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갑질' 찾아보기 힘든 덴마크, 왜?

에밀 라우센 | 한국인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15년째 한국서 살고 있는 덴마크 남자

SBS 뉴스

작성 2019.09.05 11:03 수정 2019.09.05 17:0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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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뉴스를 보면 '갑질'이란 말을 쉽게 듣는다. '직권 남용'이나 '특권 의식'이란 말도 비슷하게 많이 들을 수 있다. 예전에는 익숙해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일들이 차츰 한국 사회에서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갑질을 하지도, 직권을 남용하지도, 특권 의식을 드러내지도 않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나는 '덴마크 사회가 지향하는 리더십'은 어떤 모습인지 떠올려 본다. 덴마크인들이 생각하는 리더는 내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 주는 사람에 가깝다. 내가 편안하게 다가가 대화할 수 있는 상대이며, 나의 힘듦과 고민, 답답함을 나눌 수 있는 상대이다. 또 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주는 도우미이자 후원자 같은 존재이다.

● '강요'말고 '경청'하는 리더

내게 덴마크어를 배우던 학생 중에 현재 덴마크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워킹 홀리데이를 보내고 있는 친구가 있다. 그는 과거 한국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면서 2년간 덴마크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했는데, 현재 덴마크 생활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며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덴마크의 레스토랑은 무엇보다 큰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내는 상사들이 없어서 놀랐어요. 평등하고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마음 편히 일하다 보니 능률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올랐고 무엇보다 일하는 것이 기쁘고 즐거워졌어요. 남들에게 말하면 그게 무슨 대단한 변화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변화로 저는 너무 행복해졌어요."

나는 많이 듣고 공감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대의 신뢰를 얻어 동기 부여를 해주는 리더인가? 아니면 당장 눈앞의 목표 달성을 위해 내 뜻을 강요하고 공포를 이용해 나를 따르도록 이끄는 리더인가? 덴마크 사회는 '사람들이 나를 따르게 하려면 상대가 나를 편안하게 느끼고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게 먼저'라고 가르친다.

● 섬기고 봉사하는 리더

덴마크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국회의원들이 많다. 별다른 특권도 없고, 그렇다고 세비를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의원은 시민과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자리라는 인식이 있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경우는 더 하다. 큰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주민들은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들고 와서 하소연하니 상당히 골치 아프고 힘든 직업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려는 사람, 지역 사회를 위해 변화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하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세금으로 공짜 해외여행을 간다든지 다른 사람에게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며 갑질을 했다는 뉴스는 들은 적이 없다.

● '특권 의식'은 용납 안 돼

1933년 덴마크 출신 노르웨이 작가가 쓴 풍자소설에는 '얀테'라고 불리는 가상의 마을이 등장한다. 이곳에선 보통 사람보다 똑똑하거나 잘생기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정도로 '잘난 척'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과장된 방식이긴 하지만, 북유럽 사람들의 오래된 생활 규범을 반영하고 있다.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도 마라."

'보통 사람의 법칙'으로도 불리는 이 '얀테의 법칙'은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에서 널리 통용되는 생활 규범이다. 덴마크에서 특권 의식을 드러내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당신이 리더라면 더더욱 그렇다. 누군가 특권 의식을 드러낸다면 그건 주변 사람들의 경멸을 부르고, 정신의 빈곤함을 드러내는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리더십은 큰 회사나 정부기관의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삶 속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사실 두 사람만 모여도 좋은 리더십은 그 진가를 발휘하고 구성원은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덴마크 사회가 지향하는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주변 사람이 좋은 리더인지 나쁜 리더인지 평가해보자는 취지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스스로 점검하며 내가 어떤 리더인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되는가에 따라 일상에서 지옥을 경험할 수도 있고 천국을 경험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리더는 다른 인격체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중요성을 깨닫고 존중을 실천하는 것이 좋은 리더의 기본 자질이라는 점이다.

※ 이 원고는 인-잇 편집팀의 윤문을 거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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