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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반달곰 인공수정 첫 출산…다양한 개체복원 길 열어

[취재파일] 반달곰 인공수정 첫 출산…다양한 개체복원 길 열어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멸종된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시작한 것은 14년 전인 2004년이다. 러시아와 중국, 북한에서 반달곰을 들여와 우리 숲에서 적응훈련을 시킨 뒤 지리산에 풀어주고 자연스런 짝짓기를 통한 야생출산을 유도하는 방식을 썼다. 나라별로는 러시아에서 22마리, 중국 4마리, 북한을 통해 8마리의 반달곰을 들여왔다. 서울대공원에 살던 반달곰 8마리도 데려왔다. 그동안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곰 숫자는 39마리다.

삶의 터전을 옮긴 반달가슴곰이 아무 일 없이 잘 살아갈 수는 없었다. 방사 초기인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밀렵 도구인 올무에 걸려 3마리가 죽었고, 농약중독이나 사고로도 3마리가 폐사했다. 이 기간에 자연사한 채 발견된 반달곰도 5마리다. 실패 뒤에 성공이 따르고, 슬픔이 지나면 기쁨이 오듯 지리산 숲에서 반달곰 새 생명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 것은 2009년 봄부터다. 새끼 반달곰 2마리가 야생에서 태어난 것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그 뒤 올해까지 10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반달곰의 새 생명이 지리산에 봄소식을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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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까지 확인된 자연출산 반달곰 숫자는 44마리다. 이 가운데 38마리가 지리산에서 살아가고 있고 나머지 6마리 가운데 3마리는 자연적응에 실패해 종복원기술원으로 다시 데려왔고, 3마리는 폐사했다. 반달곰의 출산은 연구원들이 동면굴에서 새끼를 직접 확인하거나 울음소리 등을 통해 간접으로 파악하고 있다. 때문에 미확인된 개체가 충분히 있을 수 있고, 그 숫자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새끼출산이 확인되면서 반달곰 복원성공 가능성의 희망도 점차 커져갈 때인 2011년 종복원기술원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인공수정을 통한 개체증식에 착수한 것이다. 자연번식을 통한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번식력이 강한 일부 개체들만 새끼를 출산할 경우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질병이나 위협요인이 침입했을 때 자칫 한순간에 멸종할 위험이 그만큼 더 높다. 때문에 선택적 인공수정을 통해 건강한 여러 개체들을 확보하는 게 반달곰이 지리산을 넘어 백두대간에서 잘 살아 가도록 하는 데에 중요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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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수정은 수컷곰에서 채취한 정액을 암컷곰에 넣어주는 방식을 말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종별로 발정주기나 번식구조가 다르고, 특히 반달곰의 경우 수정란이 바로 자궁에 착상하는 게 아니라 생리적, 환경적, 영양상태에 따라 착상하는 '지연착상'이라는 독특한 번식생리메카니즘을 갖고 있어서 인공수정을 통한 새끼 출산이 어려운 동물이다. 아직까지 세계 어느 나라도 성공한적 없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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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복원기술원 정동혁 의료센터장을 비롯한 인공수정 연구팀은 지난해 7월 연구원 증식장에 있는 암컷 4마리에게 인공수정을 시도했다. 정액은 2005년 러시아에서 들여온 수컷 반달곰 RM-19로부터 채취했다. 이 수컷 곰은 지리산 숲속에서도 자연번식을 통해 이미 수컷 1마리와 암컷 3마리를 낳은 경험이 있을 만큼 건강하고 번식력이 좋은 개체다. 인공수정에 참여한 암컷 반달곰은 2010년 중국에서 온 CF-38, 2004년 러시아에서 들여온 RF-04 등 4마리다. 이 가운데 CF-38과 RF-04 두 마리가 지난 2월 초 새끼 3마리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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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새끼 반달곰으로부터 혈액과 모근을 채취해 유전자 분석에 들어갔고, 최근 새끼 3마리 가운데 2마리가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난 개체임을 확인했다. 이 새끼 반달곰의 유전자가 정자를 제공한 아빠곰 RM-19의 유전자와 일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CF-38이 낳은 2마리 중 1마리는 인공수정이 아닌 증식장에서 자연교미를 통해 태어난 개체로 확인됐다. 한 엄마 몸에서 아빠가 서로 다른 반달곰이 태어난 것이다. 앞서 연구팀은 지난해 12월 초음파영상을 통해 어미곰 2마리의 임신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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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의 인공수정 출산 성공은 판다를 제외한 세계 첫 사례다. 세계적 희귀종인 판다의 경우 지난 2006년 인공수정을 성공했지만 상공률은 25% 미만에 불과하다. 또 미국 신시내티동물원과 스미소니언 연구소에서도 북극곰과 말레이곰을 대상으로 2008년부터 인공수정을 시도하고 있으나 새끼를 출산한 사례는 없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연구팀은 지난 2011년 인공수정작업에 착수한 뒤 미국과 독일 등 해외 전문가를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2015년부터 수컷의 정자를 암컷에게 넣어주는 인공수정을 본격 시도했다. 마침내 3년 만인 올해 반달가슴곰의 인공수정 출산에 성공했고, 우리나라 고유의 인공증식 기술을 보유하게 됐다.

반달곰의 인공수정 출산 소식은 지난 5월 5일 새벽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생초 나들목 근처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친 KM-53의 안타까운 사연에 뒤이은 기쁜 소식이다. KM-53은 지리산을 벗어나 세 차례나 백두대간을 따라 새로운 서식지 개척에 나섰다가 관광버스에 부딪쳤고, 사고를 당한 지 6일 만에 근처 산에서 생포됐다. 종복원기술원으로 옮겨 왼쪽 다리수술을 받고 지금은 회복 중에 있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난 2마리 가운데 1마리는 안타깝게도 지난달에 증식장에서 폐사했다. 나머지 1마리는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태어날 때 300g에 불과할 정도로 작았지만 4개월이 지나면서 키는 50cm로 자랐고, 몸무게도 7~8kg으로 늘었다. 어미를 따라 나무위로 올라가는 법도 배워 요즘은 혼자서도 곧잘 나무를 올라 먹이를 먹고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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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은 올가을쯤 이 새끼 반달곰을 지리산 숲에 풀어놓을 계획이다. 현재 파악된 지리산 반달곰의 숫자는 56마리다. 올가을 이 반달곰이 합류하면 57마리로 늘어난다.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난 이 반달곰이 지리산에서 잘 적응하길 바란다. 또 몇 년 뒤 지리산에서 짝을 만나 건강한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기를 기대한다. 반달곰의 서식환경을 잘 보존해 주고, 간섭을 최대한 억제하는 일이 우리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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