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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변속기 시험 성과에 당국 반응은?…"불편 · 난처" [취재파일]

전차는 그 자체로 육중한 데다, 산길 같은 비포장 길을 달리고, 대전차 공격이 날아오면 급가속해 회피기동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엔진과 변속기의 복합체인 전차 파워팩은 군 기동 장비의 동력체계 중 가장 콤팩트하면서도 강력합니다. 국산 K2 전차의 파워팩은 1,500마력입니다. K2의 3차 양산분까지는 국산 엔진에 독일제 변속기를 탑재했습니다. K방산 대표 전차의 심장이 반쪽 국산입니다.

작년 하반기 국산 변속기가 국내외에서 잇따라 내구도 시험을 완벽하게 통과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튀르키예 군 당국이 사막에서 실시한 수천 km 실주행 시험평가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 수출길에 올랐습니다. 업체가 방사청, 국방기술진흥연구소 등과 논의해 실시한 국내 내구도 시험도 너끈히 뛰어넘었습니다.

이와 같은 성과에 4차 양산부터는 국산 엔진에 국산 변속기가 장착된 진짜 국산 K2 전차가 나올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오산이었습니다. 방사청, 국방기술품질원, 국방기술진흥연구소 등 당국은 제아무리 완벽하고 포괄적인 시험평가라도 '4차 양산 최초 생산품 시험'이라는 간판을 내걸지 않았으면 무효라는 입장입니다.

외국 무기와 장비는 서류 평가만으로 도입하면서, 국산 장비는 국내외의 당국이 지켜보는 가운데 삼엄한 실물 시험평가를 거치고도 명목을 세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천덕꾸러기 신세입니다. 튀르키예 알타이 전차는 K2 차체에 한국제 엔진과 한국제 변속기를 장착해 등장하기 직전인데, 정작 K2는 언제 완전한 국산 심장을 달게 될지 미지수입니다.

국내 시험 바라보는 당국의 불편함


튀르키예와 국내 시험평가를 잇따라 통과한 SNT 다이내믹스의 전차 변속기

SNT 다이내믹스(구 SNT중공업)의 1,500마력 변속기 내구도 시험평가는 작년 9월 마무리됐습니다. SNT와 방사청, 국방기술진흥연구소, 그리고 K2 전차 체계업체인 현대로템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지정한 국가공인시험기관과 현대로템의 입회하에 변속기를 돌린 결과, 결함 없이 323시간 내구도를 증명했습니다.

엔진, 냉각기 등 파워팩 주요 장비들의 내구도 평가 규격은 "공장에서 완전분해 수리할 정도의 고장이 없으면 통과"인데 반해, 변속기 규격은 "야전 수리로 해결되는 고장만 생겨도 탈락"으로 까다롭습니다. 작년 국산 변속기는 이런 험난한 산을 넘은 것입니다. 게다가 규격상 전차 수명주기인 9,600km에 해당하는 320시간이면 되는데, 3시간 초과한 323시간 달리고도 쌩쌩했습니다. DT(개발 시험평가), OT(운용 시험평가)는 거의 10년 전에 통과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엄동환 방사청장은 작년 10월 국감에서 "320사이클에 대해 특별한 무리 없이 잘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몇 달 만에 방사청은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경호 방사청 대변인은 지난 2일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 "2022년에 실시한 시험은 업체 주관의 자체 평가였다", "4차 양산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주도하는 최초 생산 시험에 대해서 또 시험을 받아야 한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업체 주관이어서 인정할 수 없다"는 방사청 주장에, 기자는 "해당 시험 개시 과정에 방사청, 국방기술품질원,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어떻게 참여해 몇 차례 회의 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돌아온 방사청 답변은 "국방기술진흥연구소 주관 회의에서 한차례 논의된 바 있다", "업체 요청에 따라 국방기술진흥연구소에서 시험검증기관을 안내했다"입니다. 상위기관인 방사청과 국방기술품질원은 시험평가 과정을 전혀 몰랐고,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혼자 알아서 딱 한 번 협의했다는 투입니다. 방사청, 국방기술품질원은 정말 몰랐고, 국방기술진흥연구소는 단 한 번만 협의했을까요.

4차 양산 계획하는 당국의 난처함


지난달 UAE 방산 전시회에서 이종섭 장관 등 국방부 대표단이 SNT 측으로부터 국산 변속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엄동환 방사청장은 작년 국감에서 "(국산 변속기의 국내) 시험 결과를 꼼꼼히 따져 성능이 입증됐다고 판단되면 K2 4차 양산계획을 수립할 때 국산 변속기가 적용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기자는 방사청에 "해당 시험에 대한 (성능 입증) 분석은 누가 어떻게 진행했는지 설명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방사청은 "국방기술품질원에 업체가 제출한 결과 보고서의 검토를 요청했다", "국방기술품질원은 최초 생산품 검사가 필요하고, 업체 시험 간 발생한 정비 내용은 최초 생산품 검사에서 예방 가능할 것 판단했다"고 답했습니다. 당국과 논의해서 국가공인시험기관 입회하에 치른 작년 내구도 시험평가를 업체의 자의적 평가라고 폄하한 데 이어, 시험평가 결과에 대해서도 "한번 읽어는 봤다"는 분위기입니다.

국산 무기는 엄격한 실물 평가를 통과해야 하는 반면, 외국 무기와 장비는 절반 가까이 서류 평가만으로 도입되는 모순이 이미 국회에서 지적됐습니다. 국산 변속기는 국내외에서 공인기관 입회하에 실물 시험평가를 받고도 4차 양산의 간판 없는 평가였다는 이유로 배척되고 있습니다.

방사청 입장은 단호한 것 같지만, 사실 방사청, 국방부, 군 모두 내심은 난처합니다. 국산 변속기의 성능이 입증된 것은 불변의 사실입니다. 당국은 여기에 합격 도장 찍어주면 그만일 것 같은데, 그렇게 하자니 그동안 완장 차고 한 일이 별로 없어서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변속기 시험 평가 규격이 현저하게 가혹하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 협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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