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현대중공업에서 배 만들다 사라진 '467명의 우주'

반복되는 '하청 노동자' 죽음의 고리 끊으려면

제희원 기자 jessy@sbs.co.kr

작성 2020.06.03 14:46 수정 2020.06.03 16:1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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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현대중공업에서 배 만들다 사라진 467명의 우주
지난달 21일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부 14안벽에서 LNG 운반선 용접 작업을 하던 34살 사내 하청 노동자가 숨졌습니다. 올해 들어서 현대중공업에서만 벌써 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더군다나 사고가 났던 날은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이 끝난 바로 다음 날이었습니다.

이 30대 노동자는 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안에서 배관 용접 보조작업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용접용 아르곤 가스를 사용하다 산소 부족으로 인해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관계자는 기존에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특별감독이 잦았다며, 이번에도 감독이 끝나자마자 평소 작업 방식으로 돌아갔다가 사고가 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일을 우려해 요청했던 특별근로감독 연장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를 외면한 결과 중대재해가 또다시 발생했다는 겁니다.

노동부, 현대중공업 특별관리
● 46년 동안 매달 0.85명이 죽는 회사…노동부 "현대중공업 특별 관리"

특별근로감독 바로 다음 날 사고가 발생하자, 감독기관인 고용노동부도 난감해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노동부의 감독이 기업에 아무런 경각심도 주지 못하고, 현장을 바꾸지도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고용노동부는 당장 현대중공업을 '안전관리 불량 사업장'으로 지정하고 고강도 밀착관리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상설 감독팀을 구성해 6월과 7월 2달 동안 강도 높게 관리하겠다는 겁니다. 하반기 조선업 안전지킴이를 도입해 사업장을 순찰하기로 했습니다. 노동부의 특별관리라는 것도, '매우 불량' 이란 표현도 이례적이었습니다. 그만큼 현대중공업의 잇따른 사망사고를 정부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 '특별관리', '안전지킴이'가 반복되는 죽음 막을까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 가운데 이 대책들이 생명을 지켜줄 거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밀착 감시를 한다고 한들, 돌아서면 또 불완전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그렇게 안 하면 인건비나 공사 단가를 맞출 수가 없으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이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노동부와 회사가 접근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번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현대중공업 1차 협력업체로부터 재도급을 받은 2차 협력업체 소속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하청의 하청' 소속이었던 것이지요.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 다단계 하청 고용구조를 손보지 않으면, 그 어떤 특별관리가 있다 한들 앞으로도 몇 명의 노동자 목숨을 앗아갈지 장담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
● "위험의 '외주화'가 아니라 정상적인 작업도 '외주화'하면 위험해져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요구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합니다. 이들은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무늬만 안전대책이 아니라 중대재해의 근본 원인을 끊어내야 한다는 겁니다. 467명의 노동자가 숨진 현대중공업에선 여태껏 단 한 번도 대표이사나 법인이 엄중한 처벌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무혐의나 가벼운 벌금형에 그쳤습니다. 이들이 더욱 날카롭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외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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