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간절하면 못 해낼 게 없다" 충고에 담긴 폭력성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SBS 뉴스

작성 2019.07.20 10:5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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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 음악전문 채널에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최종회가 방영되었습니다. 생방송 문자투표를 통해 11명의 연습생이 데뷔 조로 결정되었지요. 팬들은 나의 '픽'을 데뷔시키기 위해 자신은 물론 주변인의 휴대전화까지 총동원할 만큼 긴박한 밤이었습니다.

저도 오디션 프로그램 애청자로서, 방송을 볼 때마다 꼬박꼬박 문자 투표를 합니다. 아주 가끔은 지인들에게 영업(?)도 하고요. 그런데 징크스가 하나 있는데요, 제가 응원하고 투표하는 친구들은 항상 최종회에서 고배를 마십니다. 어제도 그랬지요.

제가 응원하는 지원자들은 대체로 묵묵하게 한 사람 몫을 하는 성향의 친구들입니다. 이런 친구들은 방송에서는 '임팩트'가 약해 선발될 확률이 매번 낮습니다. 그런데도 한 표를 보내는 것은 과거 저를 스쳐 간 몇몇 얼굴들이 떠올라서였지요.

지난 7년간 상담소에 아이돌 연습생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성인 상담을 제공하는 우리에게 굳이 청소년들이 찾아올 땐, 대부분 상담이 무료라는 이유였지만 연습생들에겐 비밀이 보장되는 사이버 공간이라는 점도 컸던 모양입니다. 상담을 받는다는 게 소문이 나면 부담일 테니까요. 알음알음 정보가 공유되었는지 한동안 꾸준히 그 분야 아이들이 찾아와 글을 남기곤 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음이 짠해지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또래 아이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몇 가지 있다는 점인데요. 바로 '간절'과 '절박'입니다. 특히 스무 살을 넘긴 연습생들은 '늦었다'라는 말까지 반드시 들어갔습니다. 너무 절박하고, 간절한데 평균 데뷔 연령에 비해 나이가 너무 많아져 버렸다는 겁니다.

실제로 해당 연습생들이 남긴 글을 보면 본인들보다 10살쯤 많은 28~32세 사회진입 초기 청년들의 호소와 거의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글이 조금 더 어두운 편입니다. 내가 데뷔하지 못한 원인은 '간절함 부족'이라고 자기 자신을 책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연습생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간절'입니다. 사실 간절이 부정적인 단어는 아닙니다.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딱히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들이 이렇게까지 자주 '간절'을 말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는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모델, 아이돌, 셰프 등등 그야말로 오디션 프로그램의 붐이 있었지요. 그 프로그램들을 보면 심사위원들이 호되게 혼을 낼 때 자주 쓰는 말이 있습니다. "간절함이 없다"라는 것이지요. 실력이 다소 부족하든, 상처를 입어 연습 시간이 부족했든, 주눅이 들어 있든, 결론은 '간절함 부족'으로 치환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똑같은 곡을 주고 이틀의 연습 시간을 주었을 때, 연습생 1년이 채 안 된 친구가 5년 차 친구보다 춤을 월등히 잘 추긴 어렵습니다. 그땐 '경험 부족'이 가장 큰 요인일 겁니다. 이런 모든 상황이 '간절함 부족'으로 치환되어 버리면, 결국 간절했다면 다 극복할 수 있었다는 말이 되어버리지요.

개인의 경험 값, 상황, 환경이 모두 무시된 채 '간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간절 만능설'은 오디션 현장에서만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일부 자기계발서나 멘토와의 만남 자리에서도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라는 호소에 "정말, 그대로 했어요? 단 하루도, 한순간도 빠짐없이? 정말 그렇게 했어요? 내 눈을 보고 말해보세요."라고 다그치던 청년 멘토도 있었습니다. 결국 질문자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다시 자리에 앉았지요.

'간절'하면 못 해낼 것이 없다는 말, 괜찮은 걸까요? 101명 중에 11명을 반드시 뽑아야 하는 오디션에서, 100명 중에서 1명을 뽑아 입사시켜야 하는 채용 현장에서 정말 모두가 '간절'하면 다 되는 걸까요? 분명 그럴 리 없음에도 '너의 간절함 부족'으로, 경쟁 사회의 낙오를 개인의 잘못으로 돌려버리는 것은 우아한 폭력 아닐까요?

저는 그래서 매번 문자 투표를 보냈던 것인지 모릅니다. 결과가 어느 정도 그려진 레이스임에도 말이지요. 끝내 최종회에서 웃지 못한 이에게, 그래도 지지하는 존재가 있음을 알리기 위한 손짓이었던 것 같습니다.

샵 버튼 하나에 많은 말들을 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생은 TV쇼와는 조금 다를 거라고, 120분짜리 편집본도 아닐뿐더러 삶의 최종화는 모두 다른 때 올 거라고, 그러니 당신의 '간절'이 오늘 당장 선택받지 못해도 자책하지 말라고요. 당신도 우리도 각자의 삶 어느 순간에 보답받게 될 거라고요.

모든 씨앗이 같은 날 같은 토양에 심어져도 개화의 시기는 모두 다르듯, 각자가 품은 간절함의 씨앗도 제각각의 순간에 꽃피워냅니다. 옆의 꽃은 피었는데 너는 오늘 피워내지 못했다고, 태양빛과 빗물까지 거두어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여러분 주변에도 간절히 원하던 것을 잡지 못한 누군가가 있다면, 자신의 간절함이 부족한 탓이었다고 자책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책망보다는 눈빛과 마음으로 은근하게 그러나 꾸준히 지지해주시면 어떨까요. 응원의 눈빛은 태양빛이 되어, 함께 흘려주는 눈물은 빗물이 되어 그의 씨앗을 그에게 맞는 어느 날에 피게 할 가장 큰 동력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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