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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따로 또 같이 즐겁게 읽는 맛있는 글 - 혼밥자작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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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235 : 따로 또 같이 즐겁게 읽는 맛있는 글- [혼밥자작감행]

"혼자 따라 혼자 마시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자작 참 좋구나.' "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늘 하는 인사, '잘 지내시죠?'라는 말의 무게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나날들입니다.

[북적북적]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들과 가족분들, 모두 건강한 날들을 보내고 계시길 바라고요.

혹시 경제적으로 걱정이 생기거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부디 힘내서 헤쳐나가실 수 있길 희망해 봅니다.

함께 책 읽으면서, 힘든 시간을 같이 견디면 좋겠어요.

지난 3월 2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보낸 '빨간 확성기 문자' 혹시 다들 받으셨나요? 초중고교 개학 전에 코로나19 확산세를 조금이라도 더 막아두기 위해서 2주간 실시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데요.

중대본과 지자체들이 통신사들을 통해서 요즘 하루에도 몇 개씩 보내오는 '빨간 확성기 문자' 중에, 지난 24일에는 '오늘의 직장인 행동지침'이란 문자가 있었습니다.

거기 나온 짧은 행동요령으로 '마주 보지 않고 식사하기, 퇴근 후 약속 잡지 말고 바로 귀가하기'가 포함돼 있더라고요.

마주 보지 않고 식사하기.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최선의 노력이긴 한데, '마스크 쓰기' 같은 것보다 아무래도 첫 귀에 좀 삭막하게 들리는 건 어쩔 수가 없죠.

요즘 엘리베이터들에 붙어 있는 '엘리베이터에선 대화를 삼가 주세요.'라는 부탁 같은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처음으로 겪어보는 이런 상황.

이겨내야죠.

조금 더 빨리 만나서 마주 보고 마음껏 떠들 수 있으려면, 오늘은 일단 참아야 하는 거죠.

그래서! 이주의 [북적북적]에서는 '본의 아니게 서로 거리를 두고 초봄을 맞고 있는 우리들이 따로 또 같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찾아뵙고 싶다' 궁리하다가 이 수필집에 다다랐습니다.

당분간은 평소처럼 마음껏 서로 만나고 어울리기는 힘들지만! 적당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맛과 여유와 유머를 공유하면서 혼자서 즐겁게 밥 먹고, 혼자서 즐겁게 술 한 잔을 따르는 시간에 어울릴 만한 책.

쇼지 사다오의 <혼밥자작감행>입니다.

"공기 속으로 버터 냄새가 퍼져나간다. 버터를 프라이팬에 넣어 열로 녹였을 때와는 다른 냄새다. 편안하고 한가로운 냄새다. 목초의 냄새, 목장의 냄새다. 어딘가 짐승의 지방 내음도 묻어 있는 원초적인 냄새다. 밥에서 피어난 냄새도 큰 작용을 한다고 본다. 농경과 목축, 그 둘이 결합한 냄새다. 바로 그 순간에 똑똑, 간장을 떨어뜨린다. 그러면 또 다른 냄새로 변한다. 정말이지 좋은 냄새가 공기 중에 다시금 피어오른다. 순수한 버터와 순수한 간장이 만난 냄새, 거기에 적당한 열이 더해진 냄새. 뜸이 잘 든 밥 냄새까지 슬금슬금 더해져 지금 밥그릇 속은 그야말로 조리의 절정에 다다르는 중이다. 조리다운 조리는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지금부터가 중요한데......(후략)......" [거장의 버터 간장밥] 중

"날계란 맛있죠."

이 정도로 말하는 사람은 인식의 수준이 깊지 못하다.

"날계란은 진짜 최고입니다. 정말 맛있어요."

"이렇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의 인식이 정확하다."
[날계란 간장밥 찬양] 중

"자기 접시에 지라시스시를 담는 순간에도 '개별'의 개념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다. '가키피(간장 맛 쌀과자와 땅콩이 함께 들어있는 일본 과자)의 개념'을 도입하고 만다. 과자와 땅콩의 조합을 달리해 가며 가키피를 먹을 때처럼 '이번에는 죽순 두 조각에 고야도후(얼리고 저온 숙성한 다음 말린 두부) 한 조각으로 먹어볼까?'라는 식으로 선별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표고버섯이 밀집된 포인트를 공략하자'며 물고기 떼와 낚시 포인트의 개념을 도입할 때도 있다. 내 생각에 지라시스시를 먹을 때는 때로는 한국식, 때로는 일본식, 이렇게 두 가지 방식으로 임하는 게 좋겠다 싶다. 조금 전의 한 입이 확인 방식(일본식)이었다면, 이번 한 입은 조화의 맛을 중시하는 방식(한국식)으로 가자고 말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느라 모처럼 지라시스시를 먹는데 괜히 피곤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지라시스시는 '달콤한 밥'이다. 생선살 소보로가 달고 달걀지단이 달다. 보통이라면 "뭐? 밥이 달다고?" 하며 꺼리기 마련이지만 지라시스시에 한해서만은 달달한 그 밥이 맛있다. 사무치도록 맛있다." [때로는 한국식, 때로는 일본식] 中

"자작할 때는 병맥주보다 도쿠리(목이 잘록한 술병) 쪽이 좋다. 도쿠리를 집어 든다. 적당량을 술잔에 따르고 원래 있던 곳에 도쿠리를 내려놓는다. 엄지와 검지로 술잔을 쥔다.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술잔을 입 쪽으로 가져간다. 그와 동시에 입술도 술잔을 마중 나간다. 쭉 들이켠다.

 일련의 이 느긋한 동작들이 좋다. 약간 적적한 부분이 좋다. 고독이 느껴지는 부분이 좋다. 어딘가 내버려진 느낌이 좋다. 마지막의 '어딘가 내버려진 느낌'이 특히나 좋다."
[자작 감행] 中

쇼지 사다오는 일본의 만화가 겸 수필가, 그리고 소문난 애주가라고 합니다.

[혼밥자작감행]에는 그가 먹고 마시며 은근슬쩍 농을 치고 때로는 사색하는 순간들에 대한 짧은 에세이 48편이 실려 있습니다.

먹고 마시는 이야기로 짐짓 진지하게 수다를 떠는 대담록 2편도 있습니다.

모두 경쾌한 호흡으로, 혼술 하며 훌훌 넘겨보기 좋은 맛있는 글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작년 11월에 출간돼 아직은 '비교적 신간'이기도 합니다^^ 가끔 일본 작가의 수필을 읽다가 디테일에 대한 외곬에 가까운 집착이나 '사상과 취향의 구획을 나누고 서열 매기기'에 대한 본능적인 천착 같은 게 느껴지면 아무래도 위화감이 '훅 끼쳐오듯' 느껴지죠.

(우리나라 말로까지 번역돼 들어오는 일본작가의 경우라면 대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그래서 아무튼 세계고 뭐고 됐고 일본이 최고야' 같은 특유의 정서를 마구 발산하는 수준의 글은 별로 없긴 하지만요.) 그런데 저도 처음 읽어보는 작가 쇼지 사다오 씨는 디테일에 강하면서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 느긋한 여백 같은 게 이 책에 실린 어느 에세이에서나 느껴져서 좋았어요.

'허허' 웃고 있는 느낌이 전편에 깔려 있습니다.

시공사가 책을 내면서 두른 띠지에 사노 요코의 추천사 한 마디가 짧고 굵게 실려 있습니다.

"나는 쇼지 사다오의 에세이를 읽으면 아무리 아플 때라도 3분에 한 번은 소리를 내며 웃는다."고 얘기했네요.

바로 그 느낌.

내가 아프고 힘들 때 느긋하게 등을 두드려줄 것 같은, 무리하지 않으면서 짐짓 에둘러 감싸 오는 위로를 건넬 것 같은, 그리고 맛있는 안주 냄새를 풍기면서 적당히 취기까지 오른 글맛이 물씬 납니다.

셰프이자 푸드 에세이로도 유명한 박찬일 님이 쓴 아래의 추천사를 덧붙이는 걸로, 이 이상의 추천은 갈음하겠습니다^^ (이 책의 뒤표지에 실려 있습니다.)

"쇼지 사다오, 이 노인네 책이 번역되어 나온다고?

깜짝 놀랐다. 주제넘지만, 나는 이 사람에게 일찍이 매료되었다. 낮술과 아침술(!)을 즐기는 이 대책 없는 만화가 할배의 책을 우연히 본 후였다. 몇 권의 일본어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일본어가 어려워서 읽다가 던져두었지만. 이걸 번역해서 내준다니,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론 억울하다. 힘겹게 번역해서 한두 줄씩 읽었는데, 여러분은 추리닝 바람에 편하게 소파에 누워 "헛, 재미있는 노인네, 정말 한잔 마시고 싶어 지는걸?" 하면서 그냥 읽기만 하면 될 테니까. 어디나 사람은 같고, 어디나 안주도 같고, 어디나 술꾼은 같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게 된다. 소개되는 도쿄의 술집을 언젠가는 꼭 가봐야지 하고 벼르게 될 것이다. 한일관계가 좋아질 날도 올 테니까. 그때는 나도 좀 부르시라. 쇼지 사다오 노인네의 단골집에 가서 아주 진상을 부려줄 테다. "이봐. 사다오상이 즐겨 드시는 안주를 가져오라고!" 물론 이 책에 나오는 기 센 주모들에게 쫓겨날 것이 틀림없겠지만. 어쨌든 술꾼 만세다."
(박찬일. 셰프, 에세이스트 그리고 애주가)

아직은 내 마음껏 행동할 수 없는 봄입니다. 너무 많은 분들이 어려움을, 고통을, 아픔을… 그리고 죽음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상처를 겪고 있어요. 진짜 봄을 다 같이 기다리는 마음으로, 서로 토닥토닥하면서 혼밥 자작 조금 더 따뜻하게 했으면 …하는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북적북적]도 서로 만나지 않으면서 함께 오손도손 책을 읽는 모임이죠. 들어주시는 모든 분들, 언제나 깊이 감사드립니다.

*시공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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