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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일상과 세상을 바꾸는 '색(色)'의 심리·과학

[취재파일] 일상과 세상을 바꾸는 '색(色)'의 심리·과학

한세현 기자

작성 2018.06.16 11:22 수정 2018.06.27 13:2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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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일상과 세상을 바꾸는 색(色)의 심리·과학
사람은 눈을 통해 사물 혹은 현상을 보고 정보로 인지합니다. 이 과정에서 망막에 있는 '원추세포'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원추세포는 말 그대로 원뿔 모양으로 생겼는데, 상대적으로 진화가 많이 된 영장류에만 있습니다, 역할은 색깔, 정확히는 빨강-파랑-녹색 3개 계열 색을 인지하는 것인데, 이 3가지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세상의 다양한 색깔을 파악합니다. (컬러TV와 컴퓨터그래픽 프로그램도 이 원리를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원추세포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수많은 세포 중 하나일 뿐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어느 세포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바로, 우리의 삶을 이끌고, 때론 바꿀 수 있는 인지 과정인 '심리'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미국의 조명 기사 S.G. 히빈스는 최상의 음식을 준비해 만찬을 열었습니다. 그는 만찬 중 분위기 전환을 위해 조명필터를 녹색과 빨간색으로 바꿔 보았습니다. 그러자 스테이크는 회색으로, 우유는 붉은 색으로, 샐러드는 자주색으로 변했습니다. 손님들은 호기심을 보이며 잠시 흥분했지만 이내 익숙하지 않은 불편한 음식 색깔에 식욕을 잃고 말았습니다. 기존의 경험에 의해 형성된 스키마와는 다른 정보를 처리하는 데 인지적 부담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시각으로 인지하는 색깔(色)에 심리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받는 존재입니다.

● 색(色), 세상을 향해 전하는 목소리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색은 공동체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상징을 만들어 낼 수도 있으며, 이렇게 형성된 상징은 세상을 향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도 활용됩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노란 리본'이 대표적입니다. 과거 서양에서는 전장에 나간 남편을 둔 아내들이 나무에 노란 리본을 묶으며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원했습니다. 특히, 1973년 토니 올랜도와 돈이 발표한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 주세요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 이후, 노란 리본은 멀리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상징이 됐습니다.

빨강과 파랑의 극단적 색채가 합쳐진 보라색은 다양한 상징이 가능해 인권보호와 소통, 공감, 양성평등, 비폭력과 같은 캠페인에 자주 쓰입니다. 한 국회의원은 데이트 폭력 방지 법률안을 내며 보라색 리본을 제시했고, 가수 고 신해철 씨 추모행사에도 보라색 리본이 등장했습니다.

색을 이용한 캠페인은 의료계에서도 널리 이뤄집니다.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을 퇴치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색깔 리본을 쓰는 것인데, 빨간 리본은 에이즈, 핑크 리본은 유방암, 파란 리본은 전립선암, 금색 리본은 대장암, 초록 리본은 우울증을 상징합니다.
유방암 예방 상징, 핑크 리본과 전립선암 예방 상징, 블루 리본
● 색(色), 일상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도구

색은 정보를 전달하는 나름의 언어 체계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적인 언어인 색은 우리 실생활의 편의와 안전을 위한 공학에서도 활용됩니다. 책상 위에 놓인 머그잔을 아무 생각 없이 잡았다가 “앗, 뜨거워!”라고 외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만약, 컵을 잡은 사람이 어린 아이라면 자칫 큰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매번 뜨거운 컵에 ‘뜨겁다’라고 적어두기도 어렵죠. 그래서 개발된 게 내용물의 온도에 따라 색이 변화하는 컵입니다.
(출처: http://www.holycool.net)
담긴 내용물 온도에 따라 컵의 색깔이 변해, 컵을 잡기 전에 얼마나 뜨거운지 미리 알려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기술의 핵심은 ‘카멜레온 물감’이라고 불리는 ‘시온 안료’입니다. 이 물질은 일정 온도에 도달하면 색깔이 없어졌다가, 온도가 내려가면 다시 원래 색깔로 돌아가는 특성(열변 색성)이 있습니다. 이는 ‘마이크로 캡슐’ 안에 담긴 고체 용매가 온도에 따라 고체와 액체로 변하기에 가능한 현상입니다.

이처럼 온도에 따른 색이 변하게 하는 기술은 컵뿐 아니라 주방용품에 적용하면 효과적입니다. 특히, 음식을 먹기 전 얼마나 뜨거운지 미리 알기 어려울 때가 잦은데, 이 시온 안료 숟가락을 넣어보기만 하면 미리 음식 온도를 확인할 수 있어 특히 어린 아이들이 안전하게 식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출처 : www.eatburprepeat.com)
최근에는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이 기술이 패션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시온 안료를 사용한 옷은 체온에 따라 옷 색깔이 변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다양한 모양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패션 아이템 중 가장 많이 만지고 위치를 바꿔가며 사용하는 패션 소품인 핸드백도 체온에 따라 모양이 바뀌어, 매 순간 자신만의 개성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습니다.
(출처 : textileincubator.wordpress.com,  www.lyst.co.uk)
● 색(色), 정보를 쉽게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수단

색을 활용한 기술은 이제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정보를 쉽고, 빠르고,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방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색으로 많은 정보를 전할 수 있는 기상예보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과거 기상예보는 전문가가 직접 기상도를 그리며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1954년 영국 BBC의 조지 코월링이 방송에서 일기도를 그려가며 기상정보를 설명한 게 시작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1972년 김동완 예보관이 처음으로 방송에서 복잡한 기상도를 직접 그리며 각종 기상 정보를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영국 BBC 기상예보관 조지 코월링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며 오늘은 다양한 인포 그래픽(Infographics)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며 더 많은 정보를 더 빨르고 더 많이 제공할 수 있게 됐지만, 최근 연구에선 오히려 이런 현상이 시청자들의 빠른 정보 수용을 방해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너무 화려하고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제공할 경우, 시청자들이 원하고 또 필요로 하는 정보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소비자들은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직관적으로 받기를 원하는데, 복잡한 숫자와 기상도 다양한 기호를 써서는 소비자의 요구를 만족하게 하기 어렵습니다. 복잡하고 상세한 정보는 TV가 아니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확인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TV 기상 정보는 새로운 전달 방식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지과학 관점에서 색을 활용한 기상 정보 전달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색상을 통해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온도는 물론 최근 국가적 문제로 떠오른 미세먼지와 습도 등을 색을 통해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기술을 활용한 대표적인 게 스마트폰 날씨 애플리케이션 '솔라(Solar)'입니다. 솔라는 복잡한 기상 정보를 나열하는 방식을 피하고, 종합적인 날씨 상태를 색채로 표현하는 직관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기상 상태를 색상으로 표현해주는 것입니다. 복잡한 수치를 과감히 줄이고 감각적인 색상으로 기상정보를 전달하고, 소비자는 색깔만으로도 전체적인 날씨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기상예보 애플리케이션 '솔라'
영국 기상청도 확률과 위험도를 색깔로 표시하는 기술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위험도가 매우 높고 발생 가능성이 가장 큰 경우는 붉은색으로, 그 다음 높은 수준은 주황색으로, 위험도와 발생 가능성이 보통 수준이면 노란색으로 표시하는 것입니다.
 
영국 기상청, 색을 활용해 다양한 기상정보 전달
최근 우리 연구진도 우리나라 고유의 기후환경 변화에 맞는 위험도와 발생 가능성을 계산해, 기상 정보를 감각적인 색깔로 전달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온도와 미세먼지, 습도 등 한국인이 자각하는 모호한 언어 변수를 색깔로 표현하는 수학 공식에 대입해, 실시간으로 또 자동으로 최적의 색깔을 계산한 뒤 기상 상태를 표시해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색깔만 보고 직관적으로 기상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울의 미세 먼지 수준을 채도로 표현한 시각 정보 사례
실제로 이 기술을 활용해 전국의 단위 초등학교에 미세먼지 측정소를 설치하고, 학교 주변 미세먼지 농도 수준을 빅데이터로 구축한 뒤, 어린 학생들도 이해하기 쉽게 색깔 정보로 표현하는 연구도 한창입니다. 더 나아가 시청자들이 시선이 집중된 기상 캐스터의 의상의 색상을 변화시켜 기상 정보를 전달하는 시도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취재파일] 일상과 세상을 바꾸는 ‘색(色)’의 심리·과학
온도·습도·미세 먼지 수준을 캐스터의 옷 색상으로 표현한 사례 (참고 : https://youtu.be/3yyIw7K5IQY)
● 색(色), 역사와 함께 해온 내일
 
과거 우리 조상은 옷의 색깔을 통해 관직을 구분했습니다. 신라는 자-비-청-황색, 백제는 자-비-청색, 고려는 자-단-비-녹색, 조선은 홍-청-녹색, 등으로 관복의 색을 달리했습니다. (자색은 보라색, 단색과 비색은 붉은색 계열을 뜻합니다). 이처럼 색상을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와 상징체계로 활용한 사례는 역사와 함께 했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입니다. 특히, 매체가 글 중심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거쳐 가상현실(VR) 등 복합한 양식으로 발전하며, 색을 활용해 정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이른바 인포 그래픽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입니다. 색을 활용한 다양한 연구와 실험이 우리 삶을 더 풍요롭고 안전하게 만들어주길 기대해봅니다.
 
※ 참고 자료
1. Pyoung Won Kim (2017). Chameleon-like weather presenter costume composite format based on color fuzzy model. Soft Computing, 22, 1491-1500.
2. Pyoung Won Kim (2018). Operating an environmentally sustainable city using fine dust level big data measured at individual elementary schools. Sustainable Cities and Society, 37, 1-6.
3. 한화케미칼 블로그 ‘케미칼드림’ http://www.chemidream.com/
4. 기상 캐스터 의상 색깔로 표현한 기상정보 https://youtu.be/3yyIw7K5IQ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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