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부족한 약값' 230원…누가 그 환자들을 죽였나

김지용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들이 참여하는 팟캐스트 <뇌부자들> 진행 중

SBS 뉴스

작성 2019.09.19 11:00 수정 2019.09.19 11:3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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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원입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비쌌지만 매번 감사한 금액이다. 동네 소아과에서 진료비를 계산하다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2,700원. 나에겐 가슴 아픈 기억을 건드리는 금액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가 된 지 한 달이나 되었을까, 담당의와 환자로 그를 만났다. 심한 환청으로 힘들어하던 그는 가족들의 설득에 2주간만 입원하는 데 동의했다. 과거 조현병 진단으로 A 약을 복용하며 환청이 사라진 기록이 남아있었고, 퇴원 후 외래 치료 도중에 B로 변경된 처방을 받아오고 있었다.

"B가 잘 듣지 않아 재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A를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C 약으로 하지."

기록에는 남아있지 않은, 교수님만 기억하는 부작용이 있었나? 물론 새로운 약이 더 좋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겠지만, 이전에 효과적이었던 선택지를 포기한 이유를 당시엔 알지 못했다.

그는 참 착한 사람이었다. 한참 어린 내게도 존댓말을 쓰던 모습이 기억난다. 여러 명이 자신을 욕하는 환청을 참고 참다 아무도 없는 샤워실에서 제발 괴롭히지 말라고 소리 지르곤 했다. 심한 증상을 없애기에 2주란 시간은 너무 짧았고, 차도가 없는 그의 모습에 가족들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A를 처방해달라는 가족의 부탁에 내 의견을 더하여 교수님 방에 찾아가 말씀드린 일은 갓 전공의가 된 나로서 나름 용기 낸 행동이었으나, C의 효과를 더 기다려 보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간곡한 설득에도 예정일에 퇴원한 그는 더 이상 환청을 듣지 않을 수 있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했다. 그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때, 처음으로 환자를 잃은 그때의 나는 교수님과 병원을 엄청나게 원망했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던 걸까? A 약을 처방할 수 없던 이유는 이렇다. 불현듯 찾아온 조현병이란 지독한 놈은 그의 인생에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 경제적 능력을 빼앗긴 그는 자연스럽게 의료급여 환자가 되었다. 경제적 약자의 의료비 대부분을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이 제도는 단연코 필요하지만, 그들의 권리가 더 침해받는 순간들도 있다.

특히 정신질환 의료급여 환자의 경우 '정액수가제' 진료만 가능하도록 국가에서 정해 놓았다. 정액수가제라는 말은, 어떤 치료를 하든지 국가에서 병원에 지급하는 액수가 일정하다는 뜻이다. 당시 외래치료 정액수가는 하루 2,770원이었다. 하루 복용하는 약값의 총액이 500원인 환자나, 5,000원인 환자나 국가는 똑같이 그들을 대신하여 병원에 2,770원을 지불한다. 아, 약값만이 아니다. 상담비용, 만성질환관리료 등 모든 항목을 합친 금액이 2,770원이다.

그런데 왜 하필 그에게 효과 있던 것은 많고 많은 정신과 약들 중 가장 비싼 몸값의, 3,000원이 넘는 A였을까. 가격과 성능이 절대 비례하는 것이 아닌데, 왜 하필이면.

입원 환자의 경우 더 심한 차별을 받는다. 심지어 밥값까지 국가에서 일반 환자들의 60% 수준으로 책정해 놓았기에, 어떤 병원들에서는 차별된 밥과 옷을 제공한다고 한다. 2017년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입원수가에서 병원관리료와 식대 등을 제외하고 나면 의료급여 입원환자에게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하루 약제비는 450원 정도에 그쳤다.

그리하여 수십 년 전 개발된 약물들만 복용하며 더 낮은 치료 효과, 더 많은 부작용을 겪고 있는 환자들이 부지기수이다. 짜장면을 제공해도, 탕수육을 제공해도 일단 식당에 들어온 손님만큼 무조건 정해진 돈을 받는다면, 그 식당은 무엇을 내놓을까. 단무지만 주는 곳도 생길 것이다.

이런 돈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답한다. 돈 벌려고 의사가 되었냐, 병원이 적자 좀 감당해가며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면 되지 않냐고. 그때의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고, 그렇기에 병원을 원망했었다. 그러나 현실을 알게 된 후로는 더 이상 원망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2,770원을 받고 1만 원짜리 탕수육을 제공한다면 그 식당은 어떻게 될까. 내가 일하던 그곳은 의료급여 환자들을 차별하지 않았다. 진료를 거부하지 않았고, 같은 옷과 같은 밥을 주었으며, 그에게 처방했던 B, C 약물도 최근에 개발된 꽤 비싼 약이었다. 그랬던 그 병원은 결국 적자를 이겨내지 못하고 몇 년 전 문을 닫았다.

가끔씩은,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후회가 된다. 죽음까지 이어질 줄 예상치 못했다지만, 그 당시의 나에겐 더 적극적으로 취할 방법이 정말 없었을까. 선배들과 더 상의해봤어야 하는데, 나 자신에게 처방을 내고 몰래 그 약을 드리면 되지 않았을까. 이런 쓸데없는 상상들.

그리고 이런 상상들 뒤에는 분노가 따라온다. 왜 환자와 보호자, 의사 모두가 원하는 치료를 할 수 없는가. 왜 그로 인해 목숨까지 잃는 일이 생기는가. 그의 죽음은 대체 누구의 책임인가.

실력이 부족했던 나도, 고심 끝에 새로운 약을 선택했을 교수님도, 진작 병원에 데려오지 못했던 가족에게도, 애초에 현실적으로 치료 불가능한 기간인 2주 만에 퇴원을 선택했던 환자에게도, 모두 책임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책임은 불합리한 의료 환경을 만들고 방치하는 국가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2017년부터 외래 정액수가제는 폐지되었지만, 입원 치료에서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곳곳에서 여전히 누군가 차별받고 있다. 정신과뿐이랴. 지면상 일일이 적을 수 없는 더 크고 다양한 부조리들이 현재 의료시스템 안에 존재한다. 그 부조리들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죽음은 자살이나 질병에 의한 것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다.

물론 국가는 신경 쓸 곳이 많다. 당장 올해 건강보험 재정 적자가 4조 원이 넘어간다고 하니, 여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약자들을 도울 여력이 정말로 없는가?

계속되는 선심성 정책들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모든 이가 혜택을 받는 것은 참 좋아 보이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다수의 혜택 뒤에서는, 제 목소리를 낼 여력도 없는 소수의 약자들이 죽음의 경계선으로 먼저 밀려나고 있는 것이 숨겨진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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