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스승의 날'이 불편한 사회

김지미 | 영화평론가

SBS 뉴스

작성 2019.05.31 11:03 수정 2019.07.04 14:5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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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엔 여러 가지 기릴 날들이 많다. '스승의 날'도 그중에 하나다. 어쩌다 보니 우리 집안에는 선생이 많다. 아버지는 평생을, 어머니는 아주 잠깐 교직에 몸담으셨다. 언니도, 형부도 선생이 되었고, 나도 대학에서 십 년 넘게 강의를 하다가 역시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선생에 대한 환상이 없다. 우리 집만 봐도 너무 다른 종류의 선생들이 있고, 그들의 마음이 늘 사랑으로만 가득 차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아는 탓이다. 하지만 존중하는 마음은 있다. 투자한 노력과 시간에 비해 금전적 보상이 크지 않은 직업이며 나름의 자긍심으로 버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스승의 날 즈음엔 아이 학교에서 어떤 종류의 선물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경고장 같은 공문이 왔었다. 초등학교 면담 기간에도 커피 한 잔도 안 된다는 공문이 왔다. 야박하다 싶기도 했지만, 부담이 없어 좋았다.

나는 초등학교 때 지방에서 서울로 전학을 했다. 담임선생은 내가 제출한 가정환경조사서가 구겨졌다며 출석부로 2학년짜리 머리를 후려갈겼다. 그는 가정환경이 마음에 들었던지 다음 날부터 갑자기 다정해졌다. 하지만 학교라면 졸업식 말고는 발도 들이지 않았던 엄마 덕에 선생은 곧 냉담해졌다. 십 년도 지나 우연히 만난 동창이 그 선생의 애정과 관심은 금전적 보상이 필수였다고 전해주었다. 그래서 요즘 한국의 엄격한 경고성 공문들이 더 마음에 들었다.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뒤 가장 놀라웠던 일 중 하나는 '선생님 감사 주간'이었다. 일주일 내내 감사를 표현한다. 월요일엔 꽃을, 화요일엔 선생이 가장 좋아하는 색의 티셔츠를 입고, 수요일엔 감사 노트를, 목요일엔 자기 성(姓)의 첫 번째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무언가를 들고 간다. 주간의 대미를 장식하는 금요일엔 상품권을 들고 간다. 선생은 이것저것 자신이 받은 것을 애들마다 꼼꼼히 기억해서 감사 카드를 보낸다.

선생과 학생, 학부모의 관계가 비교적 평등해 보이는 이곳에서 이렇게 요란하게 선생님 주간을 챙긴다는 점이 놀라웠다. 다행히 우리 동네는 길거리 꽃을 꺾어 와도 웃으며 반겨주고 5달러짜리 기프트 카드를 주고받아도 아무렇지 않은 분위기라 심적 부담이 크지 않았다. 물론 이곳에서도 과열 경쟁에 빠진 부모와 헛된 기대에 사로잡힌 선생들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풍문은 있다. 어디나 사람 사는 건 비슷한 모양이다.

사람 사는 걸 그린 게 영화이다 보니 영화에도 사제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최근 <나의 작은 시인에게>라는 유치원 선생에 관한 영화를 인상 깊게 보았다. 작은 꼬마에게 깃든 위대한 시인의 영혼을 유일하게 알아본 선생은 그 재능이 주변의 무심한 어른들에게 파묻혀 빛을 잃을까 괴로워한다. 그래서 그 재능을 지켜주겠답시고 '유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무모한 모험을 감행한다.

줄리언 무어가 출연한 2012년 작품 <잉글리쉬 티처>에도 비슷한 고등학교 선생이 나온다. 이 영화에서 줄리언 무어는 뛰어난 작가적 재능을 가졌던 졸업생의 희곡을 무대에 올려주기 위해 다소 히스테리컬해 보이는 소동을 벌인다.

이 선생들의 모험을 보며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 애잔함과 안타까움에 공감하기도 했지만, 학부모로서는 공포감을 느꼈다. 학생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해주는 것은 선생의 가장 큰 임무이지만 그 재능이 가야 할 길까지 정해주는 것이 선생의 권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집착도 방치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다. '좋은 선생'이 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선생'이라는 직업은 그것을 선택한 인간을 규정하지 못한다. 우리는 학교를 다니며 얼마나 다양하게 좋은 선생 혹은 끔찍한 선생을 거쳐 왔는가. 너무 오랫동안 '군사부일체'라는 억압적 개념이 우리에게 선생에 대한 존경을 강요했었다. 그래서 지금은 스승의 날이 맘껏 축하할 수 없는 불편한 날이 되어버렸다. 미국의 선생들은 오히려 그런 지위를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어 부담 없는 축하를 받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과 학생 그리고 학부모, 우리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다. 서로 너무 기대하지 않거나 격조하지 말고, 좋으면 좋은 대로 감사하고, 나쁘면 나쁜 대로 정확하게 비판할 수 있으면 그 관계는 다시 건강해질 것이다. 모든 학생과 선생이 '스승의 날'을 신나게 축하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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