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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만 나이가 어때서

[어쩌다] 만 나이가 어때서

정혜경 기자

작성 2022.01.09 09:13 수정 2022.01.12 10:5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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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나이가 듭니다. 이 장르에선 인간이 저항할 수 있는 게 아무래도 마뜩찮습니다. 세상 그 누구라도 되돌리거나 붙잡지 못하는 것이 시간일 테니까요. 하지만 최선을 다해 딴죽을 걸어보겠습니다. 떡국이요? 한 끼 먹어서 느는 게 몸무게라면 인정이지만 나이라면 불인정입니다, 거부! 나이 셀 때 받침에 시옷이 들어가면 그때부터 중반이라고요? 그런 인위적이고 편협한 기준은 납득되지 않네요, 거부!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요. 새해라 한 살 더 먹는다고요? 12월에 태어났는데 같은 해 1월생이랑 똑같이 나이를 먹는다는 건 불합리하네요. 거부합니다! 여기엔 공감하시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새삼 잊고 있던 내 나이, 번뜩 깨닫게 해주는 연초 '버프(능력치를 올려주는 효과를 뜻하는 게임용어)'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요. 최근 들어 일상생활에서도 생일을 기준으로 하는 '만 나이' 사용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입니다.

이번 <어쩌다> 뉴스는 꾸준한 청와대 국민청원은 물론, 벌써 두 번이나 법률안이 입법 발의된 '만 나이' 정착에 대해 다뤄봅니다. '만 나이'는 어쩌다 이토록 오랜 시간동안 부침을 거듭하는 영겁의 화젯거리가 된 걸까요?


어쩌다-만 나이

지난해 12월 정부가 청소년 방역패스 기준을 공표했습니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올해 3월부터 만 12세 이상 청소년들은 코로나19 예방접종을 받아야 방역패스 의무시설에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지난 4일(화) 법원 결정으로 이 의무시설에 독서실, 스터디카페, 학원은 빠졌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선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이 가능한 최저 연령을 만 12세로 해두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다음 문장을 읽어볼까요. "올해 연 나이로 12살이 되는 2010년 출생자는 방역패스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가 되시나요? 이해가 됐다면 당신은 최소 나이 전문가.

한국인에겐 세 가지 나이가 있습니다. 바로 만 나이, 연 나이, 그리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한국식 세는 나이입니다. 1992년 12월에 태어난 누군가가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2022년 1월 현재 이 사람은 '몇 살이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통상 '31살'이라고 대답할 겁니다. 이게 한국식 세는 나이입니다.

한편 연 나이는 현재 연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뺀 값입니다. 그럼 '30살'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만 나이는 생일을 기준으로 합니다. 연 나이에서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람의 만 나이는 '29살'이 됩니다. 아직 20대입니다.

다시 위 문장을 해석해보면 이렇습니다. "올해 생일이 지난 2010년 출생자들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할 수 있다. 그래서 방역패스가 적용되는 3월엔 피치 못하게 접종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관계기관 등에서도 일일이 생년월일을 확인하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정부는 날짜 불문 2010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올해가 끝나는 12월 31일까지 방역패스 적용을 하지 않기로 했다."

반면 생일을 기준으로 나이를 세는 것이 당연한 다른 나라에선 '만 12세' 기준이 헷갈리지 않습니다. 나이가 하나기 때문입니다. '몇 살이냐'라고 물었을 때 어떤 나이를 답해야 할지 머리를 쓰고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방역패스를 둘러싼 일련의 해프닝은 나이가 세 개인 한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혼란상입니다.


어쩌다-만 나이

한국식 세는 나이의 최대 피해자는 단연 한 해의 가장 마지막 날, 12월 31일에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비극은 탄생 직후 24시간 안에 찾아옵니다. 최대 만 하루가 지나고 보신각 타종 행사가 끝나면 갓 태어난 아기는 곧장 두 살이 됩니다.

행정안전부에 요청해 주민등록번호 출생일자가 12월 31일인 한국인들의 통계를 모아봤습니다. 2022년 1월 현재, 사망신고로 주민번호가 말소되지 않고, 약 백 년이 넘는 세월동안 나이에서 가장 손해를 보고 있는 생존 한국인은 모두 6만 2377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어쩌다뉴스-만 나이
1930년대 이상 12월 31일 출생자 1757명을 제외하고, 연도별 추세를 보면 억울한 분들은 90년대에 태어난 분들이 가장 많습니다. 1940년대 2천479명, 1960년대 6천230명을 거쳐, 1980년대 1만 875명으로 점차 늘어나던 '세밑 출생자'들은 1990년대에 1만 3715명으로 최다 인원을 기록한 뒤 다음 세대 2000년대엔 7천539명으로 급격히 줄어듭니다.
개별 연도로 따지면 1991년생이 1천671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1992년생(1천577명), 1993년생(1천484명)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하루 차이로 한 살을 이득 보게된 1월 1일생들은 어떨까요? 같은 기준으로 현재 기준으로 주민등록이 말소되지 않고 생존한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2021년까지의 1월 1일 출생자 통계를 살펴보니, 전체 인원은 12월 31일생 출생자보다 약 3배 가까이 많은 18만 4천62명으로 집계됐습니다.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출산율 하락이 영향을 미친 건 어느 날짜의 출생자 수나 비슷하겠지만, 2000년대와 2010년대에 각각 12월 31일 출생 인구수의 두 배 이상 많았던 1월 1일 출생 인구수는 2020년대 들어 세 배 이상으로 그 격차가 더 커졌습니다. 2003년생부터 적용된 이른바 '빠른년생 폐지'가 자리잡히고 1, 2월에 태어난 학령기 청소년도 그해 12월 31일생들과 같은 학년을 다닐 수 있게 되면서 연말 출산을 기피하는 풍조가 심화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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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인터뷰한 12월 31일 출생자들은 하나같이 저마다 나이에 얽힌 '억울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세대는 제각각이었지만 서로 미리 말을 맞추기라도 한 듯, 본격적으로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기에 앞서 취재진에게 (약간의 울분을 담아) 본인이 몇 시에 태어났는지부터 밝혔습니다.

저녁 7시 45분에 태어났다고 밝힌 50대 여성 A씨는 "어렸을 때 국민학교 담임 선생님이 어렴풋이 '지능지수(IQ)' 기준이 내년이면 바뀌는데 너는 생일 하루 차이로 불리한 기준을 적용받아 손해를 보게 돼서 안타깝다고 말한 기억이 남아있다"며 과거 무의식에 심어진 억울함의 기억인 것 같다고 토로했습니다. A씨는 또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꼬박꼬박 12월 31일에 태어났다는 말을 버릇처럼 함께 말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8월에 출산했지만 예정일이 연말이었다면 사실 다음 해로 출산을 미루는 것도 고려했을 것 같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올해 한국식 세는 나이로 서른이 된 남성 B씨는 "밤 10시에 태어났다"고 먼저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12월에 치러진 지난 18대 대선 당시 투표권이 없어서 혼자 투표도 못하고 유권자 친구들과 개표 방송을 봤다"고 말했습니다. 세는 나이로 현실적인 불이익을 받진 않았지만 단 몇 시간 차이로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들 사이에서 이른바 '낮은 서열', '막내'로 인식되는 일들이 있었다고도 말했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반응도 있습니다. 만 나이는 42세, 세는 나이로 올해 44살이 된 대기업 부장 남성 C씨는 "연말이면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가 많은데 그때마다 케이크 하나만 있으면 생일 파티를 할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고 밝혔습니다. "제야의 종이 마치 생일 이벤트처럼 느껴지는 특별함은 있다"고도 전했습니다.


어쩌다-만 나이

백 년 간 6만2377명. 이들에겐 이만한 숫자 이상의 사연들이 있겠습니다만, 기록을 찾아보니 1961년에도 피해자(?) 구제를 위한 노력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군정 시기에 당시 예수가 태어난 해를 원년으로 하는 '서기(西紀)'를 사용하다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부터 단군이 즉위한 해를 원년으로 하는 '단기(檀紀)'를 반짝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정부는 1962년 1월 1일부터 서기로 다시 복귀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때, 만 나이를 전용으로 쓰자는 국무총리 담화가 발표됩니다. 당시 부산일보의 보도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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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가 발표된 직후 1월 3일엔 장년 이상 노인들 사이에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말과 함께 "젊어져서 반갑습니다"라는 새해 인사가 오갔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현재, 한국인의 나이는 여전히! 세 가지입니다.


어쩌다-만 나이

만 나이는 법적으로는 이미 정착돼 있습니다. 우리 민법에서는 "연령 계산에 출생일을 산입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제158조). 이에 따라 각종 공문서와 의료기록도 이 만 나이를 준용합니다. 국제적으로도 통용되는 방식입니다.

앞서 인터뷰한 B씨는 "훗날 은퇴시점에 정년 나이를 적용받을 때 손해를 보는 것 아닐까 걱정된다"고도 말했지만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고령자고용촉진법에서 정한 '60세 이상' 정년은 만 60세를 의미합니다. 최소한 만 60세 생일이 되는 날까지는 근로자를 고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각종 규칙과 의무를 정하는 일부터 세금, 의료, 복지 등 한국인들의 실생활에 유의미한 기준이 되는 건 '만 나이'임이 명확합니다. 그러나 간혹 '연 나이'를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정 그룹이나 단체를 일괄적으로 지휘하고 통솔하기 위한 편의성을 위해서입니다.

한국식 세는 나이와 만 나이 사이 괴리감에서 집단 통솔의 효율을 위해 파생한 기준이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청소년'을 규정하는 청소년보호법(제2조1호), 군대에 갈 사람을 정하는 병역법(제2조), 민방위기본법(제18조)이 그렇습니다.

해외에서도 이런 독특한 한국식 세는 나이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CNN과 AP통신 등 외신들은 이런 셈법이 동아시아에서 서양권보다 상대적으로 늦게 정착된 '0(ZERO)' 개념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아시아권에서도 이미 일본은 1902년 법령을 개정하면서 '만 나이' 문화를 정착시켰고, 중국은 1960년대 후반부터 시행한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세는 나이 관습이 사라졌습니다. 북한도 1980년대 이후부터 '만 나이'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사실상 이런 문화를 고수하는 건 한국뿐입니다.

외국과 다른 연령 기준으로 인한 혼선, 12월의 출산 기피 현상 등 연령 계산 방식의 혼용으로 인한 혼란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두 차례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황주홍 의원 등 10인이 발의한 법안은 임기만료 후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서 이장섭 의원 등 13인이 발의한 <연령 계산 및 표시에 관한 법률안>은 지난해 11월 국회 전체회의 상정을 거쳐 현재 소위원회 심사에 계류 중입니다.

현재 계류된 법안이 시행되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문서에 연령을 기재하는 경우를 모두 '만 나이'로 통일해야 합니다. 동아대 한세억 교수는 "구주소를 신주소로 바꾼 후 여러 방법을 동원한 홍보로 현재는 어느 정도 대중들에게 정착된 것처럼, 만 나이 정착도 법률만 제정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제정 이후 국민들에게 적극적인 계도성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어쩌다-만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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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나이 정착을 둘러싼 여론조사에선 시간이 지날수록 찬성 여론에 무게가 쏠리고 있습니다. 지난 2016년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52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을 때에는 '한국식 나이 유지'가 46.8%, '만 나이로 통일'이 44%로 오차 범위 내 접전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시 지역별로는 대구 경북에서 '한국식 나이 유지'가 54.3%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수도권에서도 한국식 나이를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가 49.5%로 더 높았습니다.

반면 지난해인 2021년 12월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한국식 나이를 폐지하고 만 나이를 사용하자는 데 찬성한 쪽이 71%로 크게 늘었고, 반대가 15%, 모르겠다고 응답한 답변이 14%로 나타났습니다. 찬성 이유로는 응답자 53%가 '법률 적용 및 행정 처리에서 오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답했습니다. 한국식 나이 폐지 방식으로는 58%가 '만 나이 사용을 법이나 제도로 명확하게 규정하는 방식'이 좋다고 답했습니다.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뉴스레터 <뉴닉>도 여론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뉴닉>은 지난해 12월 15일부터 20일까지 2021명의 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만 나이 사용'에 83.4%가 찬성, 12.9%가 반대, 3.8%가 기타 의견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인의 세 가지 나이가 이제 '만 나이'로 정착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SBS 웹페이지에서 설문조사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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