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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군중이 군중을 삼켰다

마부뉴스 일러스트
지난주 토요일 밤, 이태원에서 안타까운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해밀톤 호텔 옆 작은 골목에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는 수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11월 3일 기준으로 156명의 사망자와 187명의 부상자가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죠. 우선 이태원 참사로 사망한 분들의 명복을 빌면서 이번 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부상을 입으신 분들도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오늘 마부뉴스에서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해봤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시 이태원 골목에 모여있었는지 왜 안타까운 참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데이터로 분석해보고, 우리가 미쳐 놓치고 있었던 대규모 군중 밀집 현상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럼 바로 시작해볼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렸을까


이태원에 사람들이 얼마나 몰렸는지 살펴보기 위해 여러 데이터를 찾아봤습니다. 군중 규모를 파악하기 가장 좋은 데이터는 아마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생활인구데이터일 겁니다. 생활인구데이터는 서울시와 KT가 공공데이터와 통신데이터를 이용해서 특정 지역과 시점에 존재하는 인구를 추계하는 데 사용됩니다. 보통 시위 규모나 유동인구를 분석하는데 많이 쓰이죠. 하지만 생활인구데이터는 집계구와 행정동 단위로 파악되기 때문에 군중의 밀집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생활인구데이터 분석이 아닌 다른 분석 방법을 사용해봤습니다. 마부뉴스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딥러닝입니다. 이번 사고가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발생한 참사이니만큼 인파 규모를 파악할 수 있도록 이미지를 통해 군중의 수를 추정해보는 딥러닝 분석을 해봤습니다. 딥러닝에는 군중 규모를 파악하는 Crowd Counting Model이 꽤 나오고 있거든요. 그중 2017년 8월에 발표된 crowdcount-cascaded-mlt라는 모델을 이용해 이태원 군중의 수를 파악해봤습니다. 모델을 통한 추정이니만큼 실제 수치와의 오차는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어두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인 어두운 밤 상황이라 원래 군중 규모보다 적게 나올 가능성도 있고요.
이태원 골목 상황, 분석 영상 이미지

당시 현장 상황이 담겨있는 이미지를 분석해서 지도로 나타내 봤습니다. 가장 큰 이미지(아래 이미지)는 사고가 나기 직전 해밀톤 호텔 별관에 있는 데이앤나잇(DN) 앞의 모습입니다. 이 이미지로 군중 규모를 분석해보면 1,133명의 추정치가 나오죠. 네이버 지도에서 해당 영역의 면적을 계산해보면 약 130㎡가 나오는데, 단위면적으로 계산해보면 1㎡당 8.7명으로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나머지 구역의 추정 인구는 각각 466명과 112명. 보수적으로 추정된 숫자로 보더라도 좁은 영역에 굉장히 많은 사람이 몰렸다는 걸 알 수 있죠.
1제곱미터당 5명이 최대치, 넘어서면 고위험

군중 사고 전문가인 영국 서퍽 대학교의 키스 스틸 교수는 1㎡당 5명을 넘어서면 군중 사고 위험성이 커진다고 이야기합니다. 1㎡당 3.5명에서 4명은 그래도 걸을 때 앞뒤로 다리가 걸리지 않아 각자 360도를 움직일 수 있지만 1㎡당 5명을 넘어서면 움직임의 자유가 없어지면서 뒤엉키기 시작하죠. 이번 마부뉴스 분석에선 밀집도가 최대 8.7명으로 나왔으니까 상황이 정말 심각했던 겁니다. 마부뉴스 분석보다 더 높은 군집도가 나온 결과도 있습니다. 사고 당시 이태원 골목 영상을 분석한 전문가는 최대 1㎡당 16명이 밀집해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군중 사고는 후진국형 사고가 아니다


“과연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인 걸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번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들었을 때 가졌던 느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 같고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압사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재난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물론 선제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부분에서 후진국형 사고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구가 늘어나면서, 혹은 대도시로 인구가 몰리면서 군중 압사 사고는 앞으로 발생 가능성이 더 높아질 거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합니다.
1950년부터 2022년까지 연도별 전세계 군중사고 발생현황

데이터로 살펴볼게요. 위 그래프는 1950년부터 2022년까지 전 세계에서 발생한 군중 사고를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World Crowd Disaster Web Map에서 수집한 전 세계 군중 사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려봤습니다. 적지 않은 규모의 군중 사고가 거의 매년 발생하고 있고, 최근 들어 그 빈도가 늘어나고 있는 게 보일 거예요. 연대별로 끊어보면 증가 흐름이 더 명확합니다. 1950년대 군중 사고는 2건에 불과했지만 2000년대까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거든요. 2000년대에 57건으로 가장 피크를 찍었고, 2010년대에는 40건으로 집계됐지만 흐름으로 보면 군중 사고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가장 많은 군중 사고는 종교 활동에서 일어났습니다. 지난 73년간 조사된 174건의 군중 사고 중 68건, 그러니까 39.1%가 종교 활동에서 발생했죠. 그중에는 역대 최악의 피해규모를 기록한 사우디아라비아 하지 압사 사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5년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한 이 압사 사건으로만 최소 717명(당국 집계), 최대 2,411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종교 활동 다음으로는 스포츠 경기(46건), 오락(33건) 활동으로 조사됐습니다.

 
Q.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다른 군중 사고는?

사실 World Crowd Disaster Web Map에서 모든 군중 사고를 기록하긴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군중 사고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보고되지 않는 사고들도 많이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는 상황이죠.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한 군중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해당 DB에는 이번 이태원 참사를 포함해 우리나라 군중 사고를 딱 두 건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1959년 7월 부산공설운동장에서 진행한 시민위안잔치에선 소나기를 피하려는 관중 3만여 명이 좁은 출입구로 밀리며 67명이 압사한 적이 있었는데, 이 사건이 이번 이태원 참사를 제외하고 군중 사고 중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던 사건이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2005년 10월 경상북도 상주 시민 운동장에서 가요 콘서트 공연장에 5천여 명이 몰리며 11명이 숨졌던 사건이 있었죠.
 

밀집의 일상화, 우리 일상 상황은?


군중 사고가 늘어나는 추세일 뿐 아니라 사실 우리 일상 속에서도 심심치 않게 군중 밀집 상황을 접하고 있습니다. 인스타 맛집이 즐비한 핫플레이스에 가면 수많은 군중에 휩쓸려 내 의지대로 움직이기 어려울 때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타 있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온몸을 써서 비집고 들어가야지만 움직일 수 있죠. 대규모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콘서트나, 큰 경기장에서 열리는 경기를 관람할 때면 수많은 인파들 속에서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사고만 나지 않았을 뿐, 이미 과밀화된 환경은 우리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어요.

지하철 데이터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밀집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서울교통공사의 지하철 혼잡도 데이터를 살펴보면, 2021년 기준으로 가장 혼잡한 노선은 141%의 혼잡도를 기록한 4호선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하철 혼잡도는 한 칸의 승객수 160명을 기준으로 환산한 수치를 의미하죠. 열차 한 칸에 서 있는 승객 없이 모든 승객이 좌석에 앉게 되면 총 54명이 앉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106명의 서 있는 사람까지 더하면 160명. 국토교통부에선 이렇게 160명이 꽉 찬 경우를 혼잡도 100%로 보고 있어요. 141%라는 건 평균 226명이 열차 한 칸에 탑승했다는 의미인 거죠.
2호선, 4호선의 출근시간 혼잡도. 한성대입구역은 1제곱미터당 4.5명의 혼잡도를 나타낸다

혼잡도 1등인 4호선, 그리고 2등을 기록한 2호선(149%)의 데이터로 출근시간의 군중 밀집도를 분석해봤습니다. 군중 밀집도가 크면 클수록 각 역에 표시된 원은 크게 나타납니다. 출근 시간에 밀집도가 상당한 게 느껴지죠? 2호선과 4호선 중에 가장 높은 밀집도를 보인 건 한성대입구역입니다. 한성대입구역의 출근시간(8시, 8시 30분) 평균 혼잡도는 무려 150.8%. 혼잡도 150.8%를 인원수로 치환해보면 지하철 한 칸에 241명이 나옵니다.

좌석을 뺀 지하철 열차 내 공간은 42㎡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열차 내 단위 면적당 인원수를 계산해보면 어느 정도의 수치가 나올까요? 한성대입구역의 군중 규모는 1㎡당 4.5명! 군중 사고 전문가들이 경고한 1㎡당 5명에 육박한 수준입니다. 한성대입구를 비롯해 출근시간에 1㎡당 4명이 넘는 역은 4곳(길음, 성신여대입구, 한성대입구, 혜화)이나 됩니다. 매일 출근시간에 이 4역을 지나는 사람들은 본인 의지대로 몸을 가누기가 어렵고, 정차할 때마다 좁은 공간을 비집고 움직여야만이 하차할 수 있는 상황인 거죠.
 

체계적 관리만이 대안


압사 사고는 대규모 군중이 모이는 곳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도시뿐 아니라 작은 지자체에서도 사람이 많이 모인다면 언제든지 참사의 가능성은 존재하죠. 실외에서 뿐 아니라 지하철 같은 실내에서도 참사는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건 체계적인 관리뿐입니다. 지난 10월에 여의도에서 열린 불꽃축제에는 100만에 가까운 인원이 모였고 당시 서울시가 중심이 돼 합동종합본부가 운영됐었죠. 반면 이번 이태원에는 137명의 경찰만 투입됐을 뿐 현장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진 않았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군중이 모인 여의도에선 아무런 인명피해 없이 행사를 마무리했지만, 이번 이태원에선 그러지 못했어요.
체계적 관리 필요

2010년 독일 뒤스부르크에서 러브 퍼레이드라는 이름의 EDM 축제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로 청년들이 몰리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했죠. 이 사고로 21명이 사망했고, 652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독일은 참사를 참사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를 중심으로 압사 사고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관련 모델을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군중 밀집을 관리하고 체계적인 대비를 하고 있죠. 군중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말이에요. 우리나라도 참사가 참사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철저히 대비하고 관리가 필요합니다.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막는 정부의 노력도 필요해 보여요. 군중 압사 사고는 어떤 한 사람에 의해 사건이 촉발되기보다는 다수의 군중이 모여있는 상황 자체가 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고 피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지우는 모습들이 보이고 있더라고요.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의 책임 있는 움직임이 하루빨리 나오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도 뒤따라야 할 거고요. 오늘 마부뉴스가 준비한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하루빨리 이태원 참사로 피해를 본 모든 분들이 건강히 일상으로 돌아오길 바라며 이번 편지를 마무리할게요. 끝까지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본 기사는 마부작침 뉴스레터를 편집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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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김도연, 주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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