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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기자의 라이프 저널리즘] 우리는 몰랐다. 마티가 알았던 것을 -봉준호 수상에 부쳐-

[이주형기자의 라이프 저널리즘] 우리는 몰랐다. 마티가 알았던 것을 -봉준호 수상에 부쳐-

이주형 기자 joolee@sbs.co.kr

작성 2020.02.12 13:51 수정 2020.02.13 17:0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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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이주형기자의 라이프 저널리즘] 우리는 몰랐다. 마티가 알았던 것을 -봉준호 수상에 부쳐-
1998년 입춘 다음날인 2월 5일이었다. 회사에서 근무 중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통신사 와이어에 그날 새벽 서울 명륜동 한 가정집에 불이 나 70대와 60대 노부부가 숨졌다는 단신 기사가 떴다.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78세 김기영. '혹시 영화감독, 그 김기영일까?' 기사에 따르면 김 씨는 "불로 인한 연기에 질식해 숨졌고, 불은 한옥 내부 20여 평을 태우고 2천여만 원의 재산 피해를 낸 뒤 30여분 만에 꺼졌고 경찰은 전기누전 가능성 등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었다.

오비추어리(obituary) 즉, 부고 기사가 아니라 마치 화재 사건사고 기사처럼 '처리'된 그 기사를 보고 생경했던 기억만큼은 아직도 뚜렷하다. 이 불의의 사고 바로 전(前)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김기영 감독 회고전이 열리며 다시 주목받기 시작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막 재평가 바람이 일기 시작하는 때였어도(사고 며칠 뒤에는 베를린 영화제 특별전이 예정돼 있었다) 영화 관계자나 팬들 정도가 김기영 감독을 알았지 일반 대중에게 그의 이름은 낯설었다.

당시의 나도 그가 한국 영화사에서 대단히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감독으로, 그렇게 사건사고 단신으로 처리될 인물이 아니란 것 정도만 알았고 해당 취재부서도 아니었던 터라 적극적으로 부고 기사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못하고, 김 감독을 알아보고 한번 써보자고 동의해줄 데스크나 동료를 찾지 못해 어찌할 바를 몰랐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당일 저녁 타 방송사에서 부고 리포트가 나왔으나 이 역시 김 감독을 제대로 평가한 부고기사라기 보다는 의례적으로 처리한 기색이 역력한 기사였다) 그렇게 김기영 감독은 우리 일반 대중의 눈에서는 멀어졌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이제 봉준호 감독은 전국 방방곡곡 모르는 사람이 없는 한국인이 되었다. 봉 감독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공개적으로 리스펙을 날린 거장 '마티'(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애칭)가 바로 김기영의 팬이자 김 감독의 영화 '하녀' 복원의 후원자였다는 사실이 재조명돼 흥미롭다. 마티가 이끌었던 세계영화재단 후원으로 '하녀'가 디지털 리마스터링돼 김기영 감독 타계 10주기인 지난 2008년 칸영화제의 '칸 클래식' 부문에 처음 공개됐던 것이다. 봉 감독 역시 자신이 김기영 감독의 팬임을 줄곧 밝혀왔다.

"김기영 감독 영화에 완전히 광분해서 그걸 홈비디오 테이프에 전부 녹화를 떴거든요. '하녀', '충녀', '이어도', '육식동물'… 김기영 감독이 살아계셨다면 제 영화 '기생충'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안타깝게 98년도에 화재로 돌아가셨어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07/2019060701215.html)

우리는 잘 몰랐다, 마틴 스콜세지도 알았던 것을. 그렇게 우리 안의 천재와 독창성과 소프트파워의 가능성을 더 싹 틔워주지 못했다. 어쩌면 김 감독이 한창 작품 활동을 한 60-70년대가 그의 문화적 상상력과 능력을 알아주기엔 너무 먹고 살기에 바빴던 때여서 그랬을지 모른다. 그렇게 문화약소국(?)에서 많은 재능과 창조력, 도전정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사라져갔을 것이다. 물론 소수의 눈 밝고 관심있는 사람은 주목했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하드파워나 소프트파워 모두 미국이 패권을 잡고 있는 현실에서 설사 우리가 알아봤다고 하더라도 지금 봉준호 감독만큼의 큰 주목을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알아봤던 눈 밝은 사람 중에 한명이 봉준호고 마티일 것이다. 국제 영화계에서 봉 감독을 일찌기 알아봐준 사람은 스스로도 밝혔듯이 '쿠엔틴 형님'(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인 거고.

심미안이 있는 나라가 문화강국이고 문화선진국이다. 이제 우리는 봉준호가 왜 이렇게 많은 상을 받게 됐는지 미디어의 조명 또는 개개인의 관심과 주목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더 큰 관심을 갖고 그를 지켜볼 것이다. 그건 그만큼 우리의 문화력과 문해력이 높아진 덕분일 것이다. 봉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 이후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백범일지)이 화제가 된다고 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富强)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백범일지, '나의 소원')

그런데 이렇게 아카데미상을 받아야만 높은 문화의 힘을 인정받는 건 아니다. 평소에 문화의 힘이 중요하고 -그게 순수예술이든, 대중예술이든 문학이든, 영화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심지어 조직문화든- 문화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문화국이 될 것이다. 문화'대국', 문화'강국', 문화'선진국'보다는 '문화국가'라는 말로 족한 마음이 든다.

P.S 봉준호 감독의 아버지가 바로 김기영 감독의 '하녀'의 타이틀 디자이너였다. 참 묘한 인연이다. 또 CJ가 2018년 계열사인 CGV에 김기영 관을 열었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들린다. 그런 CJ가 봉 감독에 지속적인 투자를 해오고 이번 기생충도 제작투자 프로모션을 했다는 사실도 우리는 안다. 세상은 운(運)이 지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저 운만으로 되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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