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파일] 후쿠시마, '상수'가 된 불안 - ②

[취재파일] 후쿠시마, '상수'가 된 불안 - ②

원전 폐로 현장 취재기

유성재 기자 venia@sbs.co.kr

작성 2020.01.28 13:59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일본 정부 외무성과 일본 외신기자클럽(Foreign Press Center Japan)이 주최하는 현장 취재 프로그램으로 지난 1월 22일 후쿠시마 제1원전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1년 전 도쿄 특파원 생활을 시작한 뒤 지난해 여름 후쿠시마 원전 주변의 어촌과 귀환곤란구역 취재를 진행했을 때 원전 입구까지는 접근한 적이 있었지만, 정식 취재 허가를 받고 원전 부지 내부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번 취재에는 SBS 외에도 프랑스, 스위스, 시리아 등에서 온 일본 특파원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날 후쿠시마 제1원전을 둘러보며 취재한 내용을 취재파일 두 편으로 나눠 전해드리겠습니다.

▶ [취재파일] 후쿠시마, '상수'가 된 불안 - ①

● 2호기 100m 앞까지 접근…선량은?

안전 장비(그린 장비)를 착용한 취재진은 고무장화를 신고 건물 밖으로 나가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그대로 약 5분 정도 달려간 곳에서 지시에 따라 내리니 눈앞에 1, 2, 3, 4호기의 모습이 펼쳐졌습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해발 30m 높이의 암반지역을 25m 정도 깎아낸 땅 위에 지어졌는데, 취재진이 내린 곳은 암반을 깎아 내려가기 전, 그러니까 해발 30m 원래 암반의 끝자락이었습니다. 대체로 원자로 건물의 '지붕'과 비슷한 높이로 그곳에서 원자로 2호기 건물까지의 거리는 100m 정도 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후쿠시마 2호기 100m 앞이후의 취재 일정에 원전 건물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하는 순서가 있어서 취재진은 이곳에서도 '그린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만, 도쿄전력 관계자는 '이 장소에서는 마스크와 헬멧 등 특수한 장비를 착용하지 않아도 (단시간이라면) 시찰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도쿄전력이 사전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이 장소의 평균 선량은 시간당 39.7 마이크로시버트(2019년 1월 기준). 취재진이 출입절차를 거친 '입·퇴장 관리 시설'의 평균 선량이 시간당 0.2 마이크로시버트인 걸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입니다. 취재 당시 바람이 바다 쪽에서 육지로 불어오고 있어서 실시간 선량은 아마도 평균 선량보다 더 높지 않았을까 합니다만, 시선이 닿는 곳에 실시간으로 선량을 볼 수 있는 측정기를 찾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 언덕을 내려가 3호기에 근접
후쿠시마 4호기 외경5분 동안의 촬영과 취재를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는 언덕을 내려가 4호기 건물의 뒤편에 취재진을 내려주었습니다. 4호기는 3호기와 배관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는데, 이 때문에 2011년 사고 당시 3호기가 수소 폭발을 일으킨 다음날 연쇄 폭발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은 4호기 뒤편에 위치한 사용 후 핵연료 공용 풀(pool) 시설 앞에서 출발해 3호기 뒤편까지 안내를 받아 이동했습니다. 원전 부지 내부의 지하수를 뽑아 올리는 '서브 드레인' 설비를 거쳐 냉각 차수벽 설비를 취재했습니다. 냉각 차수벽은 노심 용융이 일어난 원자로 건물에서 지하수가 외부로 빠져나오지 않도록 1미터 간격으로 30m 길이의 파이프를 건물을 한 바퀴 돌며 땅에 박은 뒤 그 안에 냉각 용매를 흘려 땅을 얼리는 시설입니다. 외부 공기에 노출된 파이프 상단 부위는 주변 수증기가 얼어붙어 두꺼운 얼음층이 형성돼 있었습니다. 당초 '냉각'이라는 방법으로 차수벽을 만드는 것에 대한 기술적 회의도 있었지만 차수벽 안쪽과 바깥쪽의 지하수를 추출해 선량을 비교했더니 확연하게 차이가 나서 효과가 입증됐다고 합니다.

3호기와 4호기 원자로 건물 근처에서도 작업자들이 여러 명 보였는데, 이들은 취재진의 '그린 장비'보다 조금 더 방호력이 강화된 '옐로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3호기 뒤편의 평균 선량은 시간당 50.5 마이크로 시버트로 자료에 나와 있었는데, 근처에 설치된 실시간 선량계의 수치는 순간적이지만 시간당 70 마이크로 시버트를 넘기도 했습니다. 도쿄전력 관계자의 설명과 취재까지 이 장소에 체류하는 시간은 5분으로 제한됐습니다.
후쿠시마 냉각 차수벽 시설 후쿠시마 냉각 차수벽 시설 ● '불안'의 핵심…오염수 처리 시설

이어서 '다핵종제거설비(ALPS)'가 설치된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도쿄전력은 하루 170톤씩 모이는 원전 오염수를 처리하기 위해 ALPS 3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존 시설과 새로 지은 시설, 그리고 고성능 처리 시설입니다. 원전 부지에서 퍼올린 지하수와 빗물 등을 모아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시설인데, 방사성 물질을 제거한다고는 하지만 삼중수소(트리튬)은 제거하지 못해 일단 처리 시설을 거친 물은 원전 부지 내의 탱크에 보관합니다. 이 탱크를 설치할 부지가 올해 말이면 바닥이 드러나고, 이때까지 설치한 탱크에 하루에 170톤씩 축적되는 오염수를 모아도 2022년 여름이면 만배(滿杯, 가득 참)가 됩니다.

오염수를 더 이상 추가로 저장하지 못하는 시점까지 처리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도쿄전력의 입장인데, 일본 정부도 지난해 말 사실상 이를 인정하고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거나 대기로 증발시키는 방향으로 처리하기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물론 이 처리 작업을 '언제' 시작할지는 공표하지 않았지만, 올해 여름 도쿄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처리 작업의 시기를 본격적으로 저울질할 것으로 보여 후쿠시마 어민들은 물론 전 세계가 우려하고 있습니다. 원자로 건물 근처의 방사능 오염보다 원전 오염수, 즉 삼중수소수의 처리가 후쿠시마는 물론 일본과 주변국에 큰 이슈로 떠오른 셈입니다.
후쿠시마 ALPS 처리 시설 ALPS 처리 시설 내부취재진이 착용한 '그린 장비'로는 ALPS 내부를 취재할 수 없었습니다. 처리시설의 밖에서 안쪽을 들여다보며 도쿄전력 직원의 설명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ALPS는 일종의 커다란 정수기들이 잔뜩 모인 '공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부는 이리저리 구부러진 거대한 파이프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습니다. 총 넓이 350만 제곱미터, 도쿄돔 75개분의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내의 모든 지하수와 빗물을 모아서 처리하는 상당히 거대한 시설이었지만, 내부를 볼 수 없어 취재진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ALPS 주변의 공기 중 선량은 시간당 0.6 마이크로시버트로 원자로 건물 근처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편이었습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저장 탱크이번 취재의 전 과정에서 SBS를 포함한 각국 언론들은 바로 이 삼중수소수의 처리 방식과 시기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했습니다. 삼중수소의 반감기는 12.3년으로 사고 초기에 저장한 오염수에 포함된 삼중수소는 3년 정도면 반감기를 맞게 됩니다. 해양 방출이든 대기 방출이든 어쩔 수 없이 방출해야 할 시기가 되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 방사성 물질이 줄어든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오염수의 삼중수소의 양은 2019년 10월 말 현재 무려 860조 베크렐에 이릅니다. 그러나 삼중수소수 처리 시기와 방법에 대해 이리저리 물어봐도 대답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저장 장소와 탱크의 제한된 용량을 고려하면서 신중히 검토하고, 국가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겁니다. 도쿄전력은 이런 설명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현재 증설 중인 저장 탱크의 모습을 취재진에게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탱크를 지을 부지 자체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결정을 서둘러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일종의 '시위'처럼 느껴졌습니다.

● 깐깐한 검열…다시 밖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과 다핵종처리시설, 오염수 저장 탱크를 모두 둘러보는 데 약 2시간이 걸렸습니다. 원전 부지 내를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을 빼고, 순간적으로 시간당 최대 70 마이크로 시버트가 넘는 공간 선량에 노출된 시간을 포함한 야외 취재 시간은 1시간이 조금 넘었습니다. '입장-퇴장 관리 시설'로 복귀한 취재진은 원전 부지에 들어갈 때와 정확하게 반대 절차로, 먼저 건물 안에 들어가 장화를 벗고 '그린 장비'를 '해체'한 뒤, 앞서 설명드린 WBC 검사를 받았습니다. (기자의 경우 취재 전 790에서 취재 후 980으로 증가)

다시 회의실로 이동한 취재진을 도쿄전력 취재지원팀의 담당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영상 1대, 사진 1대로 제한한 카메라에 담긴 영상과 사진을 '검열'한 뒤 비공개 시설과 장비가 찍힌 부분을 제거해야 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일반에 공개되는 취재 영상과 사진에 원전 부지와 시설의 방호, 경비에 우려가 될 만한 요소가 담겨있는지를 프레임별로 집중 체크하고, 해당 데이터를 발견하면 삭제를 요청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런 내용은 사전에 취재진에게 공지됐고, 이에 동의했기 때문에 취재가 허용되었으므로 일부 영상과 사진 삭제 요청에 응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만,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의 '신경증' 적인 대응의 일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취재진이 '출입 관리동'을 빠져나온 건 오후 5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이때도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원전 노동자들이 건물 안팎에서 바쁘게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몇 시간씩, 도저히 '자연 상태'라고는 볼 수 없는 방사선에 노출되면서 원전을 해체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에 무거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다시 돌아가는 버스가 원전 부지를 벗어나 6번 국도에 접어들고 나서도 국도변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마다 '귀환곤란구역'이라고 쓴 붉은 글씨와 바리케이트가 창밖에 계속해서 나타났습니다. 2011년의 대지진과 지진 해일은 인간의 힘으로 막지 못한 '자연 재해'라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후쿠시마를 이렇게 위험하게 만든 '가해 책임'은 대체 누가 짊어져야 할까요. 일본과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를 포함해 동북아시아의 주변국들은 이제는 상수가 되어버린 '후쿠시마 불안'을 과연 언제쯤 떨쳐버릴 수 있을까요.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