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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저널리스트] "북한군 투입설 퍼트린 건 전두환이었다"…38년간 숨겨진 5.18 마지막 비밀 '끝까지 판다'

정윤식 기자 jys@sbs.co.kr

작성 2018.05.23 16:43 수정 2018.05.24 13:3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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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뉴스가 '더 저널리스트(THE JOURNALIST)' 시리즈로 시청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번 순서는 38년이 지나도록 드러나지 않은 5.18의 마지막 비밀을 파헤치고 있는 SBS 탐사보도부 '끝까지 판다' 팀의 장훈경 기자입니다. SBS 보도본부 조지현 기자의 내레이션이 함께 합니다.

■ "5.18 무력 진압을 최종 결정한 건 전두환"…미 국무부 비밀 문건으로 드러난 진실

5.18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인 9월 대통령에 오른 전두환 씨는 민주화운동 당시 자신은 보안사령관이었기 때문에 계엄군의 진압 작전이나 발포 명령에 책임이 없다고 지금까지 주장해 왔습니다. 지난해 낸 회고록에서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숱한 희생자를 낸 1980년 5월 27일 최종 진압작전도 이틀 전인 25일 작전이 결정되고 난 뒤에 알았다고 말합니다.

[전두환 / SBS 인터뷰 (2003년 2월) : 군은 지휘 계통에 의해서 움직이는 거지. (중앙)정보부 부장이 아무리 세도 작전 지시하면 절대 안 움직입니다. 군대라는 건 지휘 계통에 의해 딱 움직이는 거요. 나는 계엄사령관 부하요.]

SBS 탐사보도부는 그러나 5.18 당시 작성된 미국 국무부의 비밀 전문에서 최종 진압작전의 책임자로 전두환 씨가 드러난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시각으로 5월 25일 오전 9시 머스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한·중·일 대사관 등에 보낸 비밀 전문에 '군의 실력자 전두환 장군이 군사 작전이 필요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나와 있었던 겁니다. 이 미국 문서는 당시 미국 국무부와 우리나라 주한 미국 대사관이 주고받은 문건인데 체로키 파일이라고 해서 당시에 지미 카터 대통령 미국 국무부 장관, 국무부 차관, 주한미국 대사 이런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공유할 수 있었고 이제 비밀 해제가 돼서 볼 수 있게 된 문건입니다.

우리나라 군 기록은 너무 왜곡이 심하고 그리고 이미 사라져 버린 것들이 너무 많아서 진상을 밝히는데 굉장히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건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조작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서에는 최종 진압 작전에 당시 '계엄 사령관의 결정이다' 혹은 '누구 대통령의 결정이다' 이런 말은 하나도 안 나오고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아미 스트롱 맨, 군의 실력자 전두환(ARMY STRONGMAN GENARAL CHUN DOO HWAN)이 최종 작전을 결심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 "미국은 다 알고 있었다?"…문건에 등장하는 '아미 스트롱 맨(ARMY STRONGMAN)'의 존재

아미 스트롱 맨, 즉 전두환 씨가 결심을 했다는 말이 명시돼 있는 미국 국무부 비밀 문서의 존재. 5.18 연구가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이재의 / 5.18기념재단 조사위원 : 5.18 기간 중에도 한국 문서에는 거의 전두환이라는 이름이 등장을 안 하죠. 그동안 제 5공화국을 지나면서 대부분 이름을 지워버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미국 문서에는 그대로 지금 남아 있는 거죠. 그런 의미가 굉장히 크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멀리 떨어진 광주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우리는 그렇게 자세하게 알지 못했다'는 정도로 입장을 유지해 왔었는데 문건을 보니까 5.18의 첫 번째 희생자가 청각장애, 언어 장애가 있다는 것을 미국이 알고 있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초기부터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것 가운데 계엄군이 총검을 사용해서 아주 많은 사상자가 나타나고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 문건을 접한 뒤 '아, 당시에 첫 번째 희생자가 농아라는 사실은 이건 당시 광주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었던 건데 어떻게 미국이 이걸 파악하고 있었을까', '미국의 정보력은 엄청났구나'라는 것이 5.18 연구자들의 첫 반응이었습니다.

비밀 문건에는 당시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 대사가 최광수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난 뒤 워싱턴에 있는 머스키 미 국무장관에게 '27일 0시쯤 진압 작전이 시작된다'는 긴급 전문을 보낸 내용이 나옵니다. 이후 머스키 국무장관이 전파한 '한국 상황 보고서'에는 합참의장이 주한 미군 사령관에게 '27일 0시부터 계엄군 투입을 알렸다'는 사실도 기록돼 있습니다. 전두환 씨의 결심으로 최종 진압 작전이 결정되고 수행된 과정까지 문건에 담겨 있는 셈입니다.

[김희송 / 전남대 5.18 연구소 교수 : 전두환 씨가 주장하는 부분들은 자신이 했던 역사적 책임, 사법적 심판을 피하기 위한 거짓이라는 게 확인됐다고 봅니다.]

■ "'5.18 북한군 투입설'을 처음 언급한 사람도 전두환이었다"…지만원보다도 20년 빨랐다

5.18 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이 개입해 저지른 폭동이라는 주장은 전두환 씨의 회고록에 무려 18번에 걸쳐 등장합니다. 법원이 지난해 이 내용을 허위사실로 인정해 회고록에서 삭제하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이런 거짓 주장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5.18 북한군 투입설은 대체 어디선 온 걸까요.

북한군 투입설은 2000년대 초반에 우리가 알고 있는 지만원 씨가 신문 하단에 광고를 내면서 '북한군 600명이 광주에 침투했었다. 사실은 그건 폭동이었고 계엄군이 그걸 진압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처음 이야기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동안 전두환 씨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지만원 시스템 공학 박사라는 사람의 오랜 분석결과에 따르면 북한군이 침투했을 정황이 있다. 개입 정황이 있다' 이런 식으로 소개를 하기도 했습니다. 전두환 씨는 회고록이 발간되기 1년 전 한 언론과 직접 가진 인터뷰에서는 기자가 북한군 침투에 대해서 '당시에 보고받은 적 있느냐'라고 물으니까 '전혀 없다'고 답하며 북한군 침투설과 전두환 씨 본인은 거리가 있다고 선을 긋는 태도롤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미 국무부의 비밀 문건에는 전두환 씨의 주장과 정반대되는 내용이 기록돼 있었습니다. 5.18 북한군 개입설을 공식석상에서 처음 거론한 인물이 전두환 씨라는 겁니다. 기록에 따르면 1980년 6월 4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장이 된 전두환 씨는 주한 미 상공회의소 기업인들과의 만찬장에서 5.18에 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합니다.

[전두환 /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장 : 22명의 신원 미상 시신이 발견됐는데 모두 북한의 침투 요원으로 보고 있다. 5.18의 책임은 김대중에게 있으며 그를 기소해서 이걸 입증하겠다]

[이재의 / 5.18기념재단 조사위원 : 마치 북한군들이 실제로 들어온 것처럼 그때 당시에도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죠. 그때 전두환 씨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 자체를 우리는 모르고 있었던 것인데.]

80년대 중반 신군부가 당시 안기부를 동원해 유포했다고 알려진 북한군 투입설. 하지만 그 시작은 역시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 "미국 정부가 5.18의 참상을 알고 있었음에도 신군부의 무력 진압을 눈감아 줬다"

숱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물증이 없어 풀리지 않았던 5.18의 마지막 비밀도 이 문건에서 실체가 드러납니다. 계엄군의 최종 진압작전 돌입 13시간 40분 전인 1980년 5월 26일 오전 10시 20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 대사는 "광주의 무법 상황이 길어지는 것의 위험성을 알기 때문에 한국 정부에 군사 작전을 그만 두라고 하지 않았다"고 미국 국무부에 보고했다는 내용을 문건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전부터 미국은 '광주의 상황이 결코 간단치가 않다', '계엄군이 진압을 하면서 총검을 들고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다'는 등 강경 진압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겁니다.

5.18 기간 중에 21일 날 집단 발포로 가장 많은 피해가 나고 그 날 저녁부터 계엄군은 외곽으로 철수를 했습니다. 철수를 한 뒤 시민 측과 정부 측이 협상을 벌였는데 전두환은 '이제 더 이상 이런 교착상태를 놔둘 수 없다'고 해서 군 투입을 결심을 했고 그래서 27일 날 새벽에 작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27일 새벽 진압작전 당시 상황에서 당연히 사상자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미국도 강조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재의 / 5.18 기념재단 조사위원 : 전두환의 강경 진압에 동의를 하는 이런 모습이 곳곳에서 확인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미국 쪽에서 '잘 몰랐다' 책임이 없다가 아니고 '잘 알고 있었다'.]

계엄군의 강경 진압을 사실상 용인했던 미국은 불똥이 반미 감정으로 튀는 것은 걱정했습니다. 심지어 계엄군의 강경 진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는데 이마저도 묵인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한국인들은 '아, 이런 교전상황을 미국은 끝내줄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한국인들의 기대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좀 지나면 반미 감정이 강해질 거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강경 진압을 끝끝내 막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군사조치를 잠깐 멈춰달라고 말한 부분은 22일에 주한미국 대사가 미국 국무부에 보낸 문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 광주 상황이 21일 집단 발포로 많은 사상자가 나고 안 좋아지니까 미국의 입장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 한다. 내가 볼 때는 미국에서 빨리 성명을 내고 입장을 내야 될 것 같다'라고 미국 국무부에 문건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계엄군의 강경 진압을 질타하거나 이런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평화적인 해결을 원하기는 하지만 '지금 강경 진압을 멈춰라' 이런 내용은 아닌 겁니다. 대신에 조건을 단 부분이 '우리가 성명을 발표하고 바로 직후에 군사력이 투입되면 미국 입장이 좀 난처해지지 않느냐', '우리가 성명 발표하고 이틀 정도는 군사력 동원하지 않기로 우리가 확실한 약속을 받았다' 등이었습니다. 신군부와 청와대와 상의를 하고 당연히 그런 약속을 받았을 겁니다. 반미 감정이라든가 이런 부분에 대한 우려에 있어서만 군사력 동원을 잠깐 멈춰달라고 부탁을 했지 강경 진압 자체에 대해서 그걸 멈춰달라거나 하지 않은 겁니다. 한국인들이 그걸 기대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겁니다.

[김희송 / 전남대 5.18연구소 교수 : 군인이 벌이고 있는 잔혹한 살상행위를 가로막을 수 있는 건 미국이지 않을까. (그런 미국이) 광주에서 자행되고 있는 군의 잔혹한 진압을 제어하는 영향력을 행사했어야 하는데…]

■ "이번이 정말 마지막입니다"…올해 9월로 다가온 5.18 진실 규명의 마지막 기회

미국 국무부의 비밀 전문을 통해 5.18의 마지막 비밀들이 밝혀지면서 재수사를 통해 전두환 씨를 단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전 씨 측은 법원의 결정까지 부인하면서 여전히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민정기 / 전 청와대 비서관 : 헬기사격이 있었다고 하는 주장들은요. 지금까지 하나도 사실로 확인이 안 된 거예요. 5.18 당시에도 북한 간첩들이 그때 무선통신 같은 게 다 이미 포착이 돼서 수사 과정, 재판 과정에서 다 이미 밝혀진 겁니다.]

전두환 씨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를 기대하는 건 특별법에 따라 꾸려질 진상규명 조사위원회가 이제 9월부터 활동을 시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조사 항목 중에서는 기본적으로 '발포 명령자와 헬기 사격 지시자가 누구인가'를 비롯해 북한군 침투설에 대해서도 다 들어가 있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조사를 하게 되기 때문에 이번이 사실 마지막 기회입니다. 5.18 취재를 해보면 관련자들이 이미 연세가 너무 많으시기 때문에 이제 몇 년 뒤에는 조사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번 9월부터 꾸려질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발포명령자 등을 확인함에 있어서 저희도 미국 문건이나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확인해서 전두환 씨와 5.18의 연관성을 찾아내야 될 것으로 보입니다.

1980년 5월 18일 아비규환이 된 광주에서 7살 된 아들 창현 군을 잃어버린 아버지 이귀복 씨는 아직 아들을 잊지 못했습니다.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어언 3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김채희 / 제38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진행자 : 아직도 아들 창현이를 찾고 계신 아버님께서 이 자리에 나와 주셨습니다.]

[이귀복 / 5.18 당시 7살 아들 잃어버린 피해자 : 말로 해서는 다 할 수 없는 심정입니다. 아무리 찾아도 한 번 간 아들은 오지 않고 소리도 없습니다. 팔도강산을 다 헤맸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허심탄회하게 지내면서 지금까지 찾았지만 아들은 대답이 없습니다.]

5.18의 마지막 비밀이 풀리고 있는 지금, 기억과 추모를 넘어 진실을 밝히는 건 분명 남겨진 사람들의 몫입니다.

◆ 장훈경 기자 / SBS 탐사보도부
[더저널리스트] '북한군 투입설 퍼트린 건 전두환이었다(기획 : 정윤식 / 구성 : 장아람, 전인아 / 촬영 : 정상보 / 편집 : 이홍명, 김보희 / 내용정리 : 박지수 / 내레이션 : 조지현)