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의원님의 '감투싸움'…대체 상임위원장이 뭐길래

남정민 기자 jmnam@sbs.co.kr

작성 2019.07.11 09:02 수정 2019.07.11 10:39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의원님의 감투싸움…대체 상임위원장이 뭐길래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로 자유한국당이 시끌시끌합니다. 대여 투쟁을 벌이다가 국회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번엔 '집안싸움'입니다. 예결위원장 자리를 두고 잡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국토교통위원장 자리를 놓고도 박순자 의원과 홍문표 의원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한국당은 지난해 7월 의총에서 "박순자, 홍문표 의원이 각각 1년씩 국토교통위 상임위원장을 맡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현 위원장인 박순자 의원이 자리 내놓기를 거부하면서 '나가라', '못 나간다' 다투고 있는 겁니다. 박 의원은 "1년씩 자리 나누기에 합의한 바 없다"면서 동료 의원들에게 이미 두 차례나 '입장문'을 배포했고요, 홍문표 의원 역시 "박 의원의 몽니는 과욕을 넘어 당을 욕보이고 있다"며 작심 비난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지도부의 위원장 교체 요구가 이어지자, 박 의원은 끝내 병원에 입원하는 강수까지 두었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와 정양석 수석이 병원까지 박 의원을 찾아가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별 성과는 없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당에선 박 의원의 무작정 버티기가 '해당 행위'라면서 윤리위 징계 얘기까지 거론하고 있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어제(10일) "실질적으로 당에 유해한 행위라서, 당헌당규에 따라 윤리위 징계 절차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 '약속 지켜라' vs '약속 안 했다' 진실 게임?

박순자 의원 측은 초지일관 "상임위원장 나누기로 약속한 바 없다"고 말합니다. 1년 전 김성태 원내대표 시절에 의총에서 일방적으로 1년씩 나눈다고 발표한 것이지, 박 의원 본인은 동의한 바 없다는 겁니다. 또, 당시 위원장 배분 회의를 하면서 배포했던 3선 의원 명단을 증거로 들면서, 위원장 경험 없는 사람 가운데서 위원장을 정하기로 했다는 원칙을 내세웠습니다. 즉, 이전에 홍문표 의원이 예결특위 위원장을 맡은 바 있는 만큼 또 위원장 직을 준다는 것은 명백한 특혜라면서 2년 임기를 다 채우겠다는 것입니다.

홍문표 의원 측에선, 한 마디로 "사실을 아는 분이 오리발 내민다"며 비난하고 있습니다. 박 의원이 증거로 제시한 '3선 의원 명단'은 말 그대로 회의 자료일 뿐이지, 위원장을 할 수 있고 없고를 판단할 근거 자료는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 작년 7월 17일 의총을 열기 직전에 박순자, 홍문표 두 사람이 만나서 1년씩 나눠 맡기로 이야기를 이미 끝냈는데, 이제 와서 합의 자체를 부인하며 사사로운 욕심에 억지를 쓰고 있다는 거죠.
자유한국당 홍문표 의원'나가라', '못 나간다'… 양측의 힘겨루기와 진실 게임이 계속되면서 동료 의원들도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처리해야 할 민생 법안이 산더미인데, 국민의 눈에 이런 '감투 싸움'이 어떻게 비칠까, 한가롭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입니다. 한 재선 의원은 당 지도부에 "우리 당을 아주 우습게 만들었다"면서, "그냥 둘 다 빼고 제3의 인물로 위원장 하면 안 되냐"고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그럼, 대체 '상임위원장'이 어떤 자리이길래 동료 간 비난도 불사하고 극도의 신경전을 벌이는 걸까요. 국회에 입성한 의원들은 기재위와 교육위, 국방위 등 각자 전문 분야를 정해 활동하게 되는데, 상임위 배분은 말하자면 일종의 부서 배치를 받는 것과 비슷합니다. 본회의로 넘어가기 전에, 소관 기관들의 안건과 청원을 심사하고, 법안 발의와 심사도 상임위에서 담당하는데, 국회의원들 의정활동의 대부분이 여기에서 이뤄지는 셈입니다.

상임위원장은 주로 3선 의원이 맡곤 합니다. 위원장이 되면, 의원회관 사무실과 별도로 널찍한 위원장 사무실이 본청에 마련되는 특권도 있지만, 무엇보다 상임위 회의가 위원장의 판단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점이 큰 권한입니다. 회의를 열거나(개의), 잠시 쉬거나 (정회), 중단하고 해산할 수 있습니다(산회).  회의 안건을 정하는 것, 또 의원들의 발언권을 누구에게, 얼마나 주느냐를 정하는 것 또한 위원장 마음에 달렸습니다. 각 상임위에 딸려 있는 피감기관들이 유독 상임위원장에게 공을 들이는 이유도 이런 위원장의 막강한 '권한' 때문이죠. 주요 안건과 의제에 대해서 여야 이견이 있을 경우엔 위원장이 관여해 결국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는데, 여기에 소속 정당의 입장이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에선 17개 상임위원장과 상설 특위인 예결위원장을 놓고 원내 의석 비율을 따져 위원장 수를 정합니다. 매번 국회 개원 시기에 여야 원 구성 협상이 벌어질 때마다 서로 '알짜 상임위'를 많이 가져오려고 소리 없는 전쟁, 눈치 싸움, 수 싸움이 벌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상임위를 반드시 차지해야 유리한지, 뭘 주고 뭘 받을지를 계산하느라 각 당이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시기입니다. 힘깨나 쓸 수 있는 상임위원장을 자당 소속 의원이 차지해야 국회에서의 '영향력'이 더욱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의사봉 두드리는 박순자 위원장현재 박순자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토교통위원회는 최고의 '알짜 상임위' 중 하나로 꼽힙니다. 국토교통부나 주택공사 등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국토위에 몸담고 있으면 도로나 철도 등, 지역의 SOC 관련 사업을 추진하기 쉬울 뿐 아니라, 관련 예산을 따 내기에도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역 개발 사업을 중점 추진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는 만큼, '국토위 출신은 재선에 유리하다'는 말이 돌 정도로 최고의 인기 상임위입니다. 가장 많은 의원들이 국토위 입성을 희망하며 줄을 섭니다. 하물며 국토위원장이라면 지역 사업과 예산에 발휘할 수 있는 힘이 더 클 것입니다. 지역구 의원들에게 지역 사업 예산을 얼마나 따 내느냐 하는 건, 곧 본인의 성적표와도 같은데, 총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더더욱 '위원장' 감투가 빛날 수밖에 없는 시점이지요. 한국당 안팎에서는 박순자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 사업인 '신안산선 착공식'에 국토위원장 타이틀을 갖고 참여하기 위해, 위원장 자리를 내놓지 않으려고 버티기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한국당이 꺼낸 '윤리위 회부' 카드는, 과연 먹힐까요? 예측컨대, 당장 현실적으로 드라마틱하게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습니다. 윤리위에서 당원권 정지, 또는 최고 수위인 제명 조치가 나온다 하더라도, 상임위원장은 당직이 아닌 국회직이어서 억지로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그야말로 본인 스스로 마음 바꿔 내려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릴 수밖에요. 윤리위 징계받게 되면, 총선 공천 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텐데, 그렇다고 위원장 사임을 결심하는 데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입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박 의원이 사실상 지역구(안산 단원을)에 경쟁자가 없다고 봐도 과언 아니다. 본인도 그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강수를 두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바닥(정치판)에 오래 몸담다 보면, '창피함은 순간이고, 실속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습득하게 된다"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바꿔 말하면, 상임위원장이란 자리가, 순간의 창피함과 민망함을 무릅쓰더라도 절대 놓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자리란 이야기겠죠.

● 편법의 끝…원칙으로 돌아가야

국회법상 상임위원장의 임기는 2년입니다.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는 상설 특위인 예결특위를 포함해 고작 18자리인데, 국회 전반 2년, 후반 2년으로 나눠도 모두 36자리에 불과합니다. (예결특위는 임기 1년짜리) 의원 전체 수에 비하면 10% 조금 넘는 수준이고, 보통 위원장 맡는 선수인 3선 의원들 기준으로 봐도 자리보다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이렇다 보니, 여야를 막론하고 최근에는 1년씩 쪼개서 위원장을 맡는 것이 거의 관행처럼 이뤄져 왔습니다. '쪼개기 신공(?)'이라고 해야 하나요. 어찌 보면,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낼 묘안 아니냐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위원장 자리 사이좋게 나눈다는 명분으로 1년씩, 또는 몇 개월씩 위원장이 바뀌다 보면 상임위 운영이 일관되게 이뤄지기는 힘들 겁니다. 정말 '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해서는 안 되는 편법인 것이죠. 또한 이번 경우에서 보듯, '편법 쪼개기'로 위원장 직 나누기로 했다가, 본인이 사임 안 한다고 버틸 경우에는 법적으로 보장된 2년의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 마땅히 그만두게 할 방법은 사실상 없기도 하고요. 결국은 모두가 '좋은 게 좋은 거' 라며 관행처럼 해 온 후과를 지금에야 마주하게 된 셈입니다. 언제든지 상임위원장 임기를 둘러싼 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걸 감안해, 전문성을 기반으로 정당하게 선출된 위원장이 본래의 임기를 책임 있게 완수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즉 편법 쪼개기를 막는 새 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