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블루보틀과 쉑쉑버거, 그리고 지위의 불안

서메리 | 작가 겸 번역가.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저자

SBS 뉴스

작성 2019.05.25 11:04 수정 2019.07.04 15:2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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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 성수동에 블루보틀 한국 1호점이 문을 열었다. 오픈 전부터 예상됐던 일이지만, 매장 앞에는 즉시 길고 긴 줄이 늘어섰다. 고객들은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4시간, 5시간씩 기꺼이 대기를 택했고, 푸른빛 병 모양 로고가 선명히 찍힌 종이컵을 받아든 채 함박웃음을 지으며 가게를 나섰다. 뒤이어 벌어진 사회적 반응 또한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SNS는 블루보틀 매장에 방문하거나 커피 구입에 성공한 사람들의 '인증샷'으로 도배되었고, 언론은 이 기현상을 앞다퉈 보도했다.

이 광경은 기시감이 들 만큼 익숙하다. 우리는 지난 2016년 강남역 부근에 입점한 쉐이크쉑 버거, 일명 '쉑쉑버거' 1호점 오픈 날에도 이와 똑같은 경험을 했다. 햄버거 하나를 먹기 위해서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긴 줄부터 사방에서 들리는 경쟁적인 카메라 셔터 음까지, 이쯤 되면 음식을 먹는 김에 사진을 찍는 것인지, 사진을 찍는 김에 음식을 먹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폭염이 한창인 7월 대낮에 땀을 뻘뻘 흘리며 몇 시간씩 햄버거를 기다린 사람들 중 상당수가 많든 적든 'SNS 인증'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은, 개점 당일부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라오기 시작한 사진의 어마어마한 개수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요즘 20대 전후의 젊은 고객들은 SNS 파급력을 편의성과 효율성에 버금가는 소비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물론 기왕 외식을 하러 나간 김에 화제가 되고 있는 식당을 찾아가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 어느 정도의 기다림을 감수하는 것도, 맛있게 먹은 음식을 기념으로 촬영하는 것도 특별히 공감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오직 인증 사진 하나를 남기기 위해 땡볕에서 몇 시간씩, 심한 경우 전날 새벽부터 줄을 선다는 것은 기존의 상식으로 쉽게 이해하기 힘든 선택이다. 실제로 블루보틀과 쉑쉑버거의 개점 풍경을 다룬 기사에는 젊은 세대의 비합리적인 소비습관과 SNS 의존도를 비판하는 댓글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비판받아 마땅한 현상일까?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이게 단순히 '개인'만을 비판해야 할 문제일까? 작가 알랭 드 보통이라면 분명히 이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했을 것이다.

SNS에 사진을 올리는 행위는 일종의 자기표현에 해당한다. 이 자기표현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커져서 '표현'이 '자기'를 압도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평범한 표현이 아니라 과시, 혹은 허영이 될 것이다. 블루보틀 관련 기사에서 대중들이 꼬집은 것 또한 바로 이 부분이었다. 귀중한 시간을 길바닥에 낭비하면서까지 커피 사진을 자랑하려는 과시욕과 '좋아요'의 개수로 자신의 가치를 규정하는 허영심 말이다.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은 저서 《불안 Status Anxiety 》에서 이런 개인의 태도를 무작정 비판하기보다 그들이 사는 사회를 한 번 들여다보자고 말한다. 그러한 허영심이 '심리적으로 필요한 일'이자 '보람 있는 일'이라고 느끼게 만든 것은 바로 이 사회이기 때문이다. 아직 인터넷이나 SNS가 발명되지 않았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유명인의 이름을 팔거나 호사스러운 장식품을 달고 다니면서 허세를 부렸다. 빅토리아 시대에 제작된, 실용성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화려한 가구들을 보면 당시 사람들이 지녔던 과시욕을 어렵게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치품의 역사는 탐욕의 이야기라기보다 감정적 상처의 기록으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저자는 책에서 말한다.

속세의 짐을 모두 내려놓은 스님이 아니고서야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돈과 명예, 그리고 높은 지위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이런 세속적 욕망을 품는 근본적 이유가 바로 '사랑' 때문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불안》에 따르면, 우리가 더 높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은 (당장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부족한 경우를 제외하고) 오로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 위해서이다. 만약 지위가 단순히 물질적 풍요나 권력을 가져다줄 뿐이라면, 이미 3대가 펑펑 쓰고도 살고도 남을 만큼 재산을 쌓아둔 부자들이 굳이 경제활동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시간을 쏟고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끝없이 일에 매달리는 까닭은 오직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사랑과 존경을 원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회적 관점에서 사랑의 반대말이 '증오'가 아닌 '무시(혹은 외면)'라고 보았다. 높은 지위를 손에 넣은 사람은 사랑을 받지만(어딜 가나 환영받고, 좋은 모임에 초대받고, 썰렁한 농담에도 모두가 웃어주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외면을 받는다(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기억하지 않고,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이것은 '속물적인 세상이 특정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며, 우리는 이 무서운 벌을 면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공부를 하고 고과를 관리하고 펀드 수익률에 목을 매며 살아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위 상승의 문은 좁아지고 있다. 몇 년 전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라는 말이 나오더니 어느새 내 집 마련과 대인관계까지 포기한 5포 세대, 꿈과 희망마저 놓아버린 7포 세대가 등장했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어렵고, 취업을 해도 정년보장이 어렵고, 정년퇴직을 해도 노후대비가 어렵다. 월급은 기껏해야 2%, 3%씩 오르는데 집값은 20, 30%씩 껑충껑충 뛴다. 미래를 위한 노력이 전에 없이 부질없게 느껴지는 이 시대에, 'N포'를 외치며 무력감에 빠진 청년들을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지위 상승에 대한 희망이 무너졌다고 해서 사랑받고 싶은 소망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니, 눈앞의 미래가 더없이 불안하게 느껴지는 만큼, 현대인들은 더욱 강렬하게 사랑의 증거를 갈구한다. 어쩌면 SNS는 이러한 감정적 상처를 단기적으로나마 치유해줄 가장 확실한 수단일지도 모른다. 새로 생긴 카페 앞에 5시간 동안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요즘 세상에 달랑 몇 시간을 투자해서 이렇게 확실한 관심과 주목(다시 말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이 따로 있을까? 물론 블루보틀 매장에 줄을 섰던 사람들이 전부 같은 목적을 지녔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중에는 분명히 평소보다 후한 관심과 주목(다시 말해 '좋아요')을 통해 성취감을 느낀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가끔씩 경제적으로 최상류층에 해당하는 인사들이 서민들보다 훨씬 저렴한 옷을 입거나 소지품을 들고 다닌다는 보도를 접할 때가 있다. 그런 기사들은 대개 취재 대상의 검소함이나 소탈함을 강조하고, 이를 바라보는 여론의 분위기 또한 전반적으로 호의적이다. 하지만 나는 모 정치인이 '싸구려' 가방을 들고 다닌다는 기사를 읽은 한 지인의 무뚝뚝한 반응을 잊을 수가 없다. "저 사람이 저런 물건을 들고 다닐 수 있는 것은, 적어도 그런 것 때문에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야."

이 의견에 다소 일리가 있다면, 그리고 지위와 사랑의 관계를 꿰뚫어본 알랭 드 보통의 통찰이 조금이라도 옳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수준의 시간을 투자해가며 SNS에 커피와 햄버거 사진을 올리는 현상은 정확히 반대급부의 의미를 지닐 것이다. SNS 의존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허세와 허영이 긍정적인 가치라는 얘기도 아니다. 다만, 얼핏 과시욕의 표출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이 현상은 어쩌면 이 사회의 젊은 구성원들이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는 지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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