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V] 달을 향한 '우주 전쟁'의 역사…암스트롱의 달 착륙 일대기 그린 '퍼스트맨'

정윤식 기자 jys@sbs.co.kr

작성 2018.11.03 09:05 수정 2018.11.03 12:2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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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 우주를 향한 인간의 끊임 없는 도전. 최근 개봉한 영화 '퍼스트맨'은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다녀온 닐 암스트롱의 일대기를 다뤘습니다. 광활한 우주의 모습은 그동안 다양한 영화 속에서 묘사됐습니다.

하지만 영화 '퍼스트맨'에는 기존 영화들과 다른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우주 비행사인 암스트롱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우주의 모습이 담겼다는 점입니다.

우주선 내부에서부터 달 표면까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다채로운 장면들이 담긴 이 영화는 암스트롱의 고뇌와 갈등도 인간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암스트롱의 발걸음으로 시작된 인류의 달 착륙은 내년이면 어느덧 50주년을 맞이합니다.

달을 향한 인류의 또 하나의 모험.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요?

■ 미국와 소련의 총성 없는 '우주 전쟁'…판도 뒤바꾼 케네디 전 대통령의 한 마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냉전이 찾아왔습니다.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소련)은 당시 정복하지 못한 우주를 두고 총성 없는 전쟁을 벌였습니다. 우주 전쟁에서 앞서 나간 것은 소련이었습니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렸습니다. 미국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소련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자신했던 미국을 강타한 '스푸트니크 쇼크'의 시작이었습니다. 불과 한 달 만에 최초의 우주견 '라이카'를 태운 스푸트니크 2호까지 발사되자 충격은 더 컸습니다. 미국은 엄청난 자본을 우주 사업에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1958년 1월, 미국은 드디어 첫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미국은 같은 해 10월 미 항공 우주국 '나사(NASA)'를 설립하며 소련보다 먼저 유인 우주선을 발사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러나 또 한 번의 씁쓸한 패배를 맛보게 됩니다.

1961년 4월, 보스토크 1호에 탑승해 대기권 밖에서 지구를 바라본 최초의 우주 비행사는 유리 가가린이었습니다. "지구는 푸른 빛이었다"는 그의 한 마디. 최초의 유인 우주선 타이틀 역시 소련이 거머쥐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두 나라의 치열한 우주 전쟁은 계속됐지만 대부분의 최초 타이틀을 소련이 차지하면서 우주 전쟁 1차전은 소련의 우세로 마무리됐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 전쟁은 달 탐사로 이어졌습니다. 이번에도 초반 경쟁에서는 소련이 앞서 나갔습니다. 소련은 1959년 이미 달 표면에 탐사선 루나 2호를 보냈고 그로부터 7년 뒤인 1966년 무인 탐사선 루나 9호가 달 착륙에 성공하면서 또 다시 승리를 거두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한 마디가 현실이 되면서 우주 전쟁의 판도는 뒤바뀌게 됩니다.

[존 F. 케네디 / 전 미국 대통령 : "1960년대 안에 사람을 달에 보낼 것입니다. 쉬운 일이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렵기 때문에 하려는 것입니다."]

■ 200조 쏟아부은 미국의 아폴로 계획…암스트롱의 ○○○이 미리 만들어졌다?

미국은 어마어마한 예산을 우주 사업에 쏟아부었습니다. 1961년부터 시작된 아폴로 계획. 여기에 들어간 예산만 현재 기준으로 환산했을 때 약 200조 원에 달합니다.

안타까운 희생도 있었습니다. 아폴로 11호가 역사를 쓰기 2년 전, 발사에 앞서 시험 절차를 거치던 아폴로 1호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안에 타고 있던 3명의 우주 비행사가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암스트롱과 동료들은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 아폴로 4호부터 10호까지 달 착륙을 위한 시도는 계속됐습니다.

그리고 1969년 7월 16일, 막중한 임무를 가진 아폴로 11호가 마침내 발사됐습니다.

닐 암스트롱을 비롯해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와 버즈 올드린을 태운 아폴로 11호의 착륙 지점은 '고요의 바다'였습니다. 달 표면 가운데 비교적 평평한 땅으로 달에 다녀간 탐사선들이 보낸 지형 데이터를 분석해 착륙 장소로 정해진 곳이었습니다.

지구를 떠난 지 나흘 만인 7월 20일, 아폴로 11호는 달에 무사히 착륙했고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우주 전쟁의 전세가 하루 아침에 역전된 순간이었습니다. 아폴로 11호의 임무 완수로 미국은 기세등등했지만 숨겨진 비화도 있습니다. 나사(NASA)도 아폴로 11호의 임무가 실패할 가능성을 높게 봤었는데, 우주 비행사들이 지구로 돌아오지 못할 경우 닉슨 당시 대통령이 읽을 추도문이 미리 준비되기도 했던 겁니다.

인류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일까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 거짓이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진공 상태인 달에서 성조기가 휘날렸다', '달 사진에 별빛이 없다'며 달 착륙이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2009년, 나사가 달 착륙 동영상 원본을 삭제했다고 인정하면서 조작설은 일파만파 퍼졌습니다.

하지만 나사 측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이후 나사는 달 착륙의 결정적 증거를 추가로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2014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두고 온 지진계와 반사경 사진을 공개한 나사. 그리고 올해 7월에는 달 착륙 당시 아폴로 11호가 휴스턴 우주센터와 주고받은 교신 음성 파일 원본도 공개됐습니다.

■ 2000년대 다시 불붙은 달 탐사 경쟁…50년 뒤 새롭게 쓰일 우주의 역사는?

10년 넘게 이어진 우주 전쟁에서 미국에 승리를 안겨준 건 아폴로 11호였습니다. 이후 1972년까지 12명의 우주 비행사가 달 표면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 모두 우주 사업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에 부담을 느꼈습니다. 결국 달을 두고 벌어진 두 나라의 경쟁은 1970년대 초 '데탕트'로 냉전이 완화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달이 다시 전 세계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2000년대 얼음 형태의 물이 달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였습니다. 미국, 러시아 그리고 유럽을 비롯해 중국, 일본, 인도 중심의 아시아권 국가도 달 탐사에 뛰어들었습니다.

달 탐사 경쟁에 불이 붙은 이유는 또 있습니다. 지구에서 달까지는 3일 반 정도면 도착하지만 화성까지는 약 200일이 걸립니다. 게다가 지구와의 공전 시간 차이로 화성 탐사는 26개월에 한 번씩 이뤄집니다. 반면 달은 발사 주기의 제약이 적어 우주선을 자주 쏘아 올릴 수 있습니다. 다른 행성 탐사 시 생기는 위험성을 미리 체험하고 대비할 수 있는 겁니다.

2019년이면 인류의 달 착륙 역사는 50주년을 맞이합니다.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도 달 탐사를 본격적으로 추진 중입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2030년까지 달에 탐사선을 보낼 계획입니다.

달 탐사를 기반으로 더 먼 우주로 나아가고 있는 인류.

앞으로 50년 뒤에는 어떤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질까요?

※ SBS 뉴스의 오디오 특화 콘텐츠 '보이스'가 '보이스 V'라는 이름의 비디오 콘텐츠로 새롭게 단장해 여러분들을 찾아갑니다. 당신이 원하는 뉴스, 당신을 위한 비디오 콘텐츠. SBS 보이스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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