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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코로나와 2020년, 아이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파파제스 |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예쁜 딸을 키우는 아빠, 육아 유튜버

나에게는 두 명의 조카가 있다. 친척 중 가장 먼저 가정을 이룬 사촌 누나의 자녀들인데, 처음으로 나를 '삼촌'이라 불러준 조카이기에 어린이날이면 매년 선물을 들고 찾아갈 만큼 애정이 남다르다. 하지만 내 자식이 생긴 이후로 조카까지 챙길 여력이 없어 한동안 못 보다가 아주 오랜만에 사촌 누나네 집을 방문했다.

"삼촌~~~" 내가 올 때면 항상 들뜬 목소리로 뛰어와 반갑게 맞아주는 조카들이었는데, 그날따라 그 명랑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애들은 아직 학원에 있어." 누나와 매형이 말했다. 저녁 약속이니 당연히 집에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녁 8시가 넘어서야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학원은 안 힘들었어?"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 조카에게 물었더니 "학원은 그나마 재미있어! 친구들이랑 이야기도 할 수 있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응? 그럼 학교에서는 친구들이랑 얘기를 못해?"
"응, 학교에서는 친구들이랑 말하지 말래. 침 튄다고..."

사정을 들어보니 코로나 이후 학교의 모습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학교에서 계속 마스크를 써야 하고, 수업 시간에는 발표와 질문을 하지 않는단다. 노래가 없는 음악 수업, 뛰지 않는 체육 수업...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과의 1m 간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선생님이 계속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고 곧장 학원으로 향한다고 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학교, 텅 비어 버린 운동장. 반면 북적이는 학원.

지금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코로나 시대, 학교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잠시 초등학교 시절의 나를 떠올려 보았다. '구봉산 맑은 정기 감도는 기슭 아득한 부산항을 바라보면서~'로 시작하는 교가. 학교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바다가 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과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공을 찼고, 점심시간에는 삼삼오오 모여 앉아 도시락을 까먹었다. 음악 수업 때는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고, 미술 수업 때는 밖으로 나가 풍경을 그리곤 했다. 월요일 아침마다 땡볕 아래에서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듣는 것마저 추억이 된 나의 초등학교 시절.

그런데 조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늘날 학교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학교와는 완전히 달랐다. 내가 가진 학교의 좋은 추억들을 다음 세대가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아이들에게 미안해졌다. 어른의 책임감 같은 걸까? 조카뿐만 아니라 내 아이가 학교에 갈 때쯤엔 또 어떤 것들이 사라져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씁쓸해졌다.

코로나 시대, 학교는 아이들의 안전과 교육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부담을 떠안았다. 교직원들은 방역 전문가가 아닌 데다가 집합 교육의 특성상 한 명이라도 감염이 되면 일파만파 퍼지는 위험성을 갖고 있기에 아이들에게 하지 말라는 것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아이들의 웃음이 마스크에 가려져가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학교의 의미란 무엇인가?'

어른이 되어 되돌아보니 학교라는 곳은 공부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는 곳이다. 또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와 가치를 익힐 수 있는 배움의 터였다. 그런데 더 이상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다고 한다면 아이들에게 학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발표도 질문도 할 수 없는 일방적인 교육이라면 굳이 '집합 교육'이 필요하기는 할까? 학원이 아닌 학교가 남아있어야 할 이유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는 학교, 아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학교 개학이 연기되고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는 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사교육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내 조카만 하더라도 학교는 일주일에 한 번 가지만, 학원은 일곱 번을 간다고 한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긴 것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학원에서 나누고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학원에서 채운다. 반면 사교육을 받지 않은 아이들은 '긴급 돌봄 교실'에서 9~10시간 동안 한 반에 모여 있다고 한다. 오히려 학교에 남은 소수의 아이들이 가엾게 느껴질 정도다. 정말 공교육의 위기다.

하지만 이 위기는 코로나 때문만은 아닐 거다. 사교육이 공교육의 자리를 꿰찬지는 이미 오래됐고 이번 사태로 공교육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을 뿐이다. 나는 우리 아이에게 좋은 성적을 바라지도, 뛰어난 재능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건강하게 커서 학교에 가고 놀고 배우며 그 안에서 즐거운 추억을 쌓길 바랄 뿐이다. 그런데 이런 평범한 바람조차 오늘날 학교에서는 이룰 수 없다면 나는 우리 아이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대로라면 나는 우리 아이를 어떤 학교를 보낼지 보다 어떤 학원을 보낼지 고민하는 학부모가 될 것만 같다.

코로나가 끝나면 하나, 둘, 모두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학교도 정상화가 될 테지만 공교육의 자리는 위태롭기만 하다. 더 이상 공교육이 제자리걸음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크게 도약해야 할 때다.

파파제스 네임카드(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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