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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조주빈, 이렇게 체포됐다 ② 서명운동 명단에 직접 남긴 '조주빈' 세 글자

[취재파일] 조주빈, 이렇게 체포됐다 ② 서명운동 명단에 직접 남긴 '조주빈' 세 글자

조주빈 자필 서명 "조주빈 95년.XX월.XX일"

홍영재 기자 yj@sbs.co.kr

작성 2020.11.27 13:49 수정 2020.11.27 14:1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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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조주빈, 이렇게 체포됐다 ② 서명운동 명단에 직접 남긴 조주빈 세 글자
● 경찰, 조주빈 신원 확인하다 - 자필 서명 "조주빈/ 95년.XX월.XX일"

수사관이 본 명단에 적혀 있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조주빈 95.XX.XX(생년월일)
서명운동에 동의한다는 뜻을 전한 조주빈이 직접 적은 이름과 생년월일이었습니다.

'박사' 조주빈의 신원이 처음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경찰도 A 씨가 만난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박사'인지를 단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수사를 받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A 씨에게 조주빈이 '박사'가 맞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도주, 증거인멸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명단에 적힌 이름과 생년월일을 통해 이 남성이 과거 인천 지역의 보이스피싱 인출책 등을 신고해 인천 미추홀경찰서로부터 감사장을 받은 사실은 확인됐습니다.

경찰은 남성의 신상정보를 토대로 이메일 내역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받습니다. 의심할만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원점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박사'가 줄곧 성착취물 대화방 참여자들에게 지시하던 '실시간 검색어 순위 올리기'에 이 조주빈이란 남성도 함께 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봤습니다.

'박사'는 주로 무료회원들에게 특정 단어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면 유료방에 초대해준다거나 자신이 가진 성착취물을 공유하겠다는 식으로 참여자들을 꼬드겼습니다. 그렇다면 '박사' 자신도 포털사이트 단어 검색에 참여했을 걸로 경찰은 추정했습니다.

박사방 참여 닉네임 1만5천개 확보
● 쌓이는 단서, 짙어지는 확신

확인 결과 이 조주빈이라는 남성도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올리는 데 적극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꽤나 많은 단어들을 검색했고 검색한 시간대도 다른 참여자에 비해 앞선 시간대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조주빈이 배송 조회를 위해 택배 운송장 번호를 여러 차례 포털에서 검색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조주빈이 궁금해했던 택배가 뭔지 살펴보니 '받는 사람' 조주빈, 그리고 '보낸 사람'은 A 씨였습니다. A 씨가 직접 조주빈을 만나거나 편의점 택배를 통해 범죄 수익금을 조주빈에게 전달한 겁니다.

이외에도 이미 붙잡힌 '박사방' 공범들의 진술과 또 조주빈의 인천 미추홀구 거주지에서 며칠간 진행된 잠복 수사 끝에 경찰은 조주빈이 '박사'라고 확신합니다.

● 아버지와 자전거를 함께 타던 날, 조주빈 체포되다

차곡차곡 쌓은 혐의를 종합해 경찰은 25세 남성 조주빈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 받았습니다.

2020년 3월 16일 오전 10시. 인천 미추홀구 조주빈 거주지 인근 도로에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관 10여 명이 모입니다. 당장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면 집 안에서 증거인멸을 시도할까 조주빈이 외출했다 다시 들어가는 순간을 노리기로 합니다.

조주빈이 집에서 나왔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아버지와 함께였습니다. 수사관들은 조주빈이 자전거를 다 타고 다시 귀가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이날 평균 기온은 섭씨 3도쯤. 요즘과 비슷하거나 낮은 수준이니 꽤 쌀쌀한 날씨입니다.

5시간 정도 기다렸을까. 오후 5시쯤 드디어 조주빈이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들어갑니다. 수사관이 조주빈에게 다가갔습니다. 조주빈은 담담했습니다. 자신은 다만 "자신은 텔레그램 성착취방 운영자인 '박사'가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경찰은 집 내부를 압수수색했고 조주빈이 소파 옆에 숨긴 휴대전화와 현금 1억 3천만 원을 확보합니다. '박사'는 그렇게 체포됐고 악마의 삶을 멈췄습니다. 조주빈은 체포되기 직전까지 6개월간 아동과 청소년을 16명을 포함해 74명의 피해자들의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했습니다.

조주빈, 손석희, 윤장현 광주시장
● "나는 박사가 아니다" 침묵했던 조주빈과 해프닝

조주빈은 체포된 직후에도 줄곧 자신이 '박사'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경찰이 A 씨도 함께 붙잡아 왔지만 A 씨 조차도 조주빈이 '박사'가 맞는지 확신했던 건 아닌 걸로 전해집니다.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조주빈이 체포된 다음날 '박사방'의 주된 운영자가 아님에도 붙잡힌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조주빈과 공모해 손석희 JTBC 사장과 윤장현 전 광주시장을 속인 김 모 씨(28)와 이 모 씨(24)입니다. 경찰은 이미 범죄 수익금을 전달하는 2명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또 이들이 조주빈과 공모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기자에게 사기를 친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체포를 하고 나서 보니 손석희 사장과 윤장현 시장에 대한 범행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이름들이 튀어나온 겁니다. 경찰은 우선 '박사방' 사건에 집중하느라 며칠간은 손 사장과 윤 시장 관련 진술을 받는 걸 잠시 미뤄왔는데 일주일 뒤 조주빈이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손석희 사장과 윤장현 시장에 미안하다"는 뜬금없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작 피해자에 대한 사죄의 언급은 전혀 없어 당시 생중계를 보던 저도 황당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두 명도 어제(26일) 각각 1년 6개월 실형과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또 다른 해프닝은 조주빈의 자해 소동입니다. 조주빈은 체포 다음날 새벽엔 서울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펜을 삼키려는 등 자해를 소동을 벌여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그렇게 옮겨진 병원에서 체온이 섭씨 37도가 넘는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보여 서울지방경찰청과 종로경찰서에서 방역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직원들이 격리조치까지 되기도 했습니다. 조주빈의 외부에 공개된 3월 25일 목에 깁스와 머리에 반창고를 붙인 것도 이때 벌어진 자해 소동 때문입니다.

박사방 참여 닉네임 1만5천개 확보
● "이제 시작일 뿐"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공론화된 지 약 1년 만에 주범격인 조주빈의 형량이 결정됐습니다. 조주빈이 대장격으로 보여도 경찰이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한 뒤 검거한 2천549명 중 불과 한 명일 뿐입니다(11월 12일 기준).

'박사방' 사건을 담당한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 수사팀은 올해 팀원 2명이 한 계급씩 특진했습니다. 흔치 않은 경우인데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합니다. 담당 수사팀 외에도 서울을 포함한 각 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 소속 수사관들이 11월 말인 지금도 전국을 돌며 n번방과 박사방 유료·무료회원들을 검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착취물 제작·유통 관여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와 법적 심판에도 또 다른 n번방, 박사방과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자책하며 피해를 차마 호소하지 못하는 이들이 웅크려 있기에, 범죄 예방과 범죄자 단죄를 해야 할 국가기관이 결코 이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렇기에 취재파일 마무리는 어제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가 제시한 표어로 갈음하겠습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끝장, 이제 시작일 뿐이다">

※ 1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취재파일] 조주빈, 이렇게 체포됐다 ① '안 잡힌다'는 그가 돈, 사람, 조직에 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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