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정신과 전문의가 본 '조국 논란' 현상

김지용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들이 참여하는 팟캐스트 <뇌부자들> 진행 중

SBS 뉴스

작성 2019.09.03 10:04 수정 2019.09.03 19:2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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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학병원에 있는 선후배들 사이 농담들은 이렇다. '넌 왜 2주 만에 논문 못 쓰냐.' '그러게요. 선생님께서 1저자 주시면 될 텐데 말이죠.'

의사들은 정치에 별 관심 없는 편이다. 정치뿐 아니다. 의대에 입학해 의사의 길을 가기로 결정하면 의학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당장의 나도 살고 나중의 남도 살린다. 집중 못 하거나 능력이 모자란 자에겐 유급이란 이름의 칼날이 떨어진다. 공부 외에만 관심 많던 나는 칼을 두 번 맞았다. 두 번째는 정말 피하고 싶었지만 가차 없었고, 꽤 아팠다. 의학을 가볍게 본 죄였다.

요즘의 뉴스들은 그때의 상처를 건드린다. 나보다 훨씬 바쁜, 눈앞의 생명들을 다루느라 다른 곳에 신경 쓸 정신적 에너지가 없는 대학병원 의사들에게도 이번 이슈는 도저히 피할 수 없나 보다. '의학 논문'이라는 키워드가 중심에 있으니.

의사들에게 논문이 가지는 의미란 거대하고 다양하다. 현대 의학이란 과거의 기록에 의존한, 제자에게만 전수되는 기술 같은 것이 아니다. 인체와 질병의 비밀을 풀기 위해 철저히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를 설계하고, 결과를 모두와 공유한다. 많은 부분 미완성인 의학이란 탑의 건설을 위해, 전 세계 의사들이 다 같이 삽질 한 번, 못질 한 번 하고 있다.

또한 실력의 잣대이자, 생존의 수단이다. 전문의가 되기 위해선 완성된 논문이, 교수가 되기 위해선 좋은 학회지에 실린 논문이 필요하다. 불철주야 수술하여 많은 생명을 구한 교수님도 논문 실적을 못 채우면 해고된다. 반 장난이지만, 세계 최고의 학술지에 논문을 등재한 동기에게 나와 친구들은 존댓말을 쓴다.

이런 '의학 논문'께서 일부 사람들에게 폄하 받는 요즈음의 상황. 그런데 이 사태의 시작점이 된 법무부장관 후보자 또한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두 상황을 유발한 심리는 하나이다. '이상화와 평가절하'

이상화와 평가절하는 정신과 의사들이 늘 경계하는 심리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던 분이 어느 날 갑자기 '선생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군요! 실망했어요!'라며 맹비난을 퍼붓는다. 가끔은 참담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봐도 잘못한 게 없는데. 그런데 평가절하에는 항상 이상화 과정이 선행된다. 날 비난하는 사람은 지난 시간까지 '이전의 의사들과 다르게 너무 뛰어나시다'라며 부담스러운 감사 표시를 하던, 바로 그 사람이다.

이상화는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가지는 흔한 심리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해주는 부모에게 의존하며, 완벽한 존재로 믿는다. 부족한 자신으로 인한 불안감을, 완벽한 존재와 같이 있음으로써 덮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들을 쉽게 이상화한다면, 그 사람의 결핍을 의미한다. 결핍이 그려낸 이상만큼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매번 실망하게 된다. 컸던 기대만큼의 격렬한 실망과 분노가 평가절하이다.

후보자에 대한 현상은 명백한 '이상화와 평가절하'이다. 모든 커뮤니티의 대화 주제를 차지해버린, 이 격렬한 반응은 평가절하이다. 이를 통해 이상화가 선행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은 우리 사회의 결핍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의 결핍. 우리 사회는 정의 결핍인가 보다. 국민들은 지난 선거에서 정의라는 가치를 앞세운 쪽을 선택했다. 애정 결핍인 사람이 애정을 갈구하듯, 정의 결핍 사회의 선택이었다.

야당 정치인들의 자녀에게도 후보자의 딸과 비슷한 부정과 특혜가 있었다는 소식들도 들린다. 다 똑같다. 내로남불이 내로남불에게 내로남불하고 있는, 정의란 찾아보기 힘든 정치판에 대한 환멸이 이상적이게 정의로운 누군가를 그리게 했었다. 다른 정치인들의 비슷한 잘못은 이슈화되지 못하고 있다. 당장은 다행이라 느끼실지 몰라도 정말 다행인 일은 아니다. 그들의 정의로움에 대해선 국민들이 기대하지 않았다는 뜻이니.

보통 결핍의 주체가 가만히 있는 상대방을 혼자 이상화하다 혼자 평가절하하며 비난한다. 그래서 비난의 대상은 당황스럽고 억울하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억울해하면 안 된다. 자신을 이상화시켰던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말과 글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비난 여론 속에는 정치적 반대파들만 아니라, 그 말과 글들로 인해 순수한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의 평가절하는 자신이 만든 이상화에 세금처럼 따라오는 것이다. 적법, 탈법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 세금은 적법하게 피해갈 수 있을지 몰라도, 감정의 영역에서는 불가능하다.

의학 논문, 그리고 이 사태에 전문가로서의 목소리를 내는 연구자들에 대한 공격 여론 역시 '이상화와 평가절하'에 의한 것이다. 이상화 대상의 이상적이지 않은 모습을 알게 되었을 때, 혼란스러운 마음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방식의 평가절하가 나타난다. 이상화 대상이 아닌, 그 대상을 공격하는 증거들을 폄하한다. '어느 고등학생이나 쓸 수 있는 에세이'라는 참신한 말은 이런 심리로 등장한다. 이번 글로 인해 나 또한 평가절하 당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라는 말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혹은 진료실에서도 듣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진짜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잠을 줄이며 논문을 쓰는 연구자들, 살고 살리기 위해 공부 중인 의대 학생들, 장학금을 타는 데 성공하거나 실패했던 모든 학생들. 그들의 노력이, 그 노력의 시간들이 평가절하 되었으니까. 자신들의 이상화를 지키기 위한 부조리한 발언들이 누군가에겐 폭력이 된다는 사실, 깨달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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