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북적] 그 결혼, 괜찮으셨죠?…이희호 자서전 '동행'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19.06.23 07:31 수정 2019.06.23 07:3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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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95 : 그 결혼, 괜찮으셨죠?.. 이희호 자서전 <동행>
 
"이 결혼 괜찮을까요?
 
서울대 졸업하고 미국서 석사 따고 돌아왔고 아버지가 의사이셔서 특별한 어려움은 없이 살았어요. 남친은  고졸이고 지금 직업은 특별히 없지만 정치하고 싶어 해요. 스피치 학원을 잠깐 했는데 선거 몇 번 떨어져서 지금 무일푼이고 월세방에서 가족이랑 살아요. 홀어머니는 편찮으시고 시누이 1명은 심장병이 있어서 결혼하면 제가 둘 다 모셔야 할 것 같아요. 남친은  재혼이에요. 첫사랑과 결혼했는데 사별하고 지금 중학생 아들 2명이 있어요. 물론 제가 키워야 하고 저는 초혼이에요. 가족뿐 아니라 주변에 단  한 사람도  반대하지 않는 사람이 없네요. 남친  인물됨은 정말 훌륭한데…. 이 결혼 괜찮을까요?"

 
고인의 명복을 바란다며 한 줄  덧붙이며 끝나는 이 글, 최근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서 많이 회자됐죠. 이미 읽으신 분도, 지금 짐작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화자는 이희호 선생, 글에 등장하는  '남친'은  김대중 전 대통령입니다. 두 사람은 1962년 결혼했고 당시 이희호 선생이 두 살 연상이었습니다. 그 '훌륭한 인물됨'만은 틀림없었겠지만, 그들이 함께 동행했던 47년은, 고난은 길고 영광은 짧았던, 인고의 세월들이었습니다.

저와 사적인 인연은 전혀 없고 어디 취재 현장에서 멀찍이서 뵌 기억 정도만 있습니다. 10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기사를 쓰면서 비로소 그의 삶을 돌아보게 됐는데 이번에도 그러했습니다. 오늘 함께 읽는 책은 2008년 출간된 이희호 선생의 자서전 <동행>입니다.
 
결혼 이후 두 사람의 삶은 그 궤적이 겹치는 지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북적북적>에서는 김대중의 배우자인 이희호의 삶보다는, 여성운동에 헌신하였던 결혼  이전, 그리고 그와 연관된 대목들 중심으로 읽었습니다. 여사나, 이사장 말고 선생으로 호칭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사범대학에서 내 별명은 독일어 중성을 뜻하는  '다스das'였다. 그동안 여자들만의 학교에서 비교적 민주적인 교육을 받아온 나는 갓 남녀공학이 된 국립대학에서 처음으로 우리나라 남성들에게 깊이  뿌리 박힌  가부장제와 남존여비의 의식과 맞부딪쳤다. 불공평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선 후배 여학생들에게 고개를 똑바로 들고 당당하게 앞을 볼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우리는 북한의 여맹을 다분히 의식했는지 여자 청년단을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남성 청년단 산하에서 여성국으로 있기보다 독립적으로 여자 청년단을 만들고 싶었다.... 여성은 전쟁의 최대 피해자였다... 후방의 희생자인 여성들에게는 불명예와 수모가 있을 뿐이었다. 몽골군에게 끌려갔다 돌아온 '환향녀'는 화냥년으로, 일제 강점기에 끌려간 '정신대'는 가문의 수치로, 한국전쟁의 피해자는 '양공주'로 낙인찍히고 멸시당했다."
 
이희호 선생은 6.25 전쟁 이후 미국 유학을 떠나 8년간 공부하고 돌아옵니다. 이때 만났던 엘리너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으로  알려진 그를 미국에서  만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로 회고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혼은 물론, 40년이  지나  대통령 부인이 될 것이란 예상은 할 수도 없었던 때인데 왜 그랬을까요.
 
"미국에서 만난 이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엘리너 루스벨트다... 엘리너가 1946년 창설된 유엔 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만든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All human being are born free and equal in dignity and rights(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여기서 모든 인간을 가리키는 'human being'은 엘리너가 아니었더라면 'men'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는 'men'이 남성만 지칭하는 것처럼 오해될 소지가 있으니 'human being'으로 하자고 주장해 관철했다.

교육, 문화, 인권 문제를 다루는 위원회에 배정된 그는 유일한 여성이었다. 소련 대표와 싸워가며 전후의 폐허에서 신음하는 난민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인간의 존엄을 인류 스스로 확인하는  세계인권선언문을  만들어낸 것이다. 혹시 누군가 '한국에서 엘리너 여사와 같은 대통령 부인이 나올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면 우리는 모두 머리를 흔들었을 것이다. 그즈음 우리 한국 여성들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받는 단계에도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선생은  귀국해서는 YWCA 총무를 맡아 사회운동과 여성운동에 본격 뛰어듭니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캠페인을 벌인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60년 전 대한민국의 모습이 그러했다는 데에 격세지감이 느껴지네요.
 
"'축첩자는 국회에 보내지 맙시다', '첩 둔 남편 나라 망친다', '아내 밟는 자 나라 밟는다' 등을 붓글씨로 써서 피켓과 플래카드를 만들었다. 국회가 있는 태평로, 종로, 을지로, 명동 거리에서는 행진으로 시위했다. 지금도 가끔 TV에서 해방 특집 방송이나 시대 다큐멘터리에 이 장면이 나온다. 보수적인 어른들은 나의 이 행동을  마뜩잖게  여겼다."
 
반세기를 동행한 김대중과 만남, 결혼도 빼놓을 수는 없죠. 이 자서전을 출간할  때 이미 이희호  선생은  90이  다 된  노인이었고 선생의 성품은 글에서 짐작되듯이  차분하고  담백해 보입니다. 둘의 관계도 격정적이라기보다는 동지적 관계와  서로에  대한  존중, 그리고 애정이 섞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대중과 나의 결혼은  모험이었다. '운명'은  문밖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곧 거세게 노크를 했다. 결혼한 지 열흘 만인 5월 20일 그는 '반혁명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리고 한 달여를 구치소에 갇혔다. '그것 보아라. 우리말을  안 듣더니…' 반대하던 이들의 염려는 오히려 내 뒤통수를 때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1963년 4월 초 동교동으로 이사를 왔다... 어느 날 국회에서 귀가한 남편은 2개의 문패를 내놓았다. 김대중, 이희호. 영문을 모르는 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대문에 당신과 내 문패를 나란히 답시다. 가정은 부부가 함께 이뤄나가는 거 아닙니까? 부부는 동등하다는 걸 우리가 먼저 모범을  보입시다.'... 남녀가 유별하고 남편을 하늘이라 믿고 따르라고 가르친 그 시대에, 더욱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며느리 문패를 단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이다음에도 한참  남았습니다. 숱한  연금과  투옥, 때로는  납치와  살해  위기, 낙선  또  낙선, 은퇴, 유학  등을  겪으면서  대통령이  되고  IMF  환란을  극복하고  남북정상회담... 퇴임 후 6년 만에  남편은  먼저  떠나고  10년이  더  지나  이희호  선생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자서전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전해인  2008년  11월  출간됐고  책의  마지막에  언급한  '이러한  날들'은  고작  9개월  남짓이었습니다. 그래서  46년으로  진행  중이던  동행은  47년으로  매듭짓게  됩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은  동행이었으리라, 그  결혼  괜찮았으리라  짐작합니다. 이희호  선생이  여성운동가의  길을  계속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고인의  명복을 바랍니다.

"이러한 날들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삶에 감사한다. 길고 험한 고난의 길이었지만 남편과 한몸이 되어 서로 믿고 의지하며 굳건히 잘 걸어온 날들이었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받으면서 그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대한민국이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고 보듬어 안아주는 따뜻한 사회가 되기를.“
 
*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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