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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두려움에 지지 말자, 우리가 주인공이니까

양성우 | 글 쓰는 내과 의사. 책 <당신의 아픔이 낫길 바랍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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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더워진 날씨 때문일까? 에어컨을 많이들 틀어서인지 감기 환자가 넘쳐난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한창 진료 보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보건소였다.

 
"선생님, 병원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갔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진료는 즉시 중단됐고 방역당국에서 달려와 CCTV를 돌려 봤다. 흡사 범죄현장 수사 같았다. 그들은 환자의 동선, 체류시간, 마스크 착용 여부, 직원이나 다른 내방객과의 접촉을 면밀히 살폈다.

나는 그동안 해당 확진자가 어떤 환자였는지를 떠올려 보았다. 환자는 고령의 여성으로 38도가 넘는 고열을 호소하며 내방했다. 그런데 증세는 고열뿐이었다. 미각 후각 소실, 상기도 (콧구멍 또는 입에서부터 후두까지의 공기가 유입되는 길) 감염 증세, 호흡곤란, 복통 설사 등 위장 관계 증상 모두 없었다. 침 삼키기가 어렵다고만 했다. 입안을 들여다 보니 편도선이 크게 부어 있었다. '아, 세균성일 가능성이 높네'라고 생각하며 항생제를 드리고 보내려 했다. 할머니는 나가면서 "코로나 확진자의 지인을 내가 만난 적이 있다"며 자기도 가능성이 있다고 털어놨다. 나는 "그렇다면 선별진료소에서 검사해 보시라"고 권유는 했다. 하지만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병원에 확진자가 다녀갔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런데 코로나 확진이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황당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증세가 전형적이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아마도 세균과 코로나 바이러스가 동시 감염 되었던 것 같다. 사실 고열이 있다고 모두 선별 진료소를 보낼 수는 없다. 하루에도 그런 환자가 수십 명인데 다른 병원까지 합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선별 진료소에서도 모든 환자들을 다 검사해 보지 않는다. 하물며 이 환자는 바이러스성보다는 세균성 감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다. 항생제 먹고 좀 쉬면 금세 나아지길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 확진이라니.

다행히 환자가 우리 원내에서 퍼뜨렸을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환자와 나는 진료 내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신체 진찰 후 손도 깨끗이 씻었다. CCTV를 보니 환자가 병원에서 머무른 시간도 굉장히 짧았다. 의료진 전부가 검사를 시행했고 모두 음성 반응이었다. 방역당국은 당일 소독작업을 실시했다. 직접 진찰한 나만 격리하기로 하고, 다른 의료진은 정상 진료를 시작하는 것으로 난리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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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 지겨운 싸움은 언제쯤 끝나는 걸까? 아니, 보통 싸움이란 표현이 치고 박는 걸 의미하니 엄밀히 이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일방적 괴롭힘을 견뎌내고 있다. 백신은 언제 개발될지도 모르겠는데 사기꾼들이 앞다퉈 한 마디씩 얹는다. 시민들만 고생이다. KF94 마스크를 하나씩 차고 호흡곤란과 필터 기능을 맞바꿨다. 불편해도 인사할 때는 주먹을 맞닿았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일은 재택근무로 수업은 원격 강의로 진행했다. 나쁘지 않은 시민의식도 바이러스 확산을 막았다. 내가 있던 병원에 확진자가 다녀갔어도 높은 시민의식 덕에 금세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불편해도 모두가 마스크를 하고 서로의 거리를 유지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기도 하다. 벌써 몇 달을 이렇게 살지 않았는가? 국내 대규모 확산 이후 4개월이나 되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집구석에 앉아 하늘을 보지도 못하고 헬스클럽에서 운동도 못 한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있는 부모들은 특히 더 힘들다. 일부 부모들은 우울증까지 생겼다고 한다.


2020년, 벌써 6월도 끝나간다. 도대체 이 지겨운 싸움은 언제쯤 끝나는 걸까?

실제로 병원에 내방하는 환자들이 항우울제를 많이들 찾는다. 우울증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벼운 증세는 정말 흔하다. 이들은 괴로워하면서도 막상 약 먹기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저 도시에 역병이 돌 뿐인데, 본인에게만 정신과적 문제가 생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 잘못이 아님에도 자책하는 여린 사람들이 많다. 요즘에는 특히 더 그렇다.

둘째로 많이들 찾는 약은 다이어트 약이다. 항간에 '(살이)확찐자'라는 말이 유행인데 현실은 유행어보다 심각하다. 살만 찌면 다행인데 지병이 악화되어 내원하는 환자가 많다. 없던 지방간이 생기고, 당뇨환자는 당 수치가 곱절로 뛰어서 온다. 이런 분들은 당뇨약을 늘리기보다는 먼저 살을 빼야 한다. 지방세포에서는 인슐린 작용을 교란하는 방해전파가 나온다. 살만 빼면 방해전파를 제거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항 우울제가 다이어트 약으로 개발되어 있어, 여러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진짜로 살 좀 빼야겠어요. 그런데 선생님. 코로나는 대체 언제쯤 끝나는 걸까요?"

진료실에서 많이 받는 질문이지만 한 번도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공개적으로 말한 적이 한 번 있기는 하다.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적어도 6월까지는 간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올해 끝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아직도 승기를 잡지 못했다. 백신은 언제 개발될지도 모르겠고, 치료제라고 나온 약들도 영 미덥잖다. 나만 모르겠다는 것이 아니다. 여기저기 전문가 분석을 살펴봐도 다들 '확실하지 않다'는 전망뿐이다.

다만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이전과는 명확히 다를 것이란 분석에 동의하고 싶다. 앞으로 언택트(Untact, 비접촉)와 뉴노멀(New normal, 일상이 바뀐 시대)을 당연시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되고, 세계사 최초로 악수 문화가 사라질 수도 있다. 이렇게 외력에 의해 일상이 변하면 여러 감정이 생긴다. 머리 위로 두려움이 피어오른다. 두려움은 불안감으로, 때로는 분노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마음의 본질이다.


두려움에 지지 말자, 우리는 시대의 주인공이니까.

하지만 살아 나가자. 그렇다고 세기말도 아니지 않나. 단순하게 바라보자. 세계의 질서가 재편되고 있고, 우리는 역사의 중요한 한 부분을 살아가는 시대인이 되었다. 역사는 우리가 만드는 대로 변한다. 단지 그뿐이다.

무기력하다 느껴도 우리는 시대의 주인공이다.  두려움에 지지 말고 우리 생을 살아 나가자.


인잇 양성우 네임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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