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그리스인 조르바』가 한국에서만 유명하다고요?

서메리 | 작가 겸 번역가.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저자

SBS 뉴스

작성 2019.05.03 10:04 수정 2019.07.04 15:3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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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 설민석 강사, 장석주 시인, 그리고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소장.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잘 알려진 명사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여기에 또 한 가지 교집합을 찾자면 모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았다는 점이다. 김훈 작가에게 이 책은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도서'였고, 설민석 강사에게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쳤을 때 읽는 책'이었으며, 장석주 시인에게는 '20번 넘게 읽은 책', 김정운 소장에게는 말 그대로 '내 인생을 바꾼 책'이었다.

내가 조르바와 처음 만난 것은 스물 몇 살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정확한 연도는 가물가물하지만, 주말 내내 침대에 엎드려 책장을 넘기던 동안 페이지 위로 쏟아지던 여름 햇살의 뜨거운 감촉만큼은 선명히 기억난다. 그 찬란한 태양빛은 활자를 통해 전해지는 조르바의 강렬한 에너지와 어우러져 내 안에 지울 수 없는 인상으로 남았다.

평생을 궤도에 맞춰 살았지만 정작 책상 밖에서는 그 어떤 도전도 할 수 없었던 화자의 자괴감에 대한 공감, 그리고 지식보다는 본능과 행동이 앞서는 조르바의 자유분방함이 주는 카타르시스. 이 생생한 이야기에 열광하지 않을 독자가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약 70년 전에 멀고 먼 그리스 땅에서 쓰인 이 소설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수많은 명사들의 추천도서로 자리매김하는 현상을 나는 단 한 번도 이상하게 여겨본 적 없었다. 한 모임 자리에서 처음 만난 외국인 청년에게 이상한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어느 날 늦은 오후, 회사원 친구 C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자기가 비싼 밥을 살 테니 저녁을 함께해 달라고 제안했다. 대강의 사정은 이랬다. 자기 팀에 독일 출신의 외국인 인턴이 배정됐는데, 눈치 없는 팀장이 대뜸 그를 멘토로 임명하더니 회사 분위기도 알려줄 겸 퇴근 후 따로 식사 자리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C는 영어가 서툴렀고, 궁여지책으로 내게 간단한 통역 겸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부탁하게 된 것이다.

마침 특별한 일정이 없던 나는 '비싼 밥'이라는 미끼를 덥석 물었다. 그리고 덕분에 매우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국내산 소고기에서는 자본의 꿀맛이 났고, 오랜만에 보는 친구 얼굴은 반가웠으며, 풋풋한 외국인 청년에게 듣는 해외 동향은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날, 나는 맥주 한 잔과 함께 테이블을 뜨겁게 달구던 다양한 화제들 사이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창 독서의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독일에서 날아온 그 인턴 청년이 내 '인생 책'인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해 자못 받아들이기 어려운 평가를 내린 것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평가랄 것도 없었다. "좋아하는 책? 『그리스인 조르바』요!"라고 신이 나서 외치는 내게, 그는 순수한 표정으로 답했다. "오, 그런 책이 있어요? 독일에서는 한 번도 못 들어본 책이네요."

물론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고 해서 (그리고 수십 년 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거나 유명 인사 몇 명이 추천한 책이라고 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읽거나 알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게다가 그날 나와 대화를 나눈 친구는 출판업계 종사자도 아니고, 딱히 자국을 대표하는 독자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나는 자연스레 그가 문학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한 뒤 대화 주제를 바꿨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 자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에 대한 내 판단이 성급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로부터 얼마 후에 만난 영국인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서였다. 한창 수다를 떨던 중 몇 주 전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던 나는 맞은편 자리에서 케이크에 포크를 푹 찔러 넣고 있던 친구를 향해 물었다. "저기, 너 혹시『Zorba the Greek』이라는 책 알아?" 순수문학을 전공했을 뿐 아니라 누구보다 고전을 사랑하던 이 영국 숙녀는 독일 청년보다 한 술 더 뜬 대답을 내놓았다. "원래는 몰랐어. 그런데 한국 친구들이 하도 많이 추천해줘서, 이참에 한 번 읽어보려고."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책장에 꽂혀 있던 『그리스인 조르바』를 꺼내 보았다. 책 뒤표지에는 소설가 콜린 윌슨이 쓴 추천사가 적혀 있었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은 비극이다.… (그가)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더라면,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 말은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고 그리스어로 작품을 썼기 때문에 능력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유명세가 아니라 그 알맹이가 보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울림을 주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미 내용 면에서 재미와 의미를 충분히 발견한 책이 다른 나라에서 얼마나 높은 인지도를 지니고 있는지 굳이 확인하려 드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향한 타국 독자들의 반응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궁금했다. 그 까닭은 분명했다. 만약 이 책이 대한민국에서 특별히 인기 있는 작품이 맞다면,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서메리_삽화 내가 주목한 것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핵심 키워드인 '자유'였다. 이 작품에 담긴 강력한 자유의 정서가 한국 독자들의 심금을 유난히 울렸다면, 우리가 본능에 충실한 조르바의 행동에서 남들보다 더 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면, 그것은 이 사회 속에서 우리의 자유와 본능이 심각하게 억압당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입시에서 취업, 결혼, 출산, 육아, 노후대비로 이어지는 갑갑한 궤도에 갇힌 한국 독자들이, 저도 모르게 무기력한 화자의 처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조르바에게 무한한 동경을 품었기 때문은 아닐까?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의 김상근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읽었을 때, 가슴이 너무 벅찬 나머지 학교 야구장으로 달려 나가 숨이 가쁠 때까지 뛰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감상에 200% 공감했다. 이 책의 페이지 사이에서 느껴지는 거친 생명력과 본능에 충실한 삶의 방식은 우리가 속한 현실의 사회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기에.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조르바는 말한다. "인간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죠?" 상대의 어리석은 되물음에, 조르바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꾸한다. "자유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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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