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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무라카미 하루키가 팬들 앞에서 '디제잉'을?

지난해 8월 라디오 방송국인 도쿄FM과 출판사인 신쵸사(新潮社)의 공동 기획으로 시작된 '무라카미 라디오' 첫 방송이 있었습니다. 당시 외교부 출입기자였던 저는 출근길에 NHK 라디오 뉴스를 팟캐스트로 듣다가 점잖기로 유명한 NHK가 20분 뉴스 가운데 무려(!) 2분 가까이를 '무라카미 라디오' 방송 소식에 할애한 내용을 듣고 첫 방송 내용을 소재로 '무라카미 라디오'의 홈페이지를 인용한 취재파일을 쓴 적이 있습니다. ( [취재파일] 무라카미 라디오가 현실로…'1일 DJ'가 된 하루키의 '러닝 음악'은?)

제목은 '1일 DJ'라고 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루키가 진행하는 '무라카미 라디오'는 그 뒤에도 두 달에 한 번씩 방송을 계속해 지금까지 모두 다섯 번 방송됐습니다. 가장 최근의 방송이 지난 4월 21일 '무라카미 라디오-사랑의 롤러코스터'였는데, 역시 하루키 본인이 좋아하는 재즈와 팝 음악을 한 시간 동안 들려주며 청취자와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략 두 달에 한 번꼴로 방송을 했으니 다음 방송은 아마 6월쯤이 아닐까 예상하고 있었는데요.

이번에는 무려 '공개방송'을 한다는 일정이 지난 14일 밤에 '무라카미 라디오'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됐습니다. 오는 6월 26일로 결정된 공개방송의 타이틀은 '무라카미 잼(JAM)'.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가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행사로 기획됐습니다. 그동안 '무라카미 라디오'를 열심히 들어온 청취자들로부터 공개방송을 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는데, 여기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무라카미 잼'이 성사된 겁니다.
무라카미 JAM
하루키는 작가로 데뷔하기 전 도쿄 고쿠분지(國分寺)에서 '피터 캣'이라는 지하 재즈 카페를 경영한 적이 있습니다. 신진 재즈 뮤지션들을 불러 라이브 공연을 열고, 카운터 구석에서 손님들이 주문한 샌드위치와 칵테일을 조용히 만드는 하루키의 모습은 그의 팬이라면 (직접 보지 못했어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 무렵 무심코 찾아간 진구(神宮) 야구장 외야 관중석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외국인 타자 데이브 힐튼이 그림 같은 2루타를 때려내는 장면을 보다가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일화도 유명합니다.

이번 공개방송에는 재즈 트롬본 연주자인 무카이 시게하루와 싱어송라이터 이노우에 요스이, 색소폰 연주자 도키 히데후미 등 일본 재즈계를 견인하는 호화 멤버가 참여할 예정입니다. 이들 모두 하루키의 재즈 카페 '피터 캣'과도 인연이 있다고 하니 신인 시절 재즈 카페의 주인과 신예 연주자로 만났던 이들이 70세 전후의 만년(晩年)에 다시 만나 나눌 얘기에 벌써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행사 전체의 음악감독도 하루키와 오랜 기간 교류해 온 재즈 피아니스트 오니시 준코가 맡고, 일본 재즈계의 최정상급 '원로'로, 하루키가 존경을 표해 온 재즈 클라리넷 연주자 기타무라 에이지(90세)와 색소폰 연주자 와타나베 사다오(86세) 퀸텟도 출연할 예정입니다. 거기에 하루키가 'DJ'를 맡아 진행하는 행사인 만큼 하루키가 직접 고른 LP 레코드를 배경음악으로 걸고 본인이 직접 작품을 낭독하는 순서도 예정돼 있다고 하니 하루키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놓칠 수 없는' 행사가 될 것 같습니다.
기타무라 에이지
90대의 재즈 거장을 필두로 한 '아날로그' 뮤지션들을 상대적으로 어린(?) 본인의 팬들과 '인사'시키겠다는 것이 하루키가 이번 공개방송을 기획-적어도 '승낙'-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도쿄 FM과 신쵸사 공동 기획의 '무라카미 라디오' 홈페이지는 이번 공개방송에 청취자 150명을 초청하겠다고 밝혔는데요, 홈페이지의 별도 양식을 통해 신청하거나, 도쿄 시내 두 곳의 서점에 비치된 '엽서'를 보내면 됩니다. '올드 미디어'인 라디오와 책을 인터넷과 양립시킨 응모 방식이 왠지 독특하게 느껴집니다.

지난해 외교부 출입기자를 거쳐 올해부터 도쿄 특파원으로 시청자와 독자 여러분을 만나고 있는 저도 이번 이벤트에 응모해 볼 생각입니다. 이미 일본 언론들은 150명 한정 초청 행사의 경쟁률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요, 20년 넘게 하루키를 읽어 온, 그 덕에 여러 차례의 취재파일로 하루키 '팬심'을 슬쩍슬쩍 드러내 온 저에게도 어쩌면 좋은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겠습니다. (표준어가 아니어서 송구스럽지만) 이른바 '덕업일치'의 기회가 정말로 찾아오면 그때 다시 이 자리를 빌어 현장 모습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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