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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젊은 동년배들이 사주를 배우는 이유

[어쩌다] 젊은 동년배들이 사주를 배우는 이유

정혜경 기자

작성 2022.02.05 08:15 수정 2022.02.05 10:2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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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 운세, 토정비결은 연말부터 이맘때 가장 많이 검색되는 단어들이죠. 지난해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에 좋은 준비물이 됩니다. 이제는 '용하다'는 입소문 탄 명당 찾아 나서는 데 필요한 노력도 부쩍 줄었습니다. 손에 든 휴대전화로 다 찾아볼 수 있거든요. 그것조차 귀찮다면 그냥 유튜브를 켜면 됩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당신을 지금 당장 위로하기 위한 수 천 개의 타로 영상이 종류별로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불안 사회'의 방증이라고만 말하기엔 명리, 사주, 역학, 무속 같은 말들이 정치 뉴스에 이렇게 자주 등장하는 것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 발흥해 수 세기 동안 한반도 역사와 함께 한 무속과 역학이 다시 뜨거운 이슈의 한복판에 떠올랐습니다.

이런 '떡상'의 배경엔 젊은 세대의 뜨거운 관심도 있습니다. 고루한 토속 신앙의 잔재, 낡은 세대의 전유물이라기엔 요즘 젊은이들의 '사주 사랑'이 유별납니다. 성격 유형 검사 MBTI와 감히 쌍벽을 이루는 '셀프 탐구'의 도구가 됐습니다. 사주 역학은 어쩌다 요즘 것들의 마음을 이토록 사로잡게 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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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보편화되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당최 사주가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을 위한 부연설명 갑니다. 통상 사주 역학의 원리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이 굿이나 점술을 뜻하는 '무속'과의 차별성입니다. 이제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사주 풀이의 재료는 정해져 있습니다. 태어난 해와 날짜, 그리고 시간인데요.

연, 월, 일, 시가 굵직한 네 개의 기둥, 사주(四柱)가 됩니다. 그리고 이 기둥에 각각 두 글자씩, 도합 8개의 글자를 '팔자(八字)'라 부릅니다. 흔히 말하는 '사주팔자'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사주공부'라 부르는 것을 '명리(命理)'에 관한 학문이라 부릅니다. 우주의 원리를 인간 삶에 적용시킨 연구를 이릅니다. 다시 말해 이 여덟 글자는 당신의 삶을 인식하는 '바코드'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해설가별로 제각각 다른 풀이와 해석을 내놓을 수 있지만 이 바코드는 모두 1900년대 고종 재위 시절 출간된 역서(달력) 만세력에 유래를 두고 있습니다. 요즘은 사주 카페를 가도 '선생님'들이 수상쩍은(?) 휴대전화 화면을 보면서 해설을 해주는 경우를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이때 참고하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생년월일시에 해당하는 만세력입니다. 만세력은 달력을 60갑자로 표기한 형태인데요. 지구가 태양을 도는 궤도를 계절 단위로 분절한 24절기에 따라 각 순서대로 글자의 조합이 이뤄집니다. 누가 계산하든 같은 결과가 나오지만 암산에 시간이 다소 걸릴 수는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의뢰인 앞에서 이것저것 써가며 암산 실력을 뽐냈던 과거와 달리 현대에는 각종 웹사이트와 모바일 앱에서도 검색어를 입력하면 만세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 역술인 카페에선 "손님이 앞에 있는데 이 책, 저 책을 뒤져가며 복잡한 계산을 하다간 체면이 손상되기 일쑤"라며 "복잡한 계산은 컴퓨터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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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력에서 추출한 팔자는 음과 양, 또 오행(五行)이라는 기운을 따릅니다. 오행은 우주의 질료로 일컬어지는 나무, 불, 흙, 금, 물을 뜻합니다. 음양과 오행은 비단 사주 뿐 아니라 풍수나 작명과 같이 동양 문화에서 전해 내려오는 중심 개념이죠. 이 성질들이 추가되면서 사주 해석의 경우의 수는 더욱! 방대해집니다.

재밌는 점이 있습니다. 앞서 만세력이 지구의 공전 궤도를 분절한 24절기를 따른다고 말씀드렸죠.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감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그러다보니 중국과 한국과는 계절이 반대인 호주, 뉴질랜드 등 '남반구'에서 태어난 이들의 사주는 조금 더 복잡한 계산이 필요합니다. 지구의 어느 쪽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사주 풀이가 달라지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요즘엔 만세력을 제공하는 모바일 앱에서 사주 풀이 대상자의 출생 장소도 기입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출생지의 위도와 경도에 따라 만세력 데이터의 시차를 반영하는 겁니다. 명리학의 세계화를 위한 현대적 변용이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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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설명하면 어려우니 우리 주제에 어울리게도 마침 <운명> 교향곡을 작곡한 독일 출생의 위대한 작곡가 루트비히 반 베토벤의 '바코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강헌의 <명리>에 따르면 베토벤은 독일 본에서 1770년 12월 16일 새벽 3시 40분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만세력 앱을 돌려보니, 베토벤은 '경인'년 '무자'월 '임인'일, '임인'시생 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오행은 통상 팔자에 색깔로 표시됩니다. 녹색은 나무, 검정색은 물, 흰색은 금, 노란색은 흙을 뜻합니다. 베토벤의 팔자는 오행 중 나무와 물의 기운이 각 3개씩 있고, 흙과 금이 하나씩 있습니다. 우리 베토벤 씨는 불이 없는 팔자입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해석 방식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주 이론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구들을 살펴보면 사주의 해석 방법은 사회경제체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해상 무역 세력을 바탕으로 세워진 고려에서 항로와 밀접한 밤하늘 별점이 '관학'으로 자리한 반면, 농경이 주류였던 조선에선 절기에 맞춰 경제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지상 과제였습니다. 별점과 관학의 지위를 공동 점유하던 사주는 조선 후기로 접어들수록 차츰 주류가 됐습니다.

봉건사회가 점차 근대로 진보하고, 집단에서 개인으로 시대정신의 무게추가 이동할수록 '조상'과 '부모'를 뜻하는 태어난 해(연주)에서 '본인', '자아'를 뜻하는 태어난 일(일주)로 사주 해석의 주체가 이동하기도 합니다. 과거 문헌에도 중국 송나라 이전의 사주술은 사주 8자 가운데 연주 두 글자를 중심으로 하고 일주와 월주를 보조 자료로 삼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요즘도 그렇죠. 일례로 과거엔 여자의 사주에 '관(官)'이 많으면 '문란하다'고 해석했습니다. 본래 '관'은 관직과 벼슬을 의미하지만 여자가 관직에 진출할 수 없었던 시대엔 사실상 신분 상승에 영향을 끼쳤던 건 결혼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과거엔 여자에게 '관'은 '남자'로 해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요? 완전히 다른 해석이 적용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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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는 현대적 해석으로 이른바 '대박'내는 사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IT대기업 출신 엔지니어 두 명을 포함해 다섯 명이 의기투합해 창업한 '포스텔러'는 창업 5년 만에 누적 가입자 수 국내 460만 명을 달성했습니다. 2022년 2월 현재 월 방문자 수는 국내 100만 건, 해외 70만 건에 이릅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등장시켜 사주, 점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개개인의 성격과 범주를 쉽게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 게 입소문의 비결인 것 같다고 심경진 대표는 말합니다. 결국 '데이터'로 환원할 수 있는 만세력과 풀이도 그간 업으로 삼던 프로그래밍 언어와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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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케이스에 대응할 수 있는 해석 알고리즘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현대적 변용에 가장 중점을 뒀습니다. 가령 시대와 역행할 수 있는 '현모양처'라는 표현을 모두 들어냈습니다. 상황에 따라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을 순화하고, '팩폭'보다는 '위로'에 초점을 뒀습니다. 사용자 데이터를 살펴보니 불안과 초조함에 '정답'을 찾던 방문객들은 이제 마치 출석도장을 찍듯 거의 매일 앱에 접속하고 있습니다. 한국 이용자들의 주간 앱 실행횟수는 평균 6회에 이릅니다.

사주와 운세 수요의 방대한 데이터가 점차 쌓이면서 지난 5년간 조금씩 변화한 사용자들의 '욕망 트렌드'도 눈에 띕니다. "사실 사용자들이 늘어나면서 패턴이 다각화되긴 했습니다. 다만 시즌별로 일정한 흐름이 있긴 했습니다. 가령 1월에 가장 많이 보는 운이 '재회운'입니다. 연말에 사귀고 헤어지고 1월에 굉장히 많은 이용자들이 다시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시더라고요."

코로나 시국도 사용 패턴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됩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애정운 수요가 굉장히 컸습니다. 설문을 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재물, 직장 이런 이야기들을 하시지만 실상 사용 패턴에선 애정운이 중심이 될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코로나 사태를 기점으로 저희가 준비한 애정 콘텐츠들의 반응이 굉장히 낮아지고 도리어 직업 적성이나 미래 취업 이런 것들이 확 올라갔습니다. 시대적 배경이 바뀔 때마다 사주와 운세에 기대하는 바에 바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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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에 대한 근래 대중들의 관심은 '과몰입 매니아'를 양산하고 있는 MBTI 콘텐츠와도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습니다. 집단보다는 개인을 중심에 둔 해석을 선호하면서도, 어디인가엔 꼭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양가적 욕망이 그것입니다. MBTI 16가지 유형의 특성과 행동 양식을 공감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성격과 행동을 집단의 울타리 안에서 '인준'받으려 하는 것처럼 명리학 역시 '요즘 것들'의 정체성 찾기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정체성 탐구의 수요는 '사주 스터디'에서 정점을 찍고 있습니다. 최소 5만 원, 10만 원 수준의 사실상 정찰제가 적용되고 있는 사주 시장에서 벗어나 스스로 명리학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인기 강의 플랫폼 '클래스101'을 비롯해 여러 온라인 강의 플랫폼에서는 자신이 사업을 해도 될지 여부를 배울 수 있는 이른바 '비즈니스 사주', '재테크 사주' 등 여러 구체적 상황을 타깃으로 삼고 사주 풀이를 교육하는 강의들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자아 탐구의 영역은 특정한 상황 속에서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상상 공간으로도 뻗어갑니다. 포스텔러 심경진 대표는 사주 풀이 알고리즘 위에 서양의 점성술, 별자리 운세 등 다양하게 결합할 만한 이른바 '혼종 아이템'도 갈수록 '대세'가 되고 있다고 전합니다.

포스텔러에서 출시한 사주 명리와 MBTI 결합 콘텐츠
"시대 전반적으로 최근 사주에 대한 관심은 '범주화'에 대한 욕망의 일환인 것 같아요. '너는 이런 타입이야, 저런 타입이야'라고 대화하는 방식이 최근 몇 년 사이 자리를 잡았죠. 자신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행동하는 게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인지를 알아보려는 시도인 것 같아요. 우스갯소리로 저희끼리는 취업을 준비하는 20대들 일부는 자기소개서를 쓸 때 저희 앱을 이용하지 않을까 한다는 얘기도 해요. 그 정도로 자신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망이 사용 패턴에서 많이 읽힙니다."

진지한 운명론이라기엔 게임처럼 가볍고, 미신으로 치부하기엔 생각보다 더 큰 위로가 되는 성찰 도구. 2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동양 철학의 분파가 '요즘 것들'에게 재기 발랄하게 전유되고 있습니다.




■ 참고문헌

<명리학의 연원과 이론체계에 관한 연구>, 심규철, 200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사주 이론들의 사회사적 배경 연구 시론>, 김두규, 2017, 사회사상과 문화 20권 2호.
<명리 운명을 읽다: 기초편>, 강헌, 2018, 돌베개.


** 이해하기 힘든 '요즘 것들'에 대한 당신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어쩌다> 뉴스에서 최선을 다해 재미있게 풀어드립니다. choic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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