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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코로나 일기 #_그럼에도 우리는 잘 나아가고 있다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며칠 전 갑자기 조기 퇴근하게 되었다.
물론 좋은 일로는 아니다. 직원들은 퇴근을 머뭇거리다 각자 자기 길을 갔고 나 역시 어디론가 향하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집에 가기는 좀 그런데. 다른 지점 순회할까?' 곧바로 '안돼'라는 사인이 머리에서 떨어졌다. '오늘은 어디서 잠을 자야 할까? 모텔로 가야 하나?' 여전히 내 머리는 'NO'라는 명령을 내렸다. 막막했다. 다시 차에서 내려 사무실엔 들어가지 못하고 건물 앞마당을 서성거렸다. 협력업체 직원 중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큰일 날 뻔했지. 불행 중 다행이야."

"우리는 괜찮은 거지요?"

"그럼. 좀 더 가까이 있었던 우리도 괜찮다고 하니 그대들은 상관없지."

"그래도 좀 찝찝하네요. 그런데 왜 직원 분들은 다 퇴근하나요?"

"혹시 모르니 사무실은 방역을 해야 한대. 약이 너무 독해서 일을 할 수가 없고 그래서 일단 재택근무를 해야겠지. 내일 다시 나올 거야."


그는 수긍하는 표정을 지은 뒤 자기 일을 하러 갔고 나는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도대체 뭔 소리냐고? 혹시? 그렇다. 코로나19와 관련한 문제다. 코로나19가 우리 지사 사무실까지 검은손을 뻗친 것이었다. 공교롭게 한 확진자가 우리 지사에 여러 번 방문한 것. 이런 이유로 지사는 폐쇄, 직원들은 감염 위기에 몰렸다.


사무실 덮친 코로나 공포, 내 피부로 직접 느끼던 순간...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돌아보자. 사건이 벌어진 날 아침, 나는 출근을 하자마자 같이 근무하는 A 지점장에게 "어제 판정받은 확진자 00가 우리 지사와 관련이 있는 분입니다"라는 보고를 받았다. 이 소식에 나뿐만 아니라 직원 모두 패닉 상태에 빠졌다. 당황스러운 얼굴로 서로 쳐다보며 황당해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한 직원은 슬그머니 마스크를 꺼내 입을 가리고 있었다.) 

난 본사에 보고를 함과 동시에 직원에게 '지역 보건소에서 빨리 와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판정'해 줄 것을 요청하라고 했다. 그리고 공장과 창고(이하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알리려고 했지만 일단 그건 일단 보류하는 것이 좋겠다는 지점장의 의견을 따랐다. 왜냐하면 확진자의 동선은 사무실과 관련 있지 현장과는 무관했기 때문에 폐쇄되는 경우 사무실만 해당하고 현장은 아닐 테니 괜히 벌써부터 불안감을 조성할 필요 없다는 의견이 타당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이 곳 지사는 사무실과 현장이 같은 부지에 있지만 서로 독립적으로 되어 있다.) 잠시 후면 확실한 결과가 나온다는 점도 그 결정에 한몫을 했다.

이런 나름의 조치를 한 뒤 우리들은 보건소 관계자들을 기다려야만 했다. 모두들 초조해하는 빛이 역력했다. 물론 대놓고 소란스럽게 하거나 불안감을 호소하지는 않았지만 긴장감은 팽팽했다. "확진되면 어떻게 하지?" 이 걱정이 온통 사무실을 지배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직원들은 자신의 할 일은 하고 있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건소 직원 등 공무원분들은 점심시간 바로 직전에 도착했다. 이들은 회사 내 CCTV를 세밀하게 보면서 해당 확진자의 동선을 확인, 그와 우리 직원과의 밀접 접촉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체크했다. 그리고 모든 직원들을 대상으로 개별적으로 '그 확진자가 여기 있을 때 신체적 접촉이 있었는지, 대화를 오래 했는지, 마스크를 착용했는지' 여러 질문을 했다. 나를 포함 사무실 직원 모두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분들은 잠시 상의하더니 최종 판정을 내렸다.

"공간이 개방되어 있고 건물이 독립적인 점을 고려했을 때 현장 폐쇄는 불필요합니다. 단 사무실은 혹시 모르니 방역을 해야겠습니다."

직장 폐쇄는 아니라니 정말 다행이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우리 직원들은…요?"

"밀접 접촉이 없네요. 서로 마스크도 쓰고 계셨고. 그러면 굳이 검사받을 필요는 없어요."

"찝찝해서 검사받으면 어떻게 되나요?"

"원하시면 해도 됩니다. 다만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격리되어야 합니다."


이 말에 나는 혹시 검사 받고 싶어 하는 직원들이 있을 것 같아 원하는 사람은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러자 그분들은 다시 한번 "밀접 접촉 아니면 괜찮습니다. 몸이 이상하다 싶으면 언제든 오세요"라며 상황을 마무리짓고 떠나 갔다. 그리고 1시간 정도 지난 뒤 방역팀이 왔고 우리 직원들은 짐을 싸서 사무실에서 나오게 됐다. 여기까지가 방금 전 상황이다.


"확진되면 어떻게 하지?" 모두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혼자 마당에 덩그러니 남은 나는 더 이상 서성거리지 않고 차에 탔다. 그리고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 채 시동을 걸고 아무튼 지사에서 출발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운전 중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지난 주말에 B지점장한테 아래와 같은 긴급 보고로 받은 후 느꼈던 공포, 불안감이 다시 새록새록 떠올랐다.

"대리점 직원 중 한 명이 확진자와 동선이 같대요. 그래서 그분은 검사를 받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가격리해야 한다고 합니다. 만약 그 직원이 양성으로 판명되면 대리점을 폐쇄해야 한답니다."

그 보고를 듣고 난 망연자실했었다. 순간 '그 대리점이 폐쇄되면 어쩌지? 그럼 그 지역의 서비스는 어떻게 해결하지?'와 같은 업무 걱정에 머릿속이 하얗게 됐다. 공포와 불안감이 동반된 백지 상태를 경험한 것이다. (다행히 그 분은 음성으로 판명됐다.)

그런데 지금의 이 공포, 불안감은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같은 종류의 부정적인 감정이지만 지난주는 업무와 관련한 걱정이 더 컸다면 방금 전의 불안감은 지점 폐쇄에 대한 걱정과 동시에 개인적인 걱정이 상당했다. 예를 들어 '나는 어떻게 되나?'부터 '우리 가족은 어쩌지. 주말에 짜장면 나눠 먹었는데. 어, 우리 어머니와 장모님 집에도 갔었는데. 어휴.' 이런 종류의 염려 같은 거 말이다. 물론 다행스럽게 보건소 직원들로부터 '당신은 괜찮아'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확실한 검사를 통해 음성 판정이 난 것도 아니어서 '혹시라도 나 때문에 가족이?' 라는 우려를 떨칠 수가 없었다. 두렵고 외로웠다.

"어휴…난감하다. 모두를 위해 자가 격리하고는 싶은데 도대체 어디서 하지? 갈 곳이 없네…"


"나는? 우리 가족은?" 그때 느낀 두려움과 외로움이란...

난 확진자도, 자가 격리 대상자도 아니라고 판정받았지만 '혹시라도 모른다'라는 두려움 때문에 집에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디 한 곳 내 몸 누일 곳이 없었다. 차를 타고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가 결국 하는 수 없이 집으로 갔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생각을 해 보았다. 머리 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힘겨루기를 벌였다.

(악마)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냥 들어가! 실제로 아무 일 없었잖아.

(천사) 무슨 말이야. 그건 가족들을 속이는 일이야. 사실대로 말해야지.

(악마) 괜한 걱정을 주는 것 뿐이야. 말할 필요 없어!

(천사) 그러면 안돼. 혹시라도 네가 감염되었다면 가족도 같이 걸리는 거잖아. 자가 격리 해야해

(악마) 어디서 자가 격리를 하라는 거야. 그냥 들어 가.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다가 결심을 하고 휴대폰을 열어 아내에게 전화했다. 솔직하게 지금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내가 말한다. "들어 와!" 오우, 다행이다. 그러나 혹시하는 걱정에 그 이후 난 집에서 자가 격리를 실시했다. 식구들과 방을 따로 썼고 식사도 겸상하지 않았으며 마스크도 착용했고 심지어 실내에서 장갑까지 낀 채 며칠을 지냈다. 하지만 전혀 불평하지 않았다. 갈 곳이 있다는 것, 날 받아주는 곳이 있다는 건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가 갈 곳, 내 자리가 있다는 건 정말이지 감사한 일이다.

소동이 벌어진 다음 날, 나를 포함한 직원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맡은 바 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달라진 풍경은 있었다. 마스크를 죽어라 쓰지 않던 몇몇 직원들도 새 부리 모양의 마스크를 착용하며 사무를 보기 시작했다. 마스크 때문에 답답한 지 대화가 크게 줄었다. 출근할 때 철저하게 체온을 쟀고 손 세정제를 쓰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물론 이런 대책들은 코로나 19가 처음 발생했을 때부터 시작됐지만 그 강도 측면에서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해졌다.

점심식사 풍경도 달라졌다. 평소엔 삼삼오오 함께 식사를 했지만 이제는 각자 알아서 먹는 것으로 바뀌었다. 어떤 이는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오고(여기는 지방이라 직장과 가정과의 거리가 멀지 않다) 어떤 이는 도시락을 싸 와서 혼자 먹고 어떤 이는 혼자서 외식하는 등 각각 여러 방법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나처럼 집과의 거리가 멀고 도시락을 싸 올 수 없는 사람은 점심을 어떻게 해결할지 걱정해야만 했다.

퇴근 이후 생활은 아주 건전해졌다. 술과 오락을 좋아했던 직원들은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하여 그런 일 때문에 감염이라도 되면 회사나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가 됨은 물론 동선이 공개되니 망신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주말에도 사적 모임과 취미 생활을 하지 않는 분위기. 생활이 정말 단순해졌다. 집 ↔ 회사가 전부이다. 확실히 코로나 19를 대처하는 우리의 마음자세와 행동은 그날 일로 크게 바뀌었다. 스스로를 최대한 보호하는 쪽으로 말이다.


그런 데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냉정한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무슨 일이 벌어졌든지 간에 어쨌든 회사는 돌아가야만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고 생활을 단순화해야 했지만, 할 일은 해야만 했다. 판매원은, 상대방 업체가 꺼려하지 않는다면, 찾아가서 상품을 팔아야 했고, 관리직은 회사 내 여러 이슈를 처리하기 위해 마스크를 쓴 채 장시간 회의도 해야 했다. 또한 현장에서 고객을 대면하거나 상품을 만들거나 배달해 주는 협력업체 분들도 보통 때와 다름없이 일을 해야만 했다.


모진 고통의 나날, 그럼에도 우리는 잘 나아가고 있다.

사실 우리만 그런 건 아니다. 대한민국이 코로나19의 위험에 한층 더 노출이 되었음에도 모든 국민들은 각자가 종사하는 업에서 (물론 위축은 되었지만) 최선을 다해 무엇인가를 만들고, 팔고, 사고, 배달하고 있지 않은가.

퇴근하려고 운전대를 잡았다. 뉴스에선 7천 명 넘는 사람들이 확진이 되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걱정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 대다수는 코로나19에서 빗겨나 있고 설사 걸린 사람도 특별히 건강상 문제가 있지 않으면 다시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답답한 정책이 있으나) 코로나 19의 위험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 그것을 믿고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 나무를 심겠다'는 심정으로 직장생활을 해야겠다.

 

삶은 순간 위축될 수 있을지언정, 멈출 수는 없으니까.



#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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