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로힝야 난민 캠프에서 '조국'과 '종교'의 의미를 묻다

정우성|배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저자.

SBS 뉴스

작성 2019.09.07 11:00 수정 2019.09.10 11:4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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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여름 발생한 대규모 학살로 수십만 명의 로힝야족이 강제로 미얀마를 떠나야 했다. 60만 명이 넘는 이들이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인근의 쿠투팔롱으로 향했다. 당시 쿠투팔롱에는 이미 30만 명이 넘는 로힝야족이 난민촌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순식간에 끊임없이 이어진 판잣집으로 이루어진 인구 100만의 도시가 탄생했다.

2017년 12월, 쿠투팔롱 난민 캠프에 다녀왔다. 그해 여름 이미 이라크의 난민 캠프를 한 차례 다녀왔기 때문에, 추가로 해외 난민 캠프를 방문할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10월 한국을 방문한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 최고대표와의 만남에서 로힝야 난민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란디 최고대표는 자신이 만난 로힝야 난민 여성 대부분이 성폭행당하고, 아이들 대부분은 부모의 죽음을, 부모 대다수는 아이의 죽음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몇 가지 일정 조정이 이루어지자마자 방글라데시행 비행기에 올랐다.

쿠투팔롱 캠프에서 만난 임신 7개월의 코티샤는 미얀마 군인들이 집 밖으로 남편을 끌고 나가 총살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해야 했다. 코티샤는 왜 남편이 죽어야 했는지 알지 못했다. 온몸이 전율할 만한 그 얘기를 눈물도 말라버린 듯 담담하게 얘기하는 그녀의 모습이 더욱 가슴 아팠다.

조흐라는 50대 중반 여성이었다. 여타 로힝야 난민들과 다르지 않게 그녀도 남편의 죽음을 겪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고향에서 더 버텨 보려고 했다. 하지만 사위마저 죽임을 당하자 더는 버틸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딸들을 데리고 국경을 넘었다.
정우성 인잇용가족을 잃은 슬픈 사연이 켜켜이 쌓인 쿠투팔롱 캠프에서 나는 조국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전에 내가 네팔, 남수단, 레바논, 이라크에서 만난 난민들은 모두 결국에는 집으로, 고향으로,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로힝야 난민들은 달랐다.

그들은 눈앞에서 가족이 총살당하는 모습을, 갓 태어난 아기가 불타는 덤불에 던져지는 모습을 봤다. 자기가 고향이라고 여겨 온 땅에서 마을 주민 전체가 몰살되거나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을 보고 겪으면서, 이들은 무엇을 자신의 조국이라고 불러야 할지조차 잊은 것 같았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떠나라는 말에 맨발로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 이곳까지 온 이들에게는 더 이상 돌아갈 고향이 없었다.

이들이 이렇게 무자비한 탄압을 받게 된 배경에는 역사적, 정치적 이유와 함께 종교적 이유도 있었다. 불교도가 주류인 미얀마에서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이 차별과 탄압의 대상이 됐다는 데 전문가들은 이견이 없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을 달래고자 만들어졌을 종교가, 서로 사랑하고 생명을 죽이지 말라고 부르짖는 종교가 왜 이렇게 인간을 더한 고통으로 내모는지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다. 난민촌에 머물다 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종교가 과연 신의 요구에 부합하는 종교인가 하는 의심도 들곤 한다.

쿠투팔롱 난민촌은 산 하나를 통째로 밀어서 만든 곳이다. 끝없이 국경을 넘어오는 로힝야 난민들을 위해 방글라데시 정부가 내놓은 해법이었다. 방글라데시는 그동안 로힝야 난민을 적극적으로 내쫓지 않았다. 국경을 넘어 쏟아져 들어오는 수십만 명을 물리적으로 막기도 어려웠고, 로힝야 족이 방글라데시 사람들과 인종, 종교, 언어적 측면에서 유사한 점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관대함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방글라데시도 인구 밀도가 높고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100만 명은 굉장히 많은 수의 사람이다. 자원을 나눠야 하고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가 생기고, 사회경제적으로 야기될 수 있는 여러 이해충돌 등이 장기화한다면 지역 주민들의 지속적인 환대를 받는 데도 한계가 생길 거다. 방글라데시 정부의 고민과 우려도 이 지점에 놓여 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로힝야 난민촌을 2019년 5월 다시 찾았다. 악명 높았던 대규모 민간 학살이 벌어진 지 1년 반이 지난 시점이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이들의 고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이들의 이야기가 세상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점뿐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세상에 전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그들이 여전히 그곳에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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