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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왜 말을 못 알아들어" 꼰대식 소통은 그만요

양희연 | 전 여자농구 국가대표. 숙명여대 대학원 스포츠심리학 박사

"왜 말을 못 알아들어!"

이 한마디는 대한민국 스포츠계 지도자가 선수에게 있어 어떤 위치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전형적인 상명하복 관계 말이다. (이는 성인에서 유소년으로 내려갈수록 더 뚜렷해진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히딩크 리더십'으로 대한민국 스포츠계에도 수평적인 리더십 문화가 만들어지나 싶었지만, '파벌 문화' '(수직관계에서 비롯한) 지도자 성폭력' 등 선수 인생을 뒤흔드는 나쁜 사례들은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다. 선수들을 이끌어가야 할 지도자의 인식과 태도는 여전히 '꼬장꼬장'한 꼰대 마인드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선수 시절, 많은 지도자들이 '왜 말을 못 알아 듣냐'며 자주 말해댔다. 절대 선수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말이다. 의사가 어린이 환자에게 의학용어가 아닌 눈높이 설명을 하듯, 지도자도 본인'만' 편한 언어가 아닌 선수들이 알기 쉽도록 '맞춤 소통'을 해야 한다. 선수들과 소통이 안 된다면 그건 독재나 마찬가지고, 선수들의 불만과 이탈이 반복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단지 계속 운동을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준비되지 않은 지도자가 '완장'을 차서는 안 되듯,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올바른 의사소통'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의식해야 한다.

나의 경험을 미뤄보면 운동에도 '총량의 법칙'이 있다. 기술 연마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집중했는지는 실력에서 명명백백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많은 지도자들이 선수들에게 '노력의 시간'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문제는 본인이 경험했던 그 옛날 '헝그리 정신'을 강요하는 점이다. "더 열심히 해, 더 노력해" 무작정 외치며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시스템 그리고 세분화된 역할 분배로 시간 대비 최대의 효율을 끌어낼 수 있도록 지도자의 생각과 태도도 시대에 발맞춰 유연하게 바뀌어야만 한다.

"왜 말을 못 알아들어?" 못 알아듣는 게 아니라, 못 알아듣게 말하지는 않았는지?

은퇴 후 지도자 연수를 위해 방문했던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지도자를 만들어가는 환경과 문화가 판이하게 달랐다. 크게 달랐던 점을 꼽자면 지도자 1명이 아닌 여러 명이 함께 결정한다는 것. 한국은 지도자 혼자 오롯이 모든 결정을 내렸지만, 미국은 3~4명의 세분화된 각 파트별 지도자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며 의사결정을 내렸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체계적으로 파트별 업무가 정해져 있음.) 한국 스포츠 문화에 익숙한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규율 속에서 자유를 찾고, 자유만 찾고 행한다면 그건 방종이다'

나는 이 말을 오래도록 마음에 품어왔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니 조직을 잘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말이다.

미국에서 느낀 것도 이것과 비슷했다. 미국 시스템 속에는 자유만 있는 것처럼 보여도 지도자와 선수들 간의 규율은 엄격히 존재했고 규칙을 어기지만 않는다면 지도자로부터 그 어떠한 것도 존중을 받았다. 자유로움 속에 질서가 있던 그곳, 처음으로 부러운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영어라는 익숙하지 않은 언어 때문에 연수 기간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지만, 미국을 엿보며 한국의 스포츠 문화를 다시 돌아보고, 오래된 내 생각의 틀을 깨준 값진 경험의 시간이었다.

규율 속에서 자유를 찾고, 자유만 찾고 행한다면 그건 방종이다.

대한민국 스포츠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지도자들에게 바란다.

선수들에게 단순히 기술 지도만을 하는 사람이 아닌, 삶의 멘토도 되어줄 수 있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기를. 언제나 일관성 있는 태도로 선수들을 대하고, 개인의 감정에 흔들려 차별하지 않기를. '완벽한 지도자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끊임없이 공부하는 지도자가 되기를.

대한민국 스포츠계에도 함께 바란다.

학생 성적이 안 좋은 것이 선생님만의 잘못이 아니듯, 경기 결과보다 과정의 가치도 같이 지켜봐주기를. 1명의 지도자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 아닌, 각기 다른 강점을 가진 지도자가 여럿 모여 지도할 수 있기를. 지도자의 건강한 철학을 널리, 오래 펼칠 수 있도록 고용안정성과 인권도 함께 지켜지기를.

나 역시 더 나은, 더 밝은 대한민국 스포츠 미래를 위해 묵묵히 걸어가야겠다.

 
#인-잇 #인잇 #양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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