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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베 신사 참배 때처럼 '실망'했다는 미국

[취재파일] 아베 신사 참배 때처럼 '실망'했다는 미국
"강한 우려와 실망을 표명한다." 미국이 린치핀(linchpin·핵심축)이라는 한국에 단단히 맘이 상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지난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이하 지소미아) 종료를 발표한 이후입니다.

종료 발표 직후 폼페이오 국무, 에스퍼 국방장관이 각각 강경화 외교, 정경두 국방장관과 통화하면서 실망스럽다는 뜻을 전달했습니다. 부처가 내놓은 공식 논평에서는 수위가 더 올라갔습니다. 국방부는 수정 논평까지 내가면서 '강한 우려와 실망(strong concern and disappointment)'을 표명한다고 했고, 국무부도 "동맹의 안보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문재인 정부의 심각한 오해를 나타낸다"고 적시했습니다. 공개적이고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겁니다.

외교 용어 가운데 상대국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는 말로는 유감(regret)▶우려(concern)▶실망(disappoint)▶규탄(condemn) 등이 있는데, 미국이 사용한 '실망'은 꽤 높은 수위입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들은 국제회의, 다자회의에서 인권침해 상황이나 내전 상황을 비난할 때 주로 쓰입니다. 양자 관계에서는 불만이 있다고 해도 '유감' 표명 정도입니다. 더군다나 동맹 사이에서 우려와 실망이라는 표현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베 신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미국이 언제 동맹국에 실망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찾아봤더니 2013년 아베 일본 총리가 신사를 참배했을 때였습니다. 당시 미국은 아베의 신사 참배에 한국과 중국이 강력 반발하자 "주변국과의 긴장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실망스럽다(the United States is disappointed that Japan's leadership has taken an action that will exacerbate tensions with Japan's neighbors)"고 밝혔습니다. 당연히 신사 참배와 지소미아 종료를 동일 선상에 놓을 수는 없지만, 미국이 이번 한국의 결정에 얼마나 격하게 반응한 건지 짐작할 수 있는 사례입니다.

미국이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 우선은 미국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거겠죠. 미국은 중국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수정주의자로 보고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촘촘히 견제의 틀을 짜고 있습니다. 미중 간 무역분쟁이 풀릴 듯 풀리지 않는 배경에 이런 안보 전략적 고려도 있다는 게 정설입니다. 이런 중국 견제의 핵심이 바로 한미일 동맹인데, 미국 입장에선 우리가 그 틀 가운데 하나인 지소미아를 종료하겠다고 하니 대놓고 불만을 터뜨리는 겁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런데 불만의 이면에는 우리 정부와의 소통 문제도 있다는 게 미국의 시각입니다. 강한 우려와 불만이라는 표현을 처음 내놓은 곳이 미 국방부였는데, 그쪽에서는 에스퍼 국방장관 방한 때 이야기를 합니다. 에스퍼 장관이 지난 9일 청와대를 찾아 지소미아를 유지했음 좋겠다는 뜻을 전했더니 청와대도 알겠다는 취지로 답했다는 겁니다. 우리 국방부도 지소미아 연장 의견을 피력했다고 하고요. 그런데 우리 정부가 22일 전격적으로 종료 결정을 하니 에스퍼 장관이 상당히 당혹스러워했다는 게 미 정부 소식통의 전언입니다.

에스퍼 장관 앞뒤로 한국을 찾은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도 마찬가지로 지소미아 연장을 희망했고, 우리 정부로부터 부정적 의견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미국 입장에선 이렇게 백악관과 국무, 국방부 세 갈래로 충분히 이야기를 했는데도 결과가 정반대로 나오니 우려되고 실망스럽다는 겁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게 청와대 관계자의 "미국도 이해했다"는 발언입니다. 청와대는 종료 결정 발표 직후 백브리핑을 하면서 "미국에 지소미아 종료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역설했고 따라서 미국도 이번 우리 정부의 결정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 정부 소식통은 "미국이 이해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청와대의 설명에 불만족스럽다는 뜻을 워싱턴과 서울 양쪽의 외교 채널로 전달했다고 합니다. 청와대는 다음날 관련 질문이 쏟아지자 "미측이 지소미아 연장을 희망해왔던 것은 사실"이라며 "희망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미국이 실망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고 에둘러 진화했습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이해했다는 건 한국이 종료 결정까지 검토하게 된 처지를 이해한다는 거지, 종료 결정 자체를 이해한다는 건 아니"라고 풀이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주권국으로서 우리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도 못 하느냐, 미국 눈치만 봐야 하느냐'라는 지적이 나올 법합니다. 대한민국 주변 4강이라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가운데 우리에게 도움을 줘왔고 앞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국은 사드 사태에서 보듯 자신의 이익이 걸리면 즉각 물리적 보복을 하는 나라이고, 러시아도 최근 독도 영공 침범 사건에서 보듯 호시탐탐 세력을 확장하려 합니다. 일본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상대이니 패스하겠습니다. 북한도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하면서 남한을 맡겨놓은 지갑 정도로 여기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트럼프 시대 미국이 이전 행정부보다 무리한 요구를 해오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 중국 일본 러시아와 비교할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미 간에 보다 솔직하고 긴밀한 의사소통을 통해 불협화음 없이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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