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두 딸 엄마의 고민, '디즈니 보여줄까 말까?'

김지미 | 영화평론가

SBS 뉴스

작성 2019.08.17 11:00 수정 2019.08.17 16:0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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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인-잇] 두 딸 엄마의 고민, 디즈니 보여줄까 말까?
얼마 전 디즈니의 <인어공주> 실사판 캐스팅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덴마크 동화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를 캐스팅한 것이 적절치 못하다는 이유였다. 많은 이들이 원작을 존중해서 창백한 피부의 북구 미인을 캐스팅해야 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인어' 자체가 상상의 종족이건만 원작에 대한 충실성을 근거로 캐스팅의 인종적 오류를 문제 삼다니 흥미로웠다. 논란이 잦아들지 않자 디즈니 산하 채널인 '프리폼'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덴마크인이 흑인일 수 있기 때문에, 덴마크 인어들도 흑인일 수 있다. 애리얼은 언제나 지상으로 올라와 구릿빛 피부를 더 진하게 할 수도 있다"는 답변을 남겼다.

디즈니는 근간 부지런히 자사의 애니메이션 작품을 실사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대의 흐름에 맞춰 크고 작은 변화를 주었다. <미녀와 야수>에서는 벨에 지적이고 소신 있는 행보로 잘 알려진 엠마 왓슨을 캐스팅해 지적인 독서광 이미지를 더 새겨 넣었다.

<알라딘>에서는 만화영화에서 듀엣곡 외에 노래가 없었던 자스민 공주에게 'Speechless'라는 솔로곡을 줘 자기만의 목소리를 부여했다. 지니 역에 윌 스미스를 캐스팅함으로써 인종균형도 신경을 썼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실사화는 시나리오 개발 비용 절감이나 투자 위험 감소 등 경제적인 효용을 위한 선택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사 애니메이션을 새로운 고전으로 등극시키는 역할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어공주 캐스팅에서 많은 네티즌들이 기준으로 삼은 빨강 머리의 백인 인어공주 캐릭터는 1989년 디즈니가 고안해 낸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무게와 대중적 성공을 기반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어린이 동화의 새로운 고전이 되었다.

사실 디즈니가 구현하는 공주님 서사에 빨강 머리나 흑인 기용은 부차적인 문제다. 두 딸을 둔 엄마 입장에서 디즈니는 '양날의 칼' 같은 존재다.

디즈니 영화는 일단 폭력성과 선정성 문제에 있어 신뢰할 만하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흔치 않게 대체로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도 선호된다. 하지만 그 안전함이 고리타분한 왕정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수많은 여성들이 신데렐라의 변형된 버전이라는 점은 늘 마음에 걸린다.

<신데렐라>나 <백설공주>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왕자랑 결혼하기 위해 자기 목소리를 포기하는 인어공주나 분노 조절 장애가 있어 보이는 야수와 사랑에 빠진 벨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자스민 공주가 알라딘 없이 무엇을 이룰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심바보다 더 강한 신체적 능력과 판단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심바의 귀환을 기다려야만 했던 <라이언 킹>의 암사자들을 보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디즈니 영화를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다. 디즈니 작품이나 캐릭터에 관한 지식은 이미 상식이 되어서 이를 모르고서는 소통이 아예 불가능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때 유행했던 <겨울왕국>은 보지 않으면 수업이 안 된다며 선생님들까지 가서 보고 와야 할 지경이었다.

디즈니 공주에 대한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슈렉>이나 <주먹왕 랄프>의 패러디를 보고 있자면 이 딜레마는 더 복잡해진다. 디즈니 캐릭터를 모르는 아이들은 망가지는 공주의 모습이나 스테레오 타입을 비웃는 여러 가지 패러디를 전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디즈니가 제공하는 고리타분한 환상을 거부하기 위해서라도 봐 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새로운 디즈니 영화를 볼 때마다 우리 아이들의 꿈은 각양각색의 공주님이 되었다. 그리고 눈을 반짝이며 어떻게 하면 공주가 될 수 있는지 내게 물었다. 공주는 될 수 없다고, 공주는 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태어나는 거라고 일러줬을 때 실망하던 아이들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다행히 두 딸은 더 이상 공주를 꿈꾸지 않을 만큼 자랐다. <라이언 킹>에서 자신들이 대대로 초원을 통치한다는 심바 부자의 대화에 "다른 동물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반문하게 됐고, 초식동물들과 평화공존하기 위해 벌레 먹는 사자가 된다는 설정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이번 디즈니 영화를 아이들에게 보여줘도 괜찮을까?', '아이들이 영화 속 모순에 대해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같은 고민은 조금씩 덜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인어 공주>를 둘러싼 논란은 지금 할리우드가 당면한 이슈가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화이트워싱(백인 위주의 캐스팅) 같은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에 개념적으로는 반대하면서도 익숙한 고전을 변형하는 일을 '훼손'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하지만 고리타분한 디즈니마저 변하고 있다. 영화가 완성된 이후에야 원작으로부터 얼마나 발전적으로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겠지만, 예전에는 당연시되던 기준과 가치에 의문이 제기되고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는 점만큼은 확실히 반가운 일이다.

(사진=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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