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잇] 임금 떼이고 "한국 떠나라"…무너진 코리안드림

[인-잇] 임금 떼이고 "한국 떠나라"…무너진 코리안드림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SBS 뉴스

작성 2020.10.30 11:01 수정 2020.10.30 15:30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당신들 위해 목숨 바쳐 일했잖아요! 돈을 벌기 위해서 이 머나먼 땅까지 와서 일하는 불쌍한 한국인들이에요…. 제발 들어가게 해 줘요. 만약 죽었다고 해도 시신은 찾아내야죠. 제발. 제발 허락해줘요."


2014년 관객 수 1천426만 명을 기록한 영화 '국제시장'에서 파독 간호사 영자가 외친 대사이다. 무너진 갱도 안에 파독 광부들이 갇혀 있지만 독일 관리자들은 안전을 이유로 구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던 위기의 순간, 영자의 외침에 파독 광부들이 안전을 위한 저지선을 뚫고 덕수와 달구를 구하러 들어가는 장면에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

고용노동부 공식 블로그에 올려진 '대한민국 근로자 애환기-독일로 간 광부들'에 보면 고달픈 외국인노동자의 애환이 적혀져 있다. 1965년 4월 6일, 한 광산에서 파업 사태가 일어났다. 독일 노동자에게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파독 광부 한 명이 코뼈가 부러지도록 폭행을 당하자 광부 대부분이 입갱을 거부한 것이다. 당시 언론 등에 보도된 파독 광부들의 요구 조건을 보면 애잔한 마음이 든다.
 

1. 외국인이라고 푸대접하지 마라!
2. 폭행 가해자를 인사 조치하라!
3. 우리에게 맞는 일자리를 달라!
4. 한국에서 온 고춧가루를 착취한 통역은 사실을 밝히고 자진 사퇴하라!


1960년대 서독은 광부와 간호사가 부족하여 대한민국에 파견을 요청하였고, 이 요청을 받아들인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서독과 한독근로자채용협정(韓獨勤勞者採用協定, 독일어: Anwerbeabkommen zwischen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und Südkorea)을 체결했다. 1963년부터 1977년까지 3년간 취업 계약을 맺고 독일로 간 광부들이 8천395명, 간호사들이 1만371명이었으니 매년 1천 명이 넘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타지에서 이주노동자로 지낸 것이다.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한국과 세계]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 한국 속의 외국인 노동자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2011. 8. 8., 김육훈)] /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50년이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은 외국에 노동자를 파견하는 송출 국가가 아니라 16개국으로부터 노동자를 파견받는 도입국가가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와 협정을 맺은 16개국 정부는 20만 명의 노동자를 대한민국에 보낸다. 2003년 8월 16일 제정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 고용허가제도가 시행된 지 올해로 16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외국에서 노동자로 지낸다는 건 고달픈 일이다. 50년 전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대한민국에서 일하고 있는 16개국, 20만 명의 외국인노동자들 또한 비슷한 처지다.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

작년 12월 18일 세계이주노동자의 날을 맞이하여 외국인노동자들이 모여 진행된 문화제에서 그들이 외친 구호다. 하루에 3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사망하는 대한민국에서 내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기 꺼려하는 사업장에만 배정되는 외국인노동자의 산재 발생율이 높은 것은 필자가 기고한 글에 달린 아래 댓글처럼 불가피한 일이다.

최정규 인잇
▶ [인-잇]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

지하 1,000m의 막장에서 힘든 노동에 시달렸던 파독 광부들. 시체를 닦는 일 등 병원의 힘든 일을 도맡아야 했던 파독 간호사들처럼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외국인근로자들이 힘들고 위험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것을 '차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50년 전 파독 광부와 간호사조차 경험하지 못한 일이 2020년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자주 벌어지고 있다. 바로 '임금체불'이다.

지난 10월 13일 국회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외국인노동자 임금체불 신고 현황'을 보면 국내 외국인노동자 임금 체불 신고액은 매년 급증해 2019년 처음으로 1천억 원을 돌파했다.

체불임금으로 신고된 금액이 2016년부터 이미 1조 원을 넘긴 '임금체불공화국'에서 외국인노동자도 이런 피해를 당하는 것이 공평한 일일까? 그렇게 치부할 수 없는 건 고용허가제도를 통해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는 대한민국 정부(고용노동부)의 지정 알선을 통해 사업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직장 선택의 자유가 없는 외국인노동자에게 체불 임금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으라는 건 공평하지 못한 처사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4년 7개월 동안 비닐하우스에 거주하며 농장 일을 했음에도 3년 치 넘는 임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외국인노동자의 사연이 뉴스에 보도되어 시민들의 공분을 산 이후, 대한민국 정부(고용노동부)가 해 준 건 직권으로 조사하여 확인한 '사업주 체불임금 확인서'라는 2장짜리 종이 뿐이었다. 취업사기로 고소한 형사사건을 수사한 이천경찰서는 처음부터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건 아니라는 이유로 불기소의견으로 송치했고,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 담당 검사는 체불임금 중 일부라도 받으라는 취지로 형사조정에 붙였다.

그런데 지난 26일(월) 대한민국 정부(법무부)는 해당 외국인노동자의 체류 자격(비자) 연장을 불허했다. '형사사건에서 피해자는 제3자에 불과하다, 변호사가 대리해서 진행하니 꼭 한국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체류 자격 연장 불허 이유다.

최정규 인잇 체류기간 연장 불허결정 통지서
땅을 팔아서 밀린 임금을 지급해주겠다고 하는 농장주의 유일한 재산이었던 바로 그 땅은 이미 2년 전에 경매로 넘겨진 사실이 확인되었고, 검찰청에서 진행된 형사조정절차에서도 농장주는 단 돈 100만원도 마련해 줄 수 없으니 법대로 하라는 상황, 상시 5인 미만 노동자만 일하는 농장이기에 소액체당금제도 등 임금체불과 관련한 사회적 안전망이 작동되지 않기에 피해 외국인노동자가 피해 변제를 받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파독 광부들이 무너진 갱도에 갇혀 있고 독일 관리자들은 안전을 이유로 구조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처럼 피해 외국인노동자가 지금 처한 현실은 절망적이다. 합법적 체류마저 허용되지 않은 채 쓸쓸하게 빈 손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에 놓인 외국인노동자는 불허 통지서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타인의 눈물은 물과 다름없다"는 러시아 속담처럼 우리는 아주 덤덤하게 외국인노동자들의 눈물을 그저 구경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외국인노동자의 가족들에게 그 눈물은 단순히 물이 아니라 '피눈물'일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파독 간호사 영자가 갱도에 갇힌 파독 광부 덕수를 향해 절규하며 흘린 바로 그 눈물처럼 말이다.

* 편집자 주 : 최정규 변호사는 △고양 저유소 풍등 화재사건 △성추행·가정폭력 피해 이주여성 노동자 사건 △신안 염전 노예 사건 등의 변호를 맡아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해왔다.
인잇 네임카드 최정규


#인-잇 #인잇 #최정규 #상식을위한투쟁

# 본 글과 함께 생각해 볼 '인-잇', 지금 만나보세요.

[인-잇] 대한민국 저출산은 '엄마의 본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