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김정은과 시진핑 그리고 트럼프…세 남자의 미묘한 브로맨스

정성엽 기자 jsy@sbs.co.kr

작성 2019.01.11 09:05 수정 2019.01.14 15:1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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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방중(사진=연합뉴스)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새해 벽두부터 또다시 베이징을 찾았습니다. 열 달도 안 되는 시간에 무려 4번째 방중입니다. 평양에서 베이징까지, 비행기도 아니고 기차를 타고 1,400km 가까운 먼길을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당연히 시진핑 중국 주석은 성대한 환영식과 만찬으로 김 위원장을 맞았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인 건지, 아님 의도한 건지 김 위원장은 35살 생일상도 받았습니다. 융숭한 대접을 받고 김 위원장은 이틀간 베이징에 머물다 평양으로 돌아갔습니다. 또다시 20시간을 돌아가는 먼길이지만, 기분상 크게 힘들 거 같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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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묘한 시점의 방중이었습니다. 중국은 미국과 무역 전쟁을 한바탕 하다 잠시 멈추고 합의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점령군 느낌이 물씬 나는 미국 협상단이 베이징에 진을 치고 있던 상황이었죠. 북한도 미국과의 북핵 협상에 별 진전이 없어 고민입니다.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에도 대북제재는 여전했고, 경제난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뭐든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 미국과의 일대일 맞대응을 도와줄 누군가가 절실했습니다. 김 위원장에겐 시진핑 주석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든든한 후원자가 될 수 있는 사람.

북중 관계는 지난해 김 위원장의 세 차례 방중으로 어느 때보다 끈끈해졌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북한 인사들이 중국을 찾는 일은 이전보다 훨씬 잦아졌습니다. 하지만 중국 인사들의 평양행은 상대적으로 덜 자유롭습니다. 지켜보는 눈이 많은 게 큰 이유일 겁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이 더 그렇습니다. 평양을 답방하겠다고 약속도 하고 공언도 했지만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김 위원장이 세 번이나 찾아왔으니, 한 번쯤은 갈 때도 됐는데, 여전히 주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시진핑 주석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쀼루퉁한 표정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 그뿐인가요? 평양 가는데 빈 손으로 갈 수도 없지 않습니까? 북한에 뭘 챙겨주려고 해도 역시 걸리는 건 대북제재와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이래저래 트럼프 대통령이 안 걸리는 데가 없습니다. 가뜩이나 중국 배후론에 예민한 트럼프 대통령. 성격도 변화무상, 예측불허일 때가 많습니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에 시 주석이 강력히 맞서 본 적도 있지만, 무역전쟁의 여파는 미국에게도, 중국에게도 예상보다 큰 타격을 줬습니다.

시 주석이 그렇다고 북한을 홀대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중국이 한반도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끈은 북한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대한 지렛대로도 북한은 활용 가치도 충분합니다. 북한과 냉랭했던 재작년까지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북한과의 끈이 떨어진 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발언권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운 브로맨스. 김 위원장에 대한 시 주석의 지금의 심경 아닐까요? 이렇게 행동을 주저하다 보니 말이 앞섭니다. 순망치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강조하며 북한을 달래고 또 달래고 있습니다. "내 맘 몬지 알지?"

밀당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주저하는 분위기. 김정은 위원장은 이런 썸인지, 사랑인지 구분이 안 되는 상황이 납득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베이징으로 향했습니다. 왕복 이틀이 걸리는 거리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베이징 땅에 발딛은 시간은 고작 만 하루에 불과했지만, 그게 무슨 대수냐는 기운이 충분히 느껴집니다. 고작 20-30분 둘러본 '동인당 공장' 시찰과 차량 이동 시간, 잠자는 시간 빼면 방중 일정 전체를 시진핑 주석과 함께 했습니다. 
김정은-시진핑 부부 베이징호텔 오찬(사진=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1시간 넘게 정상회담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생일상을 겸한 환영 만찬도 무려 4시간 넘게 함께 했습니다. 베이징을 떠나기 직전까지 시 주석과 호텔 오찬도 함께 했습니다. 사실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김 위원장은 베이징에서 특별히 한 게 없습니다. 제약회사 쓰윽 한 번 훑어본 게 바깥 활동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거면 현지시찰 생색은 충분합니다. 시진핑 주석과 밥 먹는 거, 오래오래 함께 있는 거, 남들이 볼 때 두 사람이 특별하게 친하다고 느끼게 하는 거, 그게 김 위원장이 이번 방중에서 해야 할 일이었던 겁니다. 충분히 성과는 거뒀고 강력한 메시지도 남겼습니다.

시진핑 주석에 대한 김 위원장의 이런 무한 애정의 원천은 다름 아닌 필요성입니다.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절실하고 급한 사람이 더 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세 번 갔는데, 네 번 못 갈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신의 애정을 적극 표현한 김 위원장은 시 주석에게 당당하게 요구했습니다. 평양에 빨리 오라는 거죠. 남 눈치 보지 말고 행동에 옮기라는 겁니다. 조선중앙통신이 발표한 방중 소식을 보면 이런 상황이 명확합니다. 김 위원장이 답방을 요청했고, 시 주석이 수락했다는 내용을 명확히 적어놓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 측 발표문에는 평양 답방 얘기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시 주석이 방북 초청을 수락했는지 묻는 말에 조급해하지 말라며 즉답을 피했습니다. 양측의 입장 차이가 느껴집니다.
시진핑-김정은 (사진=연합뉴스)개인적으론 김정은 위원장의 4차 방중의 키워드를 '절실함'으로 뽑고 싶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 적극성으로 시 주석과의 특별한 친밀감을 다시 한번 증명했고, 시 주석에게 눈치 보지 않는 행동을 요구했습니다. 연애 스타일이 화끈하고 저돌적인 사랑꾼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화끈하고 저돌적인 사랑이 항상 아름다운 결말로 맺어진다는 보장은 없다는 게 세상사 이치겠죠. 이제 공을 넘겨받은 건 시진핑 주석입니다. 강력한 구애를 받은 시 주석은 흐뭇한 마음과 함께 결단을 강요받는 부담도 함께 갖게 됐습니다. 특히 변화무쌍한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할 수도 있는 김 위원장의 저돌적인 방중이 세 사람의 관계를 미묘한 브로맨스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인가요? 저에겐 김정은 위원장을 함께하는 시진핑 주석의 웃는 표정이 마냥 환하게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