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도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만들어낸 증오

김창규│입사 20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직장인 일기를 연재 중

SBS 뉴스

작성 2019.08.30 11:02 수정 2019.08.30 17:1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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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꼰대' 11편 : '도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만들어낸 증오

팀장은 다른 팀장들과 '사이좋게'는 아니더라도 '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회사 일은 서로 얽히고설켜 있어서 언제 어느 때 상대방에게 협조와 양해를 구해야 할 일이 생길지 몰라서다.

그런데 그게 늘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자주 신경전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뭣 때문에? '이것은 누구 업무냐?' 때문에 말이다. 특히나 그 업무가 고생만 하고 티가 나지 않는 일, 잘못하면 몽땅 책임을 뒤집어써야 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평가 관련 지점 출장'도 이런 케이스이다. 잘 되면 기획팀의 공(功)이고 잘못되면 출장자의 과(過)로 몰 텐데, 굳이 자기 일도 바쁜 와중에 누가 그 일을 더 맡으려고 하겠는가? 게다가 난 과거 날 쫓아낸 기획팀장에게 서운한 감정과 피해 의식까지 있었으니 더 반발할 수밖에.

어쨌든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이 건 관련 우리 팀과 기획팀의 실무자는 난감한 입장에 처했다. 각자 자신의 팀장에게 "그거 하나 협의 못하냐", "협의를 이렇게 하면 어떡하냐" 같은 구박을 당했으니 말이다. 주변의 눈들은 나와 기획팀장이 자존심 대결을 또 벌이고 있다는 소문을 삽시간에 사내에 퍼뜨렸다.

이 신경전으로 골치가 아파 흡연실을 찾은 날, 기획팀장과 동기인 한 팀장을 우연히 만났다. 그런데 뭔가 결심한 것이 있는 듯 한 팀장이 나한테 말을 걸었다.

"머리 아픈 일 있는 것 같은데…. 기획팀장 너무 적대시하지 마요. 그 친구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야."
"예? 무슨 말씀이신지?"

"1년 좀 넘었나? 그 친구가 기획팀으로 온 것이. 어쨌든 그때 당신이 기획팀의 2인자였잖아. 그것도 사업부문장의 신임이 두터운 2인자."
"네? 왜 그러세요. 아닙니다."

"당신은 아직 잘 모를 거야. 우리처럼 나이를 먹게 되면 윗사람의 말 한마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을 하게 되지. 워낙 치고 올라오는 후배님들이 많잖아. 그런데 신임 팀장이 회의시간에 사업부문장에게 일 못한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그 팀의 팀원과 비교를 당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

"혼난 사람이 지금의 기획팀장이고 그때 일 잘한다며 비교됐던 팀원은 바로 당신이었어. 그러니 자존심도 센 기획팀장 입장에선 당신이 가시 같은 존재였겠지. 자칫하면 밀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있었을 테고."
"…"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자칫하면 또 서로 극단적으로 갈까 봐 걱정돼서 말하는 거야. 나중에라도 그 친구한테는 내가 한 말 절대 하지 말아요."

그리고 심란한 표정으로 그분은 흡연실을 나갔다. 나도 알았다. 당시 기획팀장이 날 경계했던 것을. 하지만 나는 당시 그가 날 경계했던 것 자체가 황당했다. 내가 대놓고 자기 자리를 탐낸 것도 아니고, 반항을 했던 것도 아닌데…. 나를 적대시할 필요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껄끄러울 수는 있겠다 싶었다. 아까 그 팀장이 말한 대로, (누가 들으면 재수 없겠지만) 난 사업부문장의 총애를 받는 기획팀의 2인자였고 주장이 강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팀장이 되어서 날 품어야지 수작을 부려 내치려고 하면 되겠는가. 아무튼 나는 여태껏 그가 본래 성격도 꼰대스러웠지만 아예 날 몰아낼 작정을 한 채 함정으로 민 것이고, 나는 그 의도를 모른 채 대들었다가 쫓겨난 것이라고 믿어왔다. 이 믿음이 틀렸다고는 그때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사업부문장이 공식석장에서 나와 그를 비교하면서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니. 나는 그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기획팀장 입장에서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 나를 무시하고 억압했던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의 합당한 의견 개진에도 '이게 나를 무시하고 깔보나?'하는 불쾌함과 두려움에 휩싸여 자신도 모르게 가혹하게 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에이, 모르겠다. 다 지난 일인데,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람. 어쨌든 기획팀장은 넉넉하지 못한 사람이야.'라고 혼잣말을 하며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마침 기획팀 차 차장이 우리 팀 김 대리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출장 건 관련 협의였다. 난 그 모습을 애써 무시하고 내 자리에 앉아 일을 하는 척했다.

하지만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왜 내가 차 차장을 싫어할까?'라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왜 그에게 특히 더 꼰대처럼 굴까? 기획팀장 심복이라서?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닌 것 같다. 나도 오래된 원한 때문에 애먼 사람에게까지 업무에 있어서 심하게 비협조적으로 굴, 그런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지? 뭐 때문에 내가 차 차장을 힘들게 할까?

차 차장은 일을 참 잘했다. 그리고 최근 외부와 업무제휴를 하면서 혁혁한 공도 세웠다고 한다. 그 덕에 내년에는 특별 진급을 해서 본사 어느 팀의 팀장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도 공공연히 떠돌았다.

유레카. 무한 경쟁을 하는 살벌한 회사에서 아랫사람 혹은 동료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의 능력이 달리고 성과가 보잘것없어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이 불안감이 조금의 양보도 아량도 허용치 않는 꼰대짓으로 표출된 게 아니었을까.

순간 기획팀장이 떠올랐다. '누가 누구를 꼰대라 하나? 나야말로 내로남불이군.' 얼굴이 붉어졌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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