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가 시작되기 10분 전에 현장에 도착해 하야시다 씨와 모토야마 씨, 그리고 두어 명의 지인들이 집회 준비를 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주변에는 그들이 미리 마련해 온 구호와 그림이 있는 종이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20명 안팎 정도였을까요. 노인부터 젊은이들까지 연령대도 다양하고 한 데 모이지 않고 살짝 흩어져 있어서 예전부터 서로 알던 사이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 사이를 하야시다 씨는 부지런히 오가며 선전물을 챙겨주고 인사를 나누고 하느라 분주했습니다. 모토야마 씨는 마이크와 스피커를 정리하고 테스트를 하는 데 열중했습니다.
트위터 프로필에 따르면, 하야시다 씨는 나가사키 출신의 피폭 3세입니다. '피폭자 국제서명' 운동의 캠페인 리더를 맡고 있습니다. 모토야마 씨는 오키나와 출신으로 지금은 히토츠바시 대학의 대학원생입니다. 미군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과 관련한 오키나와 현민투표에서 이전 반대를 이끈 경험이 있습니다.(현민투표에서 과반이 넘는 반대가 나왔지만 일본 정부는 그 결과를 애써 무시하고 있죠. 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지사가 당선되고,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도 반대파가 당선돼 오키나와 사람들의 반대 의견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드러났는데도 말입니다.)
핵 문제와 미군 주둔 문제, 일본의 과거 전쟁 책임과 연결되는 사회적 활동을 하는 두 사람이 더운 여름날 시부야 한복판에 모인 것은 '한일 연대 행동 0907' 집회 때문입니다. 이들에 따르면, 이날 집회는 나흘 전인 3일에 SNS로 개최가 결정됐습니다. 하야시다 씨가 제안하고, 모토야마 씨가 찬성하며 개최를 돕기로 했습니다. 평소 이들과 SNS상에서 친분이 있던 몇몇 활동가들이 찬성하며 개최 소식을 곳곳에 전파했습니다. (저도 이 활동가들 가운데 한 명으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들이 집회를 열기로 한 직접적인 계기는 주간지 [주간 포스트]의 최신호의 한국 관련 특집 '한국 따위는 필요없다'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일본 미디어들의 혐한 보도의 강도와 빈도가 모두 강해져 있던 상황. 일본의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예전처럼 눈치도 보지 않는 혐한 보도에 대한 분노를 느끼던 차에, [주간 포스트]의 특집 기사가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된 겁니다.
집회는 모토야마 씨가 사회를 보고, 중간중간 원하는 사람이 나와서 발언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모토야마 씨는 "오늘 집회는 정해진 순서도 없고, 정해진 발언자도 없다"며 "딱 1시간 동안 발언하고 해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발언을 원하는 사람은 주최자인 하야시다 씨-여전히 여기저기 분주히 오가며 참가자들을 챙기고 있었습니다-에게 미리 발언 의사를 표시하고 앞으로 나와서 마이크를 잡으면 된다고 말하고는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자기를 고등학생이라고 소개한 참가자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 처음에는 '일본이 그렇게 잘못한 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른 자료들도 찾아보면서 일본이 '해야 할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자기와 친구들은 한국의 음악이나 패션도 좋아하지만 '한국이 좋다'고 스스럼없이 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최근 이어지고 있다며, 일본이 지금이라도 역사와 진지하게 대면해야 근본적인 문제 해결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1시간을 예정한 집회가 거의 끝나갈 때, 마지막 순서로 주최자인 하야시다 씨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사실 하야시다 씨는 지난 2015년 안보법 개정 반대 투쟁의 선봉에 섰던 학생단체 실즈(SEALDs,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의 전 멤버입니다. 올해 27세로 이미 결혼해 아이도 있는 하야시다 씨는 이날 집회의 취지에 대해, 힘 있는 목소리로 열변을 토했습니다.
"혐한 보도들이 계속 나왔고, 저마다 다들 어이가 없을 정도였지만, [주간 포스트]의 보도는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건 말도 안 되는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를 여과 없이 담은 제목이 광고판에 그대로 적힌 채로 지하철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어를 아는 한국인들, 한국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들, 재일 한국인과 조선인들이 이걸 보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요. 그들은 무서움에 몸을 떨 것입니다. 틀림없이 공포스러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아이들은 어떻겠습니까! 아무리 정치적인 대립이 깊어지고 있다고 해도 이런 헤이트 스피치는 결코 용서해서는 안되고, 혐한 무드를 조성하는 방송도 결코 용서해서는 안됩니다. 일본인으로서 이건 안된다고 확실하게 말해야 합니다."
집회가 끝날 무렵에는 시작할 때에 비해 눈에 띄게 참가자들이 늘어 있었습니다. 백 명은 훌쩍 넘어 보였습니다. 집회 결의와 준비는 경험이 많은 '베테랑'들이 했지만, 참가자들은 대부분 집회 소식을 듣고 하나둘씩 모인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대열에는 같이 서지 않았지만 언론들의 포토라인 뒤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참가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박수를 보냈습니다. 중간중간 "맞아!" "그렇다!"고 하는 외침도 나왔습니다.
"一?に生きよう!" "우리 함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