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TV 사극이나 영화에서 봤음직 한 비장한 격문(檄文) 같습니다. 전쟁을 앞둔 병사 앞에 선 장군들이 이런 말로 사기를 끌어 올리는 장면을 종종 봤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격문(?)의 출처는 TV 사극도 전쟁 영화도 아닌 TV 뉴스입니다. 중국 관영 CCTV 메인 뉴스 앵커인 캉후이(康輝)가 그제(13일) 메인뉴스 시간에 카메라를 응시하며 낭독한 논평입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2막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CCTV 앵커의 비장감 넘치는 뉴스는 중국인들에게도 하루종일 화제가 됐습니다. '이런 뉴스를 정말 오랜만에 봤다"는 반응과 함께, "북한 조선중앙TV인 줄 알았다" 같은 댓글처럼 꽤나 낯설게 느낀듯한 중국인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캉후이가 낭독한 격문 내용에 공감한다는 반응이 압도적이었습니다. 당일 웨이보에 조회 수가 36억 건이 넘었고, 170만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한 매체는 중국인의 강한 애국심이 드러냈다고 평가하는 걸 보니, 중국은 여전히 이런 격문이 통하는 사회라는 걸 새삼 깨닫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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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중국 매체들은 자국의 승리를 자신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국뽕'언론 환구시보는 "중국이 반격 수단이 많다"는 점을 자신감의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중국 매체들이 말하는 반격 수단, 비밀무기는 뭘까요? 전문가들은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매각하는 방법, 위안화 환율을 인위적으로 평가절하하는 방법, 첨단 반도체의 원료인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는 방법 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무기들은 공개적으로 사용하기 부담스러운 데다, 실제 효과가 있을지, 후폭풍은 어떨지를 놓고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당시 건축을 중단시킨 선양 롯데월드는 최근 2년여 만에 건축재개 허가를 받았지만, 사실상 사업 포기를 고민해야 할 시기에 놓였습니다. 한국행 단체 관광도 금지했습니다. 이렇게 민관이 똘똘 뭉쳐 조직적인 방해 활동이 진행됐지만, 중국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중국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애국심의 발로라는 겁니다. 롯데는 중국 시장에서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중국의 이런 식의 외국기업 보복은 우리에게만 했던 것도 아닙니다. 2012년 일본과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당시에도 반일 시위와 불매운동을 진행됐고, 크고 작은 분쟁이 있을 때마다 중국 소비자들은 분연히(?) 일어나는 걸 마다하지 않습니다. 미국 기업에게도 예외가 될 순 없습니다. 지난해 미국과의 무역전쟁 서막 때도 중국 SNS상에선 "미국 자동차 조심하라. 애플 아이폰 모두 버려라. 청바지는 미국에서 유래한 것이니 모두 버려라"라는 선동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호언과는 달리, 중국에 진출해 있는 미국 기업들의 지금 상황은 가시방석일 수밖에 없습니다. 롯데처럼 불매운동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당국의 각종 규제로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