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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섬은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 군산 선유도 둘레길(구불길 8코스 A) ②

[라이프] 섬은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 군산 선유도 둘레길(구불길 8코스 A) ②
▲ 고군산군도의 섬들이 아스라하게 펼쳐져 있다.

● 섬에서 섬을 발견하다

대봉(150m)의 전망대에 서자, 세상의 풍경이 달라져버렸다.

전망대 위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멋진 풍광 앞에서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이곳 선유도엘 온 것이고, 또 산을 오른다는 작은 수고스러움이나마 감수한 것이 아니겠는가. 한편으론 비록 명목뿐인 인솔 대장이었지만 굳이 이곳을 고집한 보람 내지 성취감까지 덤으로 얻는다.
전망대 위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풍경 앞에서 가슴이 먹먹하여진다.
그저 말없이 어떤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 버린다더니, 멍하니 오른 산 위에서 눈은 놀란 토끼마냥 커지고, 마음은 차라리 차분해진다. 눈앞은 그야말로 '텅 빈 충만'의 선경이었던 것이다. 하늘과 바다라는 텅 빈 공간에 점점이 아로새겨진 섬은 그 공간을 채우는 충만이자, 화룡정점이었다. 신선들이 왜 선유도에서 놀다 가셨는지... 조금은 짐작이 된다.

땀깨나 흘리며 투덜대던 일행들 역시 언제 그랬느냐는 듯 눈앞에 펼쳐진 다도해의 장관 앞에서 감동 어린 눈빛으로 고군산의 수많은 섬들과, 그 섬들이 그려내는 섬과 바다의 조화를 눈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눈만이 아니다. 스마트폰 역시 열일을 하느라 찰칵찰칵... 전망대에 때 아닌 메아리가 넘쳐난다.
고군산군도는 무리를 이루는 섬의 조합이었다.
바다 저 너머 좌측방향으로는 미세먼지 사이로 아득히 군산 산업단지가 보이고, 차례로 장자도, 대장도, 무녀도, 신시도 등의 섬들이 다리라는 이음새에 붙들린 채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역시나 고군산군도는 무리를 이루는 섬의 조합이었다.

숲 안에서는 숲을 보지 못하고, 섬 안에서도 섬을 보지 못한다더니, 실제 그랬다. 섬 안에 있을 때는 그 섬마저도 바다와 잇닿은 또 다른 땅의 모습일 뿐 섬을 알지 못하였으나, 산 위에 올라 조금은 떨어져 대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 앞에서 섬은 섬이 되었고, 또한 섬은 동경과 외로움이라는 주제어를 품고 있는 존재임을 새삼 깨닫게도 된다.

동경이 그렇고 그리움이 그러하듯, 무언가를 기다리고 또 마음에 담는다는 것은 언제나 외로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크기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러하다.
망주봉은 마이산과 닮았다.
단등교가 신시도와 무녀도를 연결하고 있다.
지상에서 바라보던 망주봉은 그저 무심한 거대한 돌산이었으나, 산 위에서 바라보는 망주봉은 두 귀가 쫑긋한 말의 머리와 닮아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망주봉을 두고 마이산(馬耳山)을 이야기했었나 보다.

마찬가지로, 고군산군도를 기어이 육지와 연결시킨 그 첫 장본인인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 현수교인 단등교는 차로 무심히 건널 때는 서울의 한강을 가로지르는 여느 다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다리를 떠나 멀리서 바라보자 과연 점과 점을, 섬과 섬을 굳건히 연결해주고 있는 맞잡은 두 손이었음도 알게 한다.
산다는 것은 누군가를 만나고, 그 누군가에게 마음 한 자락을 내어주는 일이다.
●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마음 한 자락을 내어주는 일

일행들은 이 멋진 풍경 앞에서 손이 아닌 어깨를 걸고 그들만의 추억을 간직한다. 더러는 오늘이 초면이었음에도 격의 없이 서로의 어깨를 내어주고 한 곳을 바라보며 꽁치~ 한치~ 멸치~(*바닷가에서는 김치~가 아니란다) 미소 띤 얼굴로 여러 컷의 사진을 남긴다. 그렇게 또 인연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산다는 것은 누군가를 만나고, 그 누군가에게 마음 한 자락을 내어주는 일이 아니던가. 길 위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은 늘 그렇듯 또 우리의 인연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래서일까. 오늘의 여정에는 알 수 없는 풍성함이 있다. 여유롭고 너그러운 사람들이 갖는 향기가 느껴진다. 좋은 것은 굳이 맛보지 않아도, 또 알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그 무엇이 있지 않던가.
하산의 길에도 섬은, 바다는 여행자에게 멋진 풍광을 선물한다.
산을 넘어가는 하산의 길 역시 가슴이 탁 하고 터지는 광활한 바다가 있고, 그 바다 위를 점점이 떠가는 섬이 있다. 이대로 양지바른 등성이에 가만히 앉아 봄바람에 실려 오는 갯내를, 또 꽃내음을 음미하며 봄 이야기를, 바다의 이야기를, 바다를 헤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무심히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을 것만 같다.

가끔은 대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대상과 동화됨을 느낄 때가 있다. 굳이 말이 없어도 옅은 미소 띤 얼굴로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도 그 대상은 내게로, 마음으로 오는 것이다. 사람도, 풍경도, 어떤 삶도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내려가는 길이 아쉽다. 또 어쩌면 짧은 여정이 아쉬운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 선유도 둘레길 22
'자애로운 시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진 꽃인 산자고(山慈姑)
내려가는 길옆 어느 바위틈에 하얀 꽃대에 자줏빛 채색이 아름다운 꽃이 함초롬히 피어 있다. '자애로운 시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진 꽃인 산자고(山慈姑)다. 산자고는 까치무릇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산자고라는 이름에는 그 옛날 홀아비를 산에다 묻고 갈 곳 몰라하던 색시를 며느리 삼은 어느 시어머니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느 날 등창이 나 고생하는 며느리를 두고 시어머니는 가난한 살림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까치무릇을 상처에 짓이겨 발라주었더니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해서 산자고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설화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만으로는 이름값이 과하다는 생각이 약간(?) 든다. 하지만 어쩌랴! 굳이 이 이름을 지은 이유야 지은이만이 알 것이다. 여행자는 다만 알려진 것 말고도, 다른 훌륭한 미담이 더 있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따름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섬은 외롭지만 외롭지 않았고, 홀로인 듯 보이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 섬은 외롭지만 외롭지 않다

장 그르니에는 그의 저작인 <섬>에서, 섬에 가면 또 하나의 섬인 홀로 서 있는 한 사람을 만난다고 했었다. 문득 멈춰 서 바라보는 섬과 바다는 아득하고 고요했다. 바다를 사이에 둔 적당한 간격 안에서 그들은 평화로웠고, 또 아늑했다. 그렇게 고요와 평화 안에서 또 하나의 섬으로 홀로 서 있는 한 사람은 스스로 섬이면서, 고군산의 섬들이 그렇듯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섬은 외롭지만 외롭지 않았고, 홀로인 듯 보이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다만 홀로 서 있는 것일 뿐... 결국 섬도 사람도 홀로 서야 하는 존재였음을 어슴푸레 깨닫는다.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詩 <홀로서기>) 홀로 설 수 있을 때, 그때라야 우리는 세상을,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섬은 누군가에게는 감상의 대상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다.
그르니에의 혜안처럼 모든 수평선과 자유로이 맞닿아 있는 허허로운 바다, 그 바다를 섬에서 만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만날 수 있겠는가? 섬은 그렇게 바다에 갇혀 있었지만, 또 모든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존재였다.

그 닫히고 열린 공간의 오목한 곳에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 섬은 누군가에게는 감상의 대상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임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꿈을 키우고, 바다와 더불어 그들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홍합을 까는 손길이 바쁘다.
산을 내려오자, 바닷가에는 상인들이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하다. 길옆에다 홍합을 쏟아놓은 아저씨는 지나가는 이에게 눈길 한번 줄 틈도 없는지 홍합을 까는 손길만이 분주하다. 그렇게 까놓은 홍합이 누군가에게는 맛있는 식사와 안주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노동의 가치가 합당하게 보상받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다시 어디로 가야 하나? 나름 마음먹고 먼 길을 달려온 터라 하나라도 더 보고, 한 발자국이라도 더 걷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으나 시간이 허락하질 않는다. 아쉬운 것은 대장봉 할매바위 아래까지 갔지만, 오를 수는 없었다. 늦은 시간 탓에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서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여정을 마치고 군산으로 가는 차창 너머로 고군산군도의 섬들이 노을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아마도 머지않은 때에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고군산군도의 섬들이 노을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문득 이선희가 부른 <인연>의 절절함이 아니라도, 우리는 무수한 인연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일까. "인연의 싹은 하늘이 준비하지만, 이 싹을 잘 지켜서 튼튼하게 뿌리내리게 하는 것은 순전히 사람의 몫"이라는 헤르만 헤세의 말을 떠올리고 만다.
삶은 사람들과의 부대낌의 연속으로 채워진 긴 여행이다.
어쩌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산다는 것은 인연을 만들고, 그 인연들이 건네는 수많은 경험과, 그렇게 인연이라는 그릇에 가득 담긴 이야기들이 섞이고 섞여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웃고 울고 행복해하는 긴 여정이 아니던가.

그렇게 삶은 사람들과의 부대낌의 연속으로 채워진 긴 여행일 것이다. 살갑게 체온을 나누고 정다운 말을 나누고, 더러는 언성을 높이며 삿대질을 하면서도, 인연은 인연이라서, 삶은 또 그 인연 안에서 풍요로워지고 있음을, 섬들의 바다가 여행자에게 들려주는 가르침이다.
● 고군산군도 구불길 8코스 여정

* 선유도 선착장~군산시정 관광안내소~선유도 해수욕장(명사십리)~선유 3구 마을~대봉 전망대~몽돌해변~군산시정 안내소~초분공분~장자대교~대장도~장자마을~장자대교~군산시정 관광안내소~선유도 선착장

* 거리(소요시간) : 14km(5시간) / 문의 : 군산시 관광진흥과 (063-454-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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