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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달창'은 어떻게 정치권에 왔나…'정치 혐오'를 만든 '혐오의 언어'

[취재파일] '달창'은 어떻게 정치권에 왔나…'정치 혐오'를 만든 '혐오의 언어'
쓰고 싶지 않은 표현이 있습니다. 입에 담는 것도 꺼려져 쓴 적이 없는 말입니다. 평소 편한 대화를 할 때는 물론 기사에는 더욱 담기 싫은 단어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관련 기사의 댓글로 왕왕 눈에 띄던 '달창'이라는 말이 제게는 그랬습니다. 입에 올리는 건 물론 글로 써줄 가치는 더더욱 없는 경멸과 적개심으로 만들어진 단어. 이른바 '혐오의 언어'입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대구 장외집회 연설 발언으로 정치권이 뜨거워진 게 오늘(14일)로 나흘째입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물론이고 어제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여성 의원들까지 '여성 혐오·비하 표현이다'라며 공세의 불을 지폈습니다. 인터넷과 SNS에는 오늘도 비난이 쏟아집니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까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막말과 험한 말로 국민 혐오를 부추기며 국민을 극단적으로 분열시키는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고 어제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달창' 발언에 문 대통령이 직접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거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정윤식 취재파일 사진
이 단어를 몰랐던 사람들은 뒤늦게 뜻을 알게 되면 대부분 인상을 찌푸립니다. 그만큼 혐오적인 표현입니다. 그런데도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몰려있는 극우 커뮤니티 사이트로 치부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만들어진 말이 지금 가장 뜨거운 단어가 됐습니다. 등장한 지 불과 2년여 만에 제도권 정치의 상징인 국회에 상륙한 '달창'이란 표현.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 '달창'이 제도권 정치권에 상륙했던 날…대구에서 일어난 일

지난 주 토요일(11일) 대구 장외집회에서 나경원 대표가 발언을 시작한 건 약 오후 4시 반쯤이었습니다. 문제의 단어는 연설 중간에 나왔습니다. 이 발언을 구체적으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요새 문빠, 뭐 달창 이런 사람들한테 공격당하는 거 아시죠? 아 대통령한테 독재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묻지도 못합니까? 여러분! 묻지도 못하는 거 이게 바로 독재 아닙니까? 여러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11일(토) 오후 대구문화예술회관 앞 장외집회 연설 중에서)

문제의 표현이 등장한 건 나경원 대표의 연설이 10분 정도 이어진 시점이었습니다. 5분 뒤에 연설이 끝났으니 이 단어가 나온 시점은 장내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던 때였습니다. 대여 투쟁의 선봉장으로 '나다르크'라는 별명까지 가진 자유한국당 원내 사령탑의 장외 연설은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군중들은 환호했고 숨을 돌릴 때마다 어김없이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지지자들은 열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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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의 대구 장외집회 개최는 공개된 소식이었지만 '달창'이란 단어에 주목한 보도는 그날 저녁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논의 끝에 '달창'을 '일베 비속어'로 순화해 표현하기로 한 당일 SBS 8뉴스로 첫 보도가 이뤄졌습니다. 나경원 대표는 바로 입장을 내놨습니다. 8시 20분쯤 SBS 보도가 나간 뒤 약 20분 뒤인 8시 40분쯤 출입기자단에게 해명 입장문이 도착했습니다. 이례적으로 빠른 대처였습니다.

● "전여옥 SNS 보고 달창 썼나" 의혹에 대한 대답은?

"저는 오늘 문재인 대통령의 극단적 지지자를 지칭하는 과정에서 그 정확한 의미와 표현의 구체적 유래를 전혀 모르고 특정 단어를 쓴 바 있습니다. 저는 결코 세부적인 그 뜻을 의미하기 위한 의도로 쓴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인터넷상 표현을 무심코 사용해 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11일(토) 밤 8시 40분쯤 출입기자단에 배포한 입장문)

맥락을 확인하기 위해 나경원 대표 측 관계자 여러 명에게 물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하나같이 동일했습니다. 해명 글 내용대로 '달창'이란 단어의 뜻을 나경원 대표가 사전에 전혀 몰랐다는 겁니다. 대구 집회에서 한 나경원 대표의 연설은 미리 준비한 글이 없는 '현장 연설'이었는데 이른바 '애드리브(사전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하는 언행)' 과정에서 나온 말 그대로 '실수'였다는 겁니다. 연설을 마치고 내려온 나경원 대표에게 보좌진들이 '달창'의 뜻을 설명해주자 나경원 대표가 깜짝 놀라 즉시 사과문을 발표하자고 말했다고 복수의 관계자들은 말했습니다.

다만 장외집회가 계속 진행 중인 상황에서 입장문을 낼 여유가 없었고 이 과정에서 SBS 8뉴스 보도가 나오자 곧장 사과문을 발표했다는 겁니다. 즉, 나경원 대표는 '달창'이란 말을 문재인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 일부를 일컫는 단어로 잘못 알고 있었을 뿐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썼다는 이야기입니다.

'달창' 발언을 비판하는 기사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쏟아지고 있습니다. 한 종편 방송사는 SBS 보도가 나간 다음날인 그제 일요일(14일) 메인뉴스에서 '달창' 발언 논란을 보도하면서 '나경원 일베 즐겨찾기'라는 키워드를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나 대표가 단상에 올라가기 전 전여옥 씨의 SNS를 본 게 아니냐 추정해 볼 수 있다", "그 표현이 일베 용어였는지 몰랐는지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여옥 씨가 SNS에 '문빠 달창' 이라고 쓴 글을 나경원 대표가 보고 집회에서 말한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입니다.

그렇다면 나경원 대표는 어떻게 이 단어를 떠올린 걸까요? 나경원 대표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 '실익 없는 논란을 일부러?'…엇갈리는 정치권의 시선들

"페이스북에 들어가 본 건 아니고 포털 사이트 메인에 있는 정치 기사들을 보다가 그런 단어를 봤다. 댓글 같은 데서도 많이 봤었는데 그게 그렇게 나쁜 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기사에서 봤던 '문빠', '달창' 이란 단어가 연설 도중 순간적으로 생각이 나서 말이 나왔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13일(월) SBS와 통화 내용 중에서)

정리하자면 나경원 대표 측의 대답은 ''달창'이란 단어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무심코 사용했다. 전여옥 씨의 SNS를 보고 쓴 것도 아니다. 어디선가 본 단어가 현장 연설 도중에 나왔다'는 겁니다.

이번엔 정치권에 물어봤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등 비(非)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나경원 대표의 이 말을 두고 의견이 다소 엇갈립니다. 다만 직접 물어본 결과를 취합해보니 나경원 대표가 비난 받을 것을 뻔히 알면서 '달창'이란 단어를 일부러 썼을 거란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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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하면 '나경원 대표가 저 말을 해서 얻을 게 없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제1야당의 대표이자 4선의 다선 여성 정치인으로서 '막말 논란' '성매매 여성 비하' 등이 자신에게 불리한 논란이 될 거라는 걸 몰랐을 리는 없다는 의견입니다. 정치인들이 간혹 불리함을 무릅쓰고 논란의 주체가 되려고 언행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성매매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면서까지 논란의 주체가 되는 건 나경원 대표에게 실익보다는 피해가 더 크다는 계산입니다. 실제로 5.18 망언 사태로 자유한국당이 홍역을 치른 데 이어 이번 '달창' 발언으로 나경원 대표와 자유한국당이 또 한 번의 '막말' 이미지를 얻게 되면서 정치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몰리고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손해 볼 일을 일부러 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겁니다.

● 일상마저 잠식한 '혐오의 언어'…일베식 조어의 난립

위에 말씀드린 정치권의 의견들이 사실이라면 나경원 대표는 포털 사이트 기사와 댓글 등을 통해 '달창'이라는 말을 듣거나 본 셈입니다. 이런 저급한 '일베 용어'가 어쩌다 이렇게 온라인 공간에서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던 걸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부 누리꾼들이나 쓰는 혐오의 언어로 치부했던 표현들이 최근 일상을 잠식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최근 온라인에서 사용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든 '민주화'라는 단어를 일례로 들 수 있습니다.
정윤식 기자 취재파일 일간베스트 저장소 이미지
'민주화' 단어에 대한 이야기는 온라인상에서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비난과 욕설, 일부 지역에 대한 비하 표현의 사용이 절정에 다다랐던 지난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극우 사이트인 일베 이용자들은 '민주화'라는 표현에 작심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로 나온 단어가 '민주화 당했다'입니다. 5.18 민주화운동을 비롯한 정치 운동이나 관련된 뉴스가 포함된 인터넷 포털 사이트 기사나 SNS 댓글 칸에 대해 '민주화 당했다'라며 비하하는 댓글을 쓰는 유행을 일베 이용자들이 조장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후 한 여성 아이돌 그룹 멤버가 이런 의미를 모르고 표현을 사용했다가 비난을 받고 사과를 하는 일이 여러 매체에 의해 보도되면서 이 단어는 크게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민주화'가 원래 가졌던 의미가 아닌 '민주화 당했다'라는 이른바 '일베식 조어'로 변형되면서 온라인에서 부정적 의미를 갖게 된 겁니다. 얼핏 들어서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표현에 극단적인 혐오의 의미를 부여한 '일베식 조어'가 횡행한 셈입니다. 투쟁과 희생의 역사가 스며있는 '민주화'라는 단어를 극우 사이트 이용자들이 농락한 셈입니다.

● '달창' 얼마든지 쓰자는 전직 국회의원…'혐오의 언어'에 기생하는 정치

나경원 대표의 잘못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나경원 대표 스스로 보도 직후 바로 사과문을 내놨듯이 정치인으로서 부적절한 혐오 표현을 쓴 것은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발언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걸 막을 강력한 억제책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강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법이 없기 때문에 혐오 발언이 온라인에서 확산되고 결국 제도권 정치의 영역까지 흘러들어간 것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17대와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전여옥 전 의원은 자신의 SNS에 '달창'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글을 지난 10일 게시한 뒤 14일 오후 2시 현재까지도 삭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문빠 달창들이 제일 뿜었던 것은 '좌파독재'라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자가 질문도 제대로 못하는 나라?
그럼 '좌파독재'가 아니라 '문빠 독재'라는 건가요?
(전여옥 전 새누리당 의원, 지난 10일 페이스북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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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옥 전 의원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SNS 글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얼마든지 부르세요~'달창'이라고^^'라는 제목의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이 글에서 전여옥 전 의원은 "두 달 전에 '달창 뜻'을 검색하니 '닳거나 해진 밑창'이라고 나왔다. '낡은 이념에 사로잡힌 쓸모없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라고 이해했다"고 말합니다. '그 달창과 제 달창은 다르다'며 사과할 뜻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 말은 '달창'이란 단어를 사람들이 '혐오의 언어'로 인식한다는 걸 이제 본인도 안다는 말입니다. 두 차례나 국회의원을 지낸 전직 의원의 이런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 '정치 혐오' 부추기는 '혐오의 언어'…벌금 667억 원만이 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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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발언을 법으로 처벌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과거사 부정과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에 대한 처벌 장치를 마련해 지금껏 지켜오고 있습니다. 인종과 민족, 종교 등 특정 그룹에 대한 증오 발언이 처벌 대상입니다. 유태인 학살이라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겪은 나라로서 과거의 상처를 달래고 재발을 막기 위함입니다. 독일에서는 지난해 9월 SNS에 올라온 혐오 발언을 방치한 기업 등에 대해 문제의 게시물을 방치할 경우 최대 5천만 유로(우리 돈 667억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의무를 법에 명문화했습니다. 혐오 발언에 대한 처벌 조항을 온라인 영역까지 확대한 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짜뉴스 방지법' 논의가 시작됐지만 아직 갈 길은 멉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일베 폐지' 등 온라인에 대한 제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민주주의의 역사와 더불어 논의가 진행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현실적으로 금세 결론이 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공적 영역에서의 혐오 표현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달창' 발언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혐오의 언어'가 제도권 정치에 상륙한 현상을 목도하고 있는 걸 수도 있습니다. 성숙한 대화와 소통을 위협하고 증오과 갈등을 조장해 분열시키는 위험한 상황을 현실로 체감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사피어와 벤저민 워프는 1920년대 '사피어-워프 가설'을 내놓고 사용하는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오늘날 언어학이나 인지 과학계 주류에서 받아들여지는 가설은 아니지만 그 시대의 언어와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가 서로 큰 영향을 미친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이제 '달창' 같은 '혐오의 언어'가 더이상 한국 정치에 발 못 붙이게 할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요? '혐오의 언어'가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장면을 국회에서 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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