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우리는 36년 뒤에도 정은경을 볼 수 있을까

Max | 뭐라도 써야지. 방송사 짬밥 좀 먹은 저널리스트, 프로듀서.

SBS 뉴스

작성 2020.03.24 11:01 수정 2020.03.25 09:0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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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특파원 후배가 페북에 쓴 글을 보니 지금 미국 코로나 사태의 최고 지휘자는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소장이라고 한다. 후배는 백악관 언론 브리핑에 배석해 트럼프 대통령의 비전문가적인 말에는 "노"(NO)를 외치는 그를 '목을 내놓은 화타'로 비유했다.

파우치 소장은 레이건 시절부터 6명의 대통령이 바뀌는 동안 국립전염병연구소를 이끌어온 미국 감염학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무려 36년(1984-현재) 간 소장으로 재직했다. 우리로 치면 5공 때부터 지금까지 질병관리본부장을 해오는 셈이다. 보건의료 쪽으로만 보자면, 미국 식품의약국(FDA) 산하 약물평가연구센터(CDER) 재닛 우드콕 센터장 역시 이 기관의 수장직을 25년째 수행 중이다. 미국은 이처럼 우리 기준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긴 기간 동안 자리를 지키는 고위급 공무원이 눈에 띈다. 미국이라 해서 고인 물이 썩지 않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미국 감염학계의 살아있는 전설' 앤서니 파우치 NIAID 소장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스토브리그'에서 백승수 단장은 구단 스태프들과 첫 회의에서 4년 연속 리그 꼴지를 한 윤성복 감독을 예상을 뒤엎고 유임시키는 것은 물론 3년 계약을 할 거라고 선언한다. 스카우트 팀장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묻고 운영팀장도 깜짝 놀라지만 백단장은 "힘 실어주려면 3년은 해야지"라며 1년 계약하는 감독이 어디 있냐고 말한다. (사실은 있다. 스토브리그의 원조격이라고 할까, 책과 영화로 유명한 '머니볼'에서조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아트 하우 감독은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빌리 빈 단장으로부터 1년 계약을 통보받고 "1년이면 서로 신뢰가 없잖아"라며 몹시 기분 나빠한다.) 1년 계약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구단의 신뢰가 약하다는 의미이고 1년 뒤엔 거취가 불분명한 감독은 선수단 장악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한국의 지휘자 중 한 명으로 시민들의 신뢰를 많이 얻고 있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어쩌면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에 교체될 수도 있었다는 인터뷰 기사를 봤다.

지난해 12월 청와대에서 정 본부장 후임을 물색했다. 임기가 2년 반쯤 지났으니 바꿀 때가 됐다고 생각한 것 같다” (정은경 본부장 전임자였던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의 동아일보 3월 10일자 인터뷰. 그 역시 1년 5개월 정도로 단임 했다.)

코로나 사태 속, 우리는 정은경 질본관리본부장을 못 볼 수도 있었다.
미국(만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은 정권이 바뀌어도 정무직과 전문직을 구분해서 공무원 인사 판단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여준다. 우리 같으면 한 정권에서 두세 번씩 바꾸기도 하는 최고위 전문직도 필요하다면 10년 안팎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 사회의 안정과 조직의 장기적 발전을 견인한다고 그들은 판단하는 것 같다. (물론 반대로 조직이 망가지는 경우도 없진 않겠지만.)

우리는 '정권이 바뀌어도 관료는 영원하다'란 말이 부정적인 철밥통 공무원을 뜻할 때만 사용될 정도로 공공서비스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임기와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거나 아예 없다. 정권이 바뀌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2천 개니 3천 개니 하면서 1, 2년 임기를 채우면 논공행상 차원에서 책임자를 또 바꾸니 정책의 일관성이나 연속성이 생길 리 만무하다. 5년만 참으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온다. 1년짜리 감독이 힘을 받을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메이저리그의 명장들인 조 토리(1996-2007 뉴욕 양키스), 토니 라 루사(1996-2011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감독 알렉스 퍼거슨(1986-201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모두 10년, 20년을 훌쩍 넘는 기간 동안 한 팀을 이끌며 좋은 성적을 냈다. 그들의 재임기간 동안 수많은 스타들이 명멸하고 때론 감독을 비난하며 떠났지만 구단은 그들을 지지했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최근 '하마터면 정은경은 없을 뻔 했다'라는 칼럼에서 5년 전 메르스 방역 실패의 책임을 물어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은 정은경 당시 질병예방센터장의 징계 수준을 낮춘 일화를 공개하며 이렇게 썼다.

공무원 인사란 기본이 이런 것이다. 인사권자가 자기 말 잘 들을 것 같은 사람 승진시키는 게 아니라 때론 미련해 보일지라도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키워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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