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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일본 선진 농축산업의 비결은 '상생'과 '자부심'

일본 6차산업 테마파크 농장 '사이보쿠(Saiboku)'를 가다

[취재파일] 일본 선진 농축산업의 비결은 '상생'과 '자부심'
● 매년 400만 명 찾는 사이타마현 목장 테마파크 '사이보쿠'

도쿄에서 북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사이타마현 히다카시에 있는 사이보쿠는 '목장 테마파크'입니다. 면적은 약 10만㎡(3만 평)에 불과하지만, 연간 400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돼지 육가공 공장과 관련 식당, 지역 농축산물을 판매하는 직영매장, 온천 등이 있어 소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특히 1300년 전 고구려의 마지막 왕 보장왕의 아들 등 후손들이 건너와 60대까지 마을을 일구고 정착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 지역이 유명해진 이유는 단순히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지역이라서가 아니라 지역 농촌사회가 힘을 합쳐 상생하고, 신선하고 안전한 제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한다는 철학 때문입니다.

● 분뇨 퇴비 사용해 고품질 농산물 생산…지역 직매장서 판매

보통 축산농가가 있는 지역은 농장이 가축 분뇨 처리를 소홀히 할 경우 심한 악취가 진동하기 마련입니다. 이로 인해 민원이 폭주하고 마을 주민들과 갈등을 겪곤 합니다. 관광객의 발길도 뚝 끊어지기 마련입니다. '사이보쿠' 농장은 축산분뇨의 친환경 처리를 통해 악취를 없애고, 축산분뇨로 고급 퇴비를 만들어 지역사회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에게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즐거운 농촌 광장'이란 간판이 내걸린 직영 농산물 매장을 들어가 봤습니다. 소비자들이 북적댔습니다. 신선한 곡물과 채소, 과일들이 먹음직스럽게 소비자를 맞았습니다.
생산 농민이 직접 책정한 쌀값
● 농민이 매장서 농산물 직접 진열…가격도 스스로 책정

이 매장은 판매 금액의 15%만 수수료로 공제하고 농민들에게 직접 신선한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농민들이 생산한 쌀에는 '생산자' 얼굴이 표시돼 있고 농산물 가격도 농민이 직접 책정할 수 있게 했습니다. 누가 생산한 쌀이냐에 따라 쌀 값이 다르다는 점도 놀라웠지만, 소비자들이 생산자 이력 확인을 통해 안전한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얼굴을 드러낸 농민 사진은 피땀 흘려 생산한 농산물의 품질을 보증한다는 일종의 보증서이기도 합니다. 일본은 그래서 대도시에 있는 슈퍼마켓보다 지역 직영 매장에서 판매하는 농산물 가격이 비쌉니다. 소비자들은 도심의 가까운 마트가 있음에도 외곽의 직영매장을 찾는 건 그만큼 안전하고 신선한 농산물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세분화한 돼지고기 부위 및 부산물들
● "어느 부위도 버리지 않는다"…돼지고기 및 부산물 판매로 부가가치 높여

이번엔 직영 축산물매장으로 가봤습니다. 역시 소비자들이 북적댑니다. 삼겹살 위주의 축산물을 판매하는 한국과 달리, 이곳 매장에는 부위별로 다양한 축산물이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등심, 안심, 갈비, 족발, 삼겹살은 물론이고 돼지 내장도 부위별로 포장된 상태였습니다. 돼지의 어느 부위도 버리지 않은 것은 물론 고기뿐 아니라 햄, 소시지, 훈제 가공품 등 다양한 육가공품들도 부위별로 나눈 게 특이했습니다.

일본이 식품 선진국 반열에 오른 건 이런 세밀한 분류를 통해 음식과 레시피를 개발하고 독특한 소스로 맛을 차별화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비자들은 부위별로 꼼꼼히 나뉜 고기와 부산물을 맛보고 입맛에 맞으면 추후 또 구매하게 되는 겁니다. '어느 부위도 버릴 게 없다'는 농가의 마케팅 전략임과 동시에 다양한 소비자들의 기호를 반영한 결과라는 게 매장 관계자의 말이었습니다.
돼지 얼굴 모습을 본뜬 베이커리
● 소비자, '안전하고 신선한' 직영매장 선호…'신뢰'가 관건

눈길을 끄는 건 단순 축산물 및 가공품뿐 아니라 돼지 모양을 본뜬 베이커리와 지역 쌀로 만든 술 등 일반 식품들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도 뜨겁다는 점입니다. 일본 각지에는 이런 농축산물 지역 매장이 1천여 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일본 정부는 농축산업 농민들에게 직접적인 보조금을 주지 않는 대신, 직영 매장 설립을 지원해 줌으로써 농가들의 경쟁력을 돕고 있습니다. 농가들은 품질로 경쟁하지만, 서로 상생하고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자신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직접 진열해 판매하고, 가격 책정까지 할 수 있는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부여받게 됩니다.

단순한 농장 개념이 아닌 소비자가 신뢰하고 즐겨 찾는 놀이공원, 즉 '테마파크'로서 일본 농촌은 고령화 위기 속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사이보쿠'엔 한국의 농축산업을 이끌 젊은 인재들의 견학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농축산업의 미래가 어둡지 않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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