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2명 정도 죽은 줄 알았다"…이제서야 체포된 '쿄애니' 방화범

36명 사망, 33명 중경상…'참사'의 전말 밝혀질까

유성재 기자 venia@sbs.co.kr

작성 2020.05.29 09:0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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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월드리포트] "2명 정도 죽은 줄 알았다"…이제서야 체포된 쿄애니 방화범
지난해 7월 18일 낮, 맹렬한 불길에 휩싸여 있는 건물을 비춘 헬기 촬영 영상이 일본의 방송국이 송출하는 모든 화면에 속보로 등장했습니다. 교토부(府) 교토시(市) 후시미구 모모야마마치에 있는 애니메이션 제작회사 '교토 애니메이션(약칭 쿄애니)의 제1 스튜디오 건물이었습니다.

'교토 애니메이션' 건물 방화로 수십 명 사상 평범한 초여름의 어느 평범한 하루, 여느 날처럼 출근해 각자의 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이 회사 직원들 가운데 이 화재로 무려 33명이 현장에서 숨졌고 3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병원으로 이송된 부상자 가운데 화재 다음 날 1명, 1주일 뒤 1명, 그리고 석 달 뒤인 10월에 1명이 숨져 이 화재로 숨진 사람은 최종적으로 36명이 됐습니다. 아직 미제로 남아 있는 2001년 도쿄 신주쿠 가부키초 건물 화재사건(44명 사망)을 제외하면 일본에선 종전 이후에 나온 최대 화재 참사였습니다.

참사가 일어난 곳은 '애니메이션의 나라' 일본에서도 유명 제작사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교토 애니메이션. 1981년에 하청 제작업체로 설립되어 유명 극장판 제작으로 작화력을 인정받은 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과 라이트 노벨을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 제작 등으로 사세를 키워온 곳입니다.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와 <럭키☆스타>, <케이온> 시리즈 등의 흥행작을 만들어내 '쿄애니 팬'을 폭넓게 확보하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이런 일본 애니메이션의 '핵심 제작사'에서 36명의 사망자와 33명의 부상자가 한꺼번에 나온 참혹한 사건에 일본 열도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화재 현장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도로에 쓰러진 채 발견된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범화재는 방화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화재 현장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도로에 쓰러진 채로 발견된 남성이 방화범이었습니다. 당시 41세의 아오바 신지(靑葉眞司)는 이날 오전 쿄애니의 제1 스튜디오 건물 1층에 난입해 '죽어!'라고 외치며 휘발유를 마구 뿌리고 불을 붙였습니다. 범죄는 계획적이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동네를 배회하는 아오바의 모습이 찍힌 CCTV가 공개됐고, 범행 당시 소지하고 있던 가방에서는 칼과 망치 등 흉기가 여러 개 발견됐습니다. 제1 스튜디오 1층에서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는 과정에서 아오바 본인의 옷에도 불이 붙었는데, 격한 동작으로 상하의 곳곳을 적신 휘발유가 불길을 키워 결국 얼굴부터 발끝까지 심각한 화상을 입었습니다.

아오바는 현장에서 일단 교토의 병원으로 이송됐다가 이틀 뒤 오사카의 화상치료 전문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줄곧 중태에 빠져있던 아오바가 의식을 일단 회복한 것은 20일이 지난 뒤였습니다. 전신에 화상을 입어 본인의 피부나 인공 피부를 환부에 이식하는 재건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몇 달 뒤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아오바가 치료를 받는 동안 경찰은 그에게 사건의 구체적인 정보가 전해지지 않도록 병원 측에 요청했습니다. 치료에 악영향을 주게 되면 치료 이후 사건의 전모를 밝혀야 하는 경찰의 입장도 곤란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아오바는 그제(27일), 사건 10개월 여 만에 정식으로 체포됐습니다. 완치되지는 않았지만 경찰이 아오바가 이제 조사를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아오바의 혐의는 살인과 살인미수, 그리고 현주건조물 방화입니다. 사실 조사는 이미 얼마 전부터 할 수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일본 전역에 발령됐던 '긴급사태 선언'으로 체포 집행이 늦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제 오전, 경찰이 아오바의 병실을 찾아가 체포장을 낭독하고 체포를 집행했습니다. 아오바는 이때 처음으로 자신의 방화로 숨진 사람이 36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교토 애니메이션'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숨진 건) 2명 정도라고 생각했다."

이후 경찰의 조사에서 아오바는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자기가 제1 스튜디오의 1층에서 범행을 저지른 뒤 현장을 이탈할 때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온 것이 직원 2명의 모습이었다며 "이렇게 (희생자가)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는 게 수사 관계자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그러면서 "휘발유를 쓰면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지난해 11월 첫 조사에서의 진술을 반복했습니다. 끔찍한 방화 참사의 인명피해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난 뒤에도 이성을 잃거나 흐트러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체포 전까지 단편적으로 이뤄진 경찰의 임의 조사에서 아오바는 "쿄애니가 내 소설을 훔쳤다. 용서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교토 애니메이션은 2009년부터 매년 애니메이션의 원작이 되는 소설 공모전(쿄애니 대상)을 개최하고 있었는데 아오바는 여기에 본인이 쓴 소설 2편을 응모했지만 낙선했고, 쿄애니가 낙선시킨 자신의 작품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대해 쿄애니 측은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주소, 이름이 동일한) 응모작은 있었지만, 심사에 오를 수 있는 형식을 갖추지 못해 1차에서 탈락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아오바가 응모작을 제출한 이후 쿄애니가 제작한 애니메이션과 아오바의 응모작을 비교하면 아오바의 생각이 합리적인 것인지, 그저 망상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를 추정해 볼 수 있지만, 이에 대해 쿄애니 측은 "응모작의 내용은 본인의 허락이 없으면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백 보 양보해 아오바의 의심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36명이 목숨을 잃어야 할 이유가 결코 될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끔찍한 방화 사건이 일어난 지 10개월. 이제서야 '정식으로' 체포된 아오바 용의자는 앞으로 오사카 구치소에서 교토부 경찰(부경)의 조사를 받게 됩니다. 아오바는 아직 자력으로 일어설 수 없고(구치소 이동 때도 들것에 실려 옮겨졌습니다.), 경찰 조사를 받는 시간에도 제약이 있습니다. 경찰은 아오바의 몸 상태를 살펴가면서 사건에 이르게 된 경위를 조사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도쿄신문은 어제,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아오바 용의자를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치료한 담당 의사의 말을 전했습니다. 작년 9월 어느 날 "어차피 나는 사형일 것이다. 재활치료따위 받을 생각은 없다"는 아오바를 향해 의사는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반드시 살아서 당신의 죄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지 않겠나."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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