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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사형수가 '부활'해 버젓이 범행…중국 사법의 민낯

[월드리포트] 사형수가 '부활'해 버젓이 범행…중국 사법의 민낯

김지성 기자 jisung@sbs.co.kr

작성 2021.01.27 14:42 수정 2021.01.28 17:5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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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말에 '바오후산(保護傘)'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보호우산'인데, 흔히 '뒷배', '백(back)', '비호세력'이란 의미로 쓰입니다. 중국에서 '바오후산'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게 이른바 '쑨샤오궈' 사건입니다. 최근 중국 관영 CCTV 방송을 통해 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습니다.

중국 윈난성 쿤밍시에서 '밤의 형님'으로 통했던 쑨샤오궈(가운데)
● 22년 전 사형 선고받은 사람이 '활개'…부모, 전방위 로비

2019년 3월 중국 윈난성 쿤밍시에서 쑨샤오궈라는 사람이 체포됐습니다. 룸살롱에서 몸싸움을 벌여 상대방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였습니다. 쑨샤오궈는 여러 개의 술집과 클럽을 운영해온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합법적인 회사들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뒤에는 모두 조직폭력배들이 있었고, 도박장 개설, 불법 대출, 구금, 폭행 등 많은 범죄에 연루돼 있었습니다. 그는 쿤밍에서 '밤의 형님'으로 통했습니다.

쿤밍 시민들이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쑨샤오궈라는 이름이 20여 년 전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설마 했는데, 동일인으로 확인됐습니다. 20여 년 전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부활'해 버젓이 범행을 저지르고 다녔던 것입니다.

쑨샤오궈는 10대 때부터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백주에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1994년 처음 체포됐습니다. 당시 그는 주범이 아니고 18세 미만이라는 이유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마저도 제대로 복역하지 않았습니다. 이듬해인 1995년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배후에는 쿤밍시 경찰인 그의 어머니와 쿤밍시 고위 관리였던 의붓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만들어준 가짜 진단서로 병보석을 받아낸 것입니다.

쑨샤오궈의 어머니와 의붓아버지
1997년 쑨샤오궈는 또다시 여성 4명을 상대로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피해자 중에는 미성년자도 있었습니다. 쑨샤오궈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항소했고 2심 법원은 사형 집행을 2년 유예했습니다. 사형 집행유예는 중국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독특한 제도로,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할 경우 무기징역 등으로 감형해주는 제도입니다.

이때부터 그의 어머니와 의붓아버지의 '활약'이 또 빛을 발했습니다. 2007년 9월 법원에서 쑨샤오궈에 대한 재심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새로 드러난 증거와 사실 관계가 없는데도 재심이 이뤄졌습니다. 비정상이었습니다. 사건을 맡은 판사는 쑨샤오궈 의붓아버지와 같은 부대에서 군생활을 한 사이였습니다. 식사 대접이 있었고, 10만 위안(1천700만 원)이 이 판사에게 전달됐습니다. 다른 판사에게도 비슷한 금액의 뇌물이 쥐어졌습니다. 윈난성 고위급 인사도 쑨샤오궈 의붓아버지의 돈 3만 위안(512만 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쑨샤오궈는 재심을 통해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사형이 유기징역으로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 교도소에서도 잇단 감형…수형생활 평가 만점에 특허 신청까지

쑨샤오궈는 교도소에서도 형량을 줄였습니다. 교도소 간부 역시 쑨샤오궈 의붓아버지의 군대 전우였습니다. 게다가 고향 친구였습니다. 쑨샤오궈는 매달 수형생활 평가에서 100점 만점을 받았습니다. 감형이 잇따랐습니다.

쑨샤오궈의 수형생활 평가표. 매달 100점 만점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심지어 교도소 내에서 특허까지 받았습니다. '연동 잠금식 도난 방지 맨홀 뚜껑'을 발명했다며 특허를 신청해 받은 것입니다. 중대한 공을 세웠다고 해서 또 감형됐습니다. 알고 보니, 이 특허는 교도소 간부들의 도움을 받아 동료 수형자들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특허 신청 서류도 다른 수형자가 대필한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재조사 과정에서 조사원이 쑨샤오궈에게 종이와 연필을 주고 특허 설계도를 그려 보라고 했지만 그는 못 그렸다고 합니다.

어쨌건 그는 잇단 감형으로 2010년 4월 출소했습니다. 실제 복역기간은 12년 5개월에 불과했습니다.

쑨샤오궈가 발명했다고 주장한 '연동 잠금식 도난방지 맨홀 뚜껑' 설계도
● "단 한 사람이라도 엄격하게 했다면"…"인정·체면 탓"

이 사건을 재조사한 윈난성 기율검사위원회 관계자는 "중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엄격하게 법을 집행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조금씩 틈을 냈고 결국에 가서는 큰 구멍이 됐다"고 했습니다.

2019년 쑨샤오궈가 상해 혐의로 체포된 뒤 윈난성 사법당국은 과거 사건을 일제히 재조사했습니다. 그해 12월 법원은 과거 판결을 모두 취소하고 다시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이렇게 쑨샤오궈는 사형을 두 번 선고받은 사람이 됐습니다. 2020년 2월 이번엔 그에 대한 사형이 실제 집행됐습니다.
 
2019년 12월, 다시 재판을 받고 있는 쑨샤오궈
이 사건으로 100여 명이 조사를 받아 60명이 징계를 받았고, 19명이 최소 2년에서 최대 20년까지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쑨샤오궈의 뒤를 봐줬던 관리들은, '바오후산'들은 "쑨 씨 부모로부터 돈을 받아서가 아니라, 친구, 전우의 부탁을 뿌리치기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인정과 체면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관시(關係)'로 움직이는 중국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 집권 2기를 맞아 '소흑제악(掃黑除惡)', 즉 '흑(黑)은 쓸어버리고 악(惡)은 제거하자'는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2020년 11월까지 비호 세력 '바오후산'과 관련된 8만 1천 건을 조사해, 공산당 간부와 공직자 9만 7천여 명을 입건했다고 중국 관영 CCTV는 밝혔습니다.

(사진=중국 C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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