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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마음껏 슬퍼해도 괜찮아

에밀 라우센 | 한국인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16년째 한국서 살고 있는 덴마크 남자

한국에서 힘겹게 이룬 많은 일들을 코로나가 단숨에 앗아갔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허탈감과 상실감에 짙은 슬픔도 함께 밀려왔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이 현실 앞에 나 자신이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초라하게 느껴지던 그때, 부모님의 말씀이 귓가를 스쳤다.

"에밀, 힘들면 충분히 슬퍼해도 된단다, 너의 힘든 그 마음을 다른 누군가에게 알리고 도움을 받아도 돼."

나는 14살 때 뇌종양을 앓았고, 18살 때 암을 진단받고 투병 생활을 시작하면서 길고 어두운 시간을 보냈다. 오랜 투병 생활을 하면서 우리 가족은 '슬픔과 우울'이라는 주제로 자주 대화를 하곤 했다. 부모님은 아픈 내게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힘들면 충분히 슬퍼해도 된다고. 한국 사람들은 좋은 소식이면 몰라도 나쁜 소식을 지인에게 알리는 건 걱정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잘 지내는 것처럼 보여도, 뒤에서는 혼자 오롯이 아픔을 견뎌내는 친구들을 많이 봤다.

코로나, 그리고 상실과 좌절. 나를 진정으로 돌봐줄 사람은 나 자신이기에 괜찮다며 애써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감정을 받아들였다. 나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갑작스레 닥친 이 상황에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억울했지만, 나는 부모님 가르침대로 아내와 부모님, 가까운 친구들에게 불안한 내 상황과 고민을 나눴다. 나와 함께 울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모든 걸 혼자 이겨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우리는 모든 걸 혼자 이겨내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도 없고, 혼자 살아갈 필요도 없다. '하하호호' 다들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연 없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사람은 서로 품어주고 다독이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던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내게 힘이 되어주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서로를 일으키려면 나부터 딱딱한 껍질을 벗겨내고 나와야 한다.

속상한 마음을 인정하고 마음껏 토해내는 건 건강한 일이다. 힘듦을 감추고 외면하는 대신 있는 힘껏 쏟아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신감이 훅훅 붙는다. 약해서 우는 게 아니다. 아니, 약한 것이 나쁜 것도 아니다. 이런 생각은 덴마크 사람들이, 특히 우리 가족이 일상에서도 늘 지니는 '덴마크식 사고방식'이다. 현재 한국에서 살아가는 나도 여전히 실천하고 있는 유익한 삶의 지혜이다.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배려하는 것은 나의 슬픔을 숨기는 것이 아니기에, 마음을 열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경험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소망을 잃지 않으려면 나를 충분히 위로하고 누군가로부터 위로도 받아야 한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새삼 깨닫는 시간을 가지면 우리네 관계가 더 끈끈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언제 힘들었냐는 듯 다시 비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혼자 끌어안고 끙끙 앓지 말자.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판단하지 않고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고 품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 혼자 문제를 떠안지 않고 함께 나누다 보면 문제는 문제가 아니게 될 것이다.

"마음껏 털어놓고 슬퍼해도 괜찮아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잖아요."

※ 이 원고는 인-잇 편집팀의 윤문을 거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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