정부가 반성의 뜻을 밝힌 적이 있는 것들이다. 이는 망언이 바로 그간의 담화와 정면으로 대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망언은 담화를 통해 과거사를 정리해온 한·일간의 오랜 노력을 수포로 만든다.
-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연구센터, '망언의 네트워크', 미디어이슈 1권 12호, 2015년

횟수 측면에서 보면, 사과나 유감으로 볼 수 있는 표현은 많이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2000년대 이전에는 유감에서 선언적 사과로, 선언적 사과에서 구체적 사과로, 나아가 문서화 된 사과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갔습니다. 피해 국가인 한국이 보기에 그 속도는 좀 더딜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과거사를 정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음은 분명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2000년대 이후 역사 왜곡 발언이 본격화하면서 그간 정리됐던 과거사가 흐트러졌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결국, '합계' 개념으로 보면 일본의 사과가 수십 차례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생존한 여러 피해자들과 이에 공감하는 이들이 그간의 사과들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사죄의 진정성' 문제,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인 이유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SBS 사실은팀은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 사과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팩트체크 했습니다. 사실은팀이 논문과 보고서, 옛날 신문 등을 종합, 일왕과 총리 자격으로 공식적으로 언급한 사과·유감 표현은 최소 53차례로 집계됐습니다. 사과의 '횟수' 기준으로는 사실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과·유감 발언이 나왔던 비슷한 시기, 공식적인 자리에서 역사 왜곡 발언도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 또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히 사과의 진정성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사과의 진정성은 팩트체크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지만, '역사 왜곡 발언'은 과거 사과나 유감 표현을 사실상 번복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한 만큼, 사실은팀은 윤 대통령의 발언을 '절반의 사실'로 판정합니다.

(인턴 : 여근호, 염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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