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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파업 후 손해배상', 외국은 안 한다는데 정말일까?

[스프] '파업 후 손해배상', 외국은 안 한다는데 정말일까?

합리적 주장을 앞세워야 대중을 설득할 수 있다

김범주 기자

작성 2023.01.25 10:00 수정 2023.01.26 16:2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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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킬지 말지를 놓고 여야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회사가 파업 이후에 피해를 봤다면서 노조에 손해배상을 거는 걸 제한하자는 게 핵심입니다. 시민단체들이 모여서 법을 고치자는 운동본부를 만들었는데, 외국에서는 파업에 손해배상을 걸지 않는 데 우리만 악용하고 있다면서 이런 '팩트체크'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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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언론들도 이 주장을 그대로 인용해서 싣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주장, 사실일까요?


2.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이 아닙니다. 외국에서도 파업이 불법적으로 진행됐다면, 또 그것 때문에 사업주가 피해를 봤다면 노조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실제 사례를 들어보죠.

2012년 2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항공기 지상 통제를 맡은 관제사들이 파업을 했습니다. 월급을 최대 50% 올리면서 동시에 근무 시간은 줄여달라는 요구를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파업 9일째에, 법원이 불법 파업이라는 결정을 내놓습니다. 공항 측은 파업 기간 동안 항공편 1천7백 편이 운행을 못 했다면서 노조를 상대로 520만 유로, 우리 돈으로 69억 원을 물어내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습니다.

1심, 2심은 노조 손을 들어줬습니다. 노조가 파업 과정에서 실수는 했지만, 불법으로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4년 만인 2016년, 최종심인 연방 노동법원이 이 결정을 뒤집습니다. 당시 파업은 불법이 맞고, 회사 측이 받은 피해가 인정되는 만큼 그 돈을 노조가 책임져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겁니다.

다른 나라의 예도 있습니다. 이번 건은 더 최신입니다. 작년 7월, 캐나다 퀘벡 주 최고 법원이 '퀘벡 건설 노동자 연맹'에 990만 캐나다 달러, 우리 돈 90억 원을 물어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사건은 2011년에 벌어졌습니다. 이 건설노조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이 추진된다는 소식에 이틀간 파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노조원들을 건설 현장에서 뺀 것에서 그치지 않고, 대신 일을 하러 온 일부 비노조원들을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건설회사 측과 비노조원들이 이 행동 때문에 손해를 봤다면서 노조에 소송을 걸었는데, 법원이 이쪽 입장을 받아들인 겁니다.

다른 나라는 손해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있어도 1950년대 이후로는 없다는 주장은, 따라서 사실과 거리가 먼 주장입니다.


3. 외국은 노조에 손해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는 합니다. 무엇보다 '불법 파업' 자체가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예를 들어보죠. 독일은 원래 전통적으로 파업을 잘 하지 않습니다. OECD에서 가장 파업을 많이 하는 나라 프랑스에 비해서, 독일은 파업이 8분의 1 수준입니다. 독일에서는 재계 대표와 산업 대표 노조, 혹은 지역 기업 대표와 지역 노조가 큰 틀에서 합의를 하면, 개별 회사와 노조는 그 범위 안에서 협상을 마무리하는 게 문화입니다. 이걸 '평화 유지 의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협상은 평화, 파업은 불화'라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파업 자체가 적게 발생하고, 불법 파업은 더 적고, 실제 손해배상 사례도 많이 나오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데 만약 개별 회사 노조가 그 큰 틀의 합의를 넘어서는 요구를 하면서 파업을 벌이면, 이 파업은 불법이 됩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 건도 산업 대표들끼리 한 합의를 넘어서는 요구를 했기 때문에, 법원이 불법으로 규정하고 손해배상을 명령한 겁니다. 결론적으로 '노조법 개정본부'가 앞에 올렸던 팩트체크에서 주장했던 "독일은 원칙적으로 모든 파업이 형법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부터 사실과 다르고, 불법 파업이 드물어서 그렇지, 손해배상 사례도 존재합니다.


4. 외국에서 손해배상 사례가 적은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2001년에 만들어진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빌리는 영국 북부 탄광촌에 살고 있는 11살 소년입니다. 어느 날 발레에 푹 빠지게 되는데, 아버지 '재키'가 막아서죠. 본인처럼 당연히 아들도 광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섭니다. 그런데 아들의 재능을 확인하고는, 런던에 있는 왕립 발레학교에 입학을 시키겠다는 꿈이 생깁니다. 하지만 당시 광산은 파업 중이었고, 아버지도 여기에 열성적으로 동참하고 있어서, 런던에 시험 보러 갈 차비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고민하던 아버지는 결국 동료들을 뒤로하고, 혹은 배신하고, 탄광에 들어가는 버스에 오르기로 합니다.

이 탄광노조 파업은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입니다. 1984년 당시 대처 수상은 영국 북부 탄광촌에 석탄 광산 20곳을 단번에 폐쇄하면서, 곧 70곳을 더 문 닫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순식간에 2만 명이 넘게 일자리를 잃자, 광부 18만 7천 명이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 파업에 돌입합니다. 정부는 우리나라 80년대 백골단을 방불케 하는, 초강경 진압으로 대응하고요. 파업은 1년간 이어졌지만, 결국 대처가 승리했고 노조는 굴복했습니다. 그리고 한때 3천 개까지 됐던 탄광들은 지금은 거의 다 폐광이 돼버렸습니다. 대처 수상이 사망했을 때 이 탄광촌 곳곳에서 축제가 벌어졌을 정도로, 지금까지도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 사건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기마 경찰이 몽둥이를 휘둘러서 노조원들이 피가 터지는 등, 격렬한 파업 장면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쭉 보다 보면, 한국 사람 입장에선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그 정도 극렬한 투쟁을 하면서도, 노조원들은 탄광에 일하러 들어가는 비노조원들을 물리적으로 막아서지 않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항의를 할 뿐입니다. 유튜브에 그 부분만 담은 영상이 있으니까 한 번 보시죠. 또 원천적으로 일을 못 하게 탄광에 들어가서 점거 농성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역시 그런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당시 파업 1년 동안 노조원 총 9,808명이 경찰에 체포됐는데, 당시 자료들을 쭉 찾아봐도 마을에서 마주친 비노조원이나 경찰에 폭력을 휘둘러서 체포가 됐지, 탄광을 점거했거나 사업장에 들어가서 충돌을 벌인 일이 있었다는 경우는, 제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5. 외국 대부분 나라에서는, 이렇게 파업을 해도 노조가 사업장을 점거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드나드는 걸 막지 않습니다. 영어로 '파업'은 '피켓팅'과 동의어로 쓰입니다. 파업 때 노조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출근을 하지 않고 피켓을 들고 항의하는 것' 정도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 영국에서는 간호사들이 파업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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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영국 정부 홈페이지에는 파업 때 이런 행동을 하면 '범죄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 피켓 시위를 할 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위협이나 모욕을 하는 경우
- 작업장에 들어가는 차나 사람을 막는 경우
- 무기를 갖고 있는 경우
- 재산에 피해를 주는 경우
- 주변 도로를 막으려고 시도하는 경우
- 사업장 밖에서 경찰이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막는 경우


(출처 : 영국 정부 사이트)

이런 행위를 골라서 범죄로 규정한 건, 반대로 이걸 어기면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조도 원칙을 지키고 있고요. '빌리 엘리어트'의 그 강성 광부 노조가, 그 극한투쟁 상황에서도, 점거농성도 비노조원을 막아서지도 않았던 데는 이런 배경이 있는 겁니다.

따라서 외국에서는 법으로 기업이 노조에 손해배상을 걸지 못하도록 돼 있는 게 아니라, 노조가 불법 행위를 드물게 하기 때문에 손해배상 케이스도 드물다는 결론이, 그래서 더 사실에 맞다고 봐야 합니다.


6. 노란봉투법은 안된다, 노조도 손해배상 계속해라, 이런 이야기를 드리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비정규직 노조는 원하는 걸 얻어낼 수단이 극히 제한돼 있습니다.

정규직 노조는 파업을 해도 회사가 일 대신할 사람을 투입할 수 없도록 법에 정해져 있어서, 영국처럼 피켓만 들고 서 있어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또 옛날엔 회사가 손해배상도 걸고 업무방해로 고발도 하고 했지만, 최근 10년 사이에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대부분 족쇄를 풀어줬습니다. 그래서 노조에 손해배상을 요구한 최근 사례를 담은 기사를 쭉 찾아봐도, 10년 전 15년 전 일들이 대부분이고, 특히 정규직 노조를 상대로 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다릅니다. 파업을 하면 회사가 곧바로 다른 사람을 투입할 수 있습니다. 파업 이후에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식으로 자르기도 편합니다. 대우조선 비정규직 노조가 그래서 배 만드는 도크에 들어가서 농성을 했던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상황이 절박하다고 하더라도, 국제적으로나 국내 법적인 기준으로나, 이런 파업 행위는 합법이 되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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